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인 증거

영화 '에너미'

by wanderer

'도플갱어' 전설에서는 자신과 똑같이 닮은 누군가를 보게 되면 죽게 된다고 한다. 어렸을 때에는 당연히 나랑 똑같이 생긴 누군가를 보게 된다면 그 사람과 어떻게 잘 이야기해서 숙제도 반반씩 하고, 대신 학교에 나가고 하는 그런 상상을 했었다. 성인이 되고 그런 생각을 할 이유가 사라지면서 '도플갱어'라는 전설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고 살았다. '나와 똑같이 닮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것은 나와 닮은 누군가를 목격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을 해주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에 했었던 그 상상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를 두고서 나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 모든 것을 흔드는 일이었다. 결국에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단순히 내 주관적인 기억만으로 만들어지는 인물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억을 통해 재현되는 인물이 '나'인가.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그저 나와 생김새가 닮았을 뿐 내가 조종하거나 다룰 수 있는 '분신'이 아니다. 물론, 똑같이 생긴 사람을 처음 볼 때에는 당연히 호기심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좀 더 영역을 확장하는 순간 상황은 완전히 뒤틀린다. 도플갱어라는 존재는 '타인의 삶'에서 '본인의 삶'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대답이겠지만, 누군가는 스스로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생각하는 내가 'A'라는 이미지인데, 나를 제외한 내가 아는 모든 다른 사람들이 'B'라는 이미지로 나를 설명한다면 그때에는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증거를 찾는 방법은 'A'일까 'B'일까.


아담 벨도 처음 다니엘 세인트 클레어를 보고서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랑 소름 끼치도록 닮았네', '이 사람은 어디에 살까?', '모든 부분이 똑같을까?'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도플갱어를 만난 것 치고는 평생 일어나지 않을 법한 우연이 발생한 것도 기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평범한 역사 교사로 일하는 사람과 영화 속에 단역으로 등장했던 사람 간의 접점을 찾는 것은 그들의 얼굴을 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두 사람의 대면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호기심을 갖고 만남을 추진한 것은 아담이었지만 정작 직접 다니엘과 마주한 그는 이 상황이 즐겁지 않았다. 본인과 한 군데의 구분도 지을 수 없는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니 말이다. 아담이 만난 다니엘 세인트 클레어는 배우였다. 다른 사람의 직업,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연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의 연기를 볼 때, 우리가 현실의 배우와 극 속의 인물을 혼동하지 않는 이유는 그 둘이 다른 인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인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내 일상'을 연기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상황에서는 그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나의 정체성이 그 사람으로 인해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닮은 사람의 일상을 훔친다는 '욕망'은 아주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똑같을까?'하는 작은 호기심이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 욕망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작은 구실 하나면 충분했다. 터무니없는 일이었고, 말도 안 되는 구실이었지만 똑같이 생긴 두 사람에게 생긴 문제는 당사자들 외에는 풀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 영화 말고도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다룬 영화나 책들은 많이 있었다. 어쩌면 내게 개인적으로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일이 없었다면, 이 영화 또한 영화 '광해'나 책 '왕자와 거지'에 등장한 소동처럼 한편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릴러'로써 제대로 활용된다. '정체성'의 혼란이 가져다주는 그 기본적인 공포와 그를 이용한 욕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은 개인적으로 내게는 이 영화가 유일했다. 항상 이런 '도플갱어 전설'을 다루는 영화들은 단순하게 저들의 생김새가 닮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치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었다. 왕과 광대, 왕자와 거지, 영주와 그림자 무사까지. 그 계급 차이로 표출되는 욕망을 이 영화에서는 배제한다. 물론, 신분상승에 대한 것만 아닐 뿐 이 영화는 그 욕망의 동력으로 갈등의 순간을 향해 굴러간다. 아담이 수업을 하는 장면에서 하는 첫 대사는 '통제, 문제는 통제다.'라는 말이다. 별 의미 없이 넘긴 그 말이 여운을 남기는 것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했던 첫 이야기는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내뿜는 욕망에 대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영화같이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쩌면 스스로를 찾아가는 방식을 잘못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에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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