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영화인가

영화 '사이드 바이 사이드'

by wanderer

기술은 예술에 영감을, 예술은 기술을 진보하게끔 만든다. 특히, 영화 산업의 경우에 기술과 예술의 긴장상태는 근래 들어 수없이 많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수많은 필름들을 가지고 만들어졌던 영화들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대격변의 시대를 혹은 쇠락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처음에 디지털카메라를 통한 촬영 방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만 해도, 그것을 긍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화질부터 해서 필름 카메라와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재밌는 것은 저화질 특유의 '조잡함'을 가지고 와서, 이를 하나의 장르로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포르노, 뉴스의 자료화면으로나 활용되던 것을 들고 와서 영화 제작에 사용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하지만, 단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화질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보면 장점 또한 있었다. 그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들에 비해서 훨씬 저렴했다. 그 덕분에 촬영 현장에서 감독은 보다 많은 재량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독창적인 형태의 영화들이 등장했다. 영화 '28일 후'는 이 DV 카메라로 예산을 적게 들여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서 처음 '28일 후'를 봤을 때는 화질 때문에 두 눈 크게 뜨고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왠지 모르게 영화 속 분위기와 DV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생각보다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바이러스가 휩쓴 세상은 황폐하고, 건조했고 DV 카메라의 화면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녹아들어 있었다.

영화 '28일 후'

영화에서 필름과 디지털의 관계를 두고서 감독들이 서로 의견을 피력했던 것이 굉장히 재밌었다. 필름과 디지털이 주는 느낌은 각기 달랐지만, 각기 다른 이유와 설명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 열렬하게 변호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직업인으로서의 프로 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창작자의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좋아하던 일을 업으로 삼아서 계속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 카메라가 유일한 방식이던 시절에, 촬영감독들은 본인만의 기준을 가지고 촬영을 담당했다. 필름을 인화해서 다시 확인해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감독들은 촬영감독의 미적 감각을 신뢰하고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필름을 인화하는데 드는 시간뿐만 아니라, 돈도 문제였다. 필름 롤은 무척이나 비쌌고, 촬영을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분량의 롤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상황을 반전시킬 어떤 기술의 등장은, 그 시작은 비록 미약했어도 새로운 출발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조지 루카스, 제임스 카메론을 비롯해서 수많은 감독들은 기술들이 가져온 변화를 본인의 영화에 투자했다. 이들이 기술에 투자한 것은 시각효과 기술의 발전으로 돌아왔다. '스타워즈'시리즈부터, '아바타'까지. 기술들은 표현할 수 없던 영역에 놓여있던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평면으로 마주하던 화면은 3D로 이어졌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그 환호성 속에서, 사람들은 아마도 기술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 가까이 있지 않다고 직감했을 것이다. 기대치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지난 몇 년간의 영화들은 그야말로 눈부신 기술 발전의 향연이 이어졌다. 수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한 땀 한 땀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라는 틀 안에 담기는 의식은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리얼함을 추구할 수도, 상상의 끝을 보려고 할 수도 있다. 소재를 현실적으로 잡고, 내용 전개에 상상력을 가미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다. 어떤 형태의 시도를 하든, 감독들은 그에 맞춰서 능동적으로 촬영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이 과정이 단순히 어떤 형태의 카메라를 사용할 것인지 따지는 문제를 지나서, 방식이 메시지를 결정하는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사례처럼 3D 영화가 활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거기에 단순히 입체감을 느끼는 영화를 넘어서 체험의 영역에 들어서려 하고 있는 영화. 보고 듣는 것에서 일체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변하게 된다면, 그 진화한 형태의 영화는 어떻게 활용될까. 그 형태의 영화는 '영화'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예 다른 형태의 '무엇'인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제 더 이상 어린 세대들이 스크린의 것들을 아무것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CG의 눈부신 변혁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그 변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들이 어느 시점에 영화를 경험하게 되었는가와 연관되어 있다. 그 인식은 시대별로 다르고, 또 세대별로 다르다. 영화의 변천사를 모두 경험하면서 자라온 세대와 어느 한쪽의 방식만 경험해본 세대가 말하는 '영화'라는 매체는 분명 다를 것이다. 영화가 허상을 그려내는 데에 능숙하기는 하지만, 그 말이 전체를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VHS로 첫 발걸음을 떼었던 영화 감상이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형태로 변했다. 내게 영화는 누군가 보여주니까 봤던 것에서, 찾아서 보게 되는 것으로 변했다. 영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 한들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유효하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이드 바이 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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