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미국으로 건너온 프랑스인이었던 티에리 구에타는 LA에 정착해 옷을 팔던 사람이었다. 평범한 가게 사장님인 그에게는 하나의 강박증이 있었다. 이를테면 '촬영 강박'이라 부를만한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카메라로 촬영하지 않고서는 못 배겨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들, 우연히 보게 된 유명인들까지 그의 카메라 테이프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항상 카메라와 함께 봤다. 그렇게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던 중에 유독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사촌이 하던 일이었다. 티에리의 사촌은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외계인들을 타일로 만들어서 몰래 거리와 건물에 붙이는 일을 했다. 자그마한 타일들로 만들어진 그 외계인들은 '거리 미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 침공의 선봉이었다. '불법'이라는 말을 떼고 보기 힘든 거리 미술의 시작을 누군가의 '침략'으로 출발했다는 것이 언뜻 생각해보니 그럴듯해 보였다. 벽면에다 무단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들은 그것의 '미적 측면'과는 별개로 '반달리즘'의 행위이니 말이다. 여하튼 티에리의 사촌인 인베이더를 비롯해서, 거리 미술을 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은 그 모든 것을 촬영하는 티에리의 열정에 신기해했다. 한두 번이 아닌, 매번 볼 때마다 촬영을 시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티에리의 행동을 재밌어하면서도 이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어디에 쓰게요?'
티에리는 그들에게 '거리 미술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 명분을 위해서 수많은 거리 미술가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을 촬영했다. 열정적으로 촬영을 하던 중에 티에리는 '뱅크시'라는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풍자 그림들로 언론에 줄곧 오르내리던 인물. 그러나 독특한 스타일을 제외하면 그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인물이 뱅크시였다. 이름, 얼굴, 사는 지역도 모르는 사람과 연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누군가가 무엇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지금은 아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정보들은 그런 방식으로 공유되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뱅크시는 전화도 없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한 열정적인 촬영가와 한 거리 미술가는 만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티에리와 뱅크시가 함께 해온 시간들을 한 시간 삼십 분으로 응축해 만든 영화다. 몇십 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행적과 거리 미술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 시간 안에 정갈하게 담아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정갈한 내용 정리와 더불어서 자칫 잘못하면 치졸한 짓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일들, '고자질'같은 이야기들을 뱅크시의 장기인 '풍자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그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그라피티'를 통해 그 상황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표현의 수단으로 택해서 본인의 주관이 담긴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저 '다른 쪽에도 재능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넘어서, 이 사람이 본인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 얼마나 애착을 갖는지가 느껴졌다. 티에리가 찍어 놓은 수천 시간 분량의 기록들.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새겨졌던 '거리 미술'의 기록들은 촬영했던 당사자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편집해서 의미 있는 기록으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뱅크시의 능력이었다.
이 세상 속에서 본인만의 메시지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안다는 것은 참 행운 가득한 일이다. 글을 쓰다가 신선한 표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신나서 그것을 옮겨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표현이 나 스스로 해낸 온전한 나의 생각인가?'하는 물음 때문에 손을 잠깐 멈추곤 한다. 뱅크시는 정확하게 그의 것을 알고 있었지만, 티에리는 그렇지 않았다. 다만, 둘의 관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말로는 '거리 미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했지만 티에리에게 있어 이 작업들이 의미를 갖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개인적인 의도를 담고 만들었지만, '거리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티에리는 뱅크시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 차이는 그들이 해왔던 모든 것을 꿰뚫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거의 초창기의 거리 미술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불법'을 무기로 '저항 정신'을 담아서 만들어냈던 작품들이 작가의 유명세에 따라 인기를 얻고 '경매'에 붙여져 거액을 받고 팔리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심지어 감독인 뱅크시 본인의 작품이 팔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권위 있는 경매에서 비싼 가격을 받고 작품이 팔리게 되면, 작가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유명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도,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돈은 사람들의 위치를 바꾼다. 사람들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돈'이 사람을 바꾼다. 먹고사는 문제가 전적으로 '돈'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을 위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과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돈'이 따라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겪는 해묵은 갈등이다. 사람들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무엇이 '예술가'를 만드냐는 것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예술가로 만들어지는 것은 단순히 '될 수 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