타향도 고향이다
누군가는 고향을 지키고 섰고 누군가는 고향이라는 곳이 지긋지긋해 발을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고향이라는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마법 같은 단어인가 봅니다. 고향은 나에게 무엇일까요?
엄마 아버지가 뿌리를 내린 곳, 그분들이 나고 자란 곳이 나의 고향이 아닐수도 있다는 걸 크면서 알았습니다. 거슬러올라가 뿌리를 찾는다면 사실 어느 뿌리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몽돌 바다가 아름다운 고향 거제도를 일찌감치 박차고 나와 떠돌았습니다. 아, 그러다 전라도로 먼저 갔군요. 누구를 따라간 것인지 누구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나 깊은 산속 가까운 곳에 살았나 봅니다. 흘려듣던 얘기 속에 담배 농사도 지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곳에서도 살다 살다 힘들어서 또 서울로 갔다 하시더라고요. 가진 것 하나 없었던 젊은 부부가 그곳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또 떠돌아다녔나 봅니다.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이해는 됩니다. 내 땅 하나 없고 피붙이 하나 없는 곳에서 마음은 또 얼마나 외롭고 그리웠을까요.
서울로 올라간 이후의 이야기는 잘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서울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의 이야기만 익히 듣고 자랐습니다. 서울에서의 삶도 만만한 삶은 아니었겠지요. 낯선 곳에서 터를 잡아 뿌리내리지 못하고 멀고 먼 타향까지 한달음에 내달려오신 걸 보면 말입니다. 거리상으로도 머나먼 타향인 이곳에서 아버지는 지천에 있는 고향을 또 떠올리셨겠지요. 박차고 나온 곳이지만 가보고 싶어도 가보지 않으려 했던 두고 온 고향. 말씀은 안 가신다, 나는 고향이 없다 하셨어도 마음엔 가지 못해 안타까우셨을 겁니다. 당신은 당신을 고향을 버렸다 하셨으니까요.
나는 내가 난 곳은 아니지만 내가 자란 곳이 고향이라 생각합니다.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고 청춘을 지나 부모를 떠나보내면서 모든 삶의 총체적인 것들이 묻어 있는 곳이죠. 사실 청춘일 때야 고향이라는 곳이 그리움으로 다가오진 않았습니다. 늘그막에 누군가 고향으로 내려가 살아야지 해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이제야 나의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나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다 보니 고향이라는 것이 보이나 봅니다. 제각기 흩어져 사는 친구들과의 수많은 그리움이 점철된 곳입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와 언니와 동생들이 만났습니다. 코흘리개로 만나 공기놀이하고 고무줄놀이 하던 조무래기들이 같은 해를 바라보고 일어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중년을 함께 웃는 친구들입니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더라구요. 곶감 엮듯 엮어놓은 그리움들이 하나씩 둘씩 가슴속으로 파고드는데 눈물도 나더군요. 어찌 그리 재미있게 지냈을까요. 고향을 버리고 타향살이하던 부모가 고향으로 만들어 놓은 이곳을 내가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부모의 남긴 땅에 살아 숨쉬는 그리움들이 그대로 묻혀있는 나의 진정한 고향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