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집?

EBS 다큐프라임 '아파트 중독'

by wand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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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모양의 타이, 빚의 무게는 목을 꽉 움켜쥔 채로 놓아두질 않는다.

우리가 어떤 공간에서 사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보는 풍경이 달라지면, 드는 생각 또한 달라진다. 자연스레 공간의 사고방식을 배우면서 자란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습득하는 생활방식, 습관들이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이나 빌라에 사는 사람과 똑같지는 않다. 나는 아파트에서 자랐다. 아파트라는 공간 안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 몇 가지는 주로 '소음 문제'와 결부된다. 발꿈치는 들고 소리 나지 않게, 피아노는 오후 8시 전까지만 치기, 문 쾅쾅 닫지 않기처럼 이웃과의 거리가 보다 밀접해있음을 체험하면서 자랐다. 하지만, 자라는 나잇대에 있는 아이들이 그런 '주의' 몇 번에 행동을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웃들과 친해져야 했다. 조심하겠지만,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 소음을 만들면서 자랐지만, '문제'가 되지 않고 자란 것은 이웃의 아량과 서로 조심하겠다는 생각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아파트의 이웃들은 말 그대로 '동네'라는 그룹 안에 같이 속해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은 많이 떠났다. 나도 떠났다.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할 이웃이 몇 없어졌다. 이제는 오히려 어색하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핸드폰을 바라보는 모습이 더 익숙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살아온 공간과 살아갈 공간의 모습을 그린다. 그 안에서, 당신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어떤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까.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나에게 아파트는 주택보다 익숙한 '집'이다. 집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했을 때 바로 아파트가 떠오를 수 있을 정도다. 누군가에게 아파트는 좋은 점보다 불편한 것이 많은 공간일 수 있겠지만, 나에겐 이곳이 집이었다.


아파트를 고민하고,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면서 아파트를 이해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한 공간이 있는 것은 우리 집뿐만이 아니었고, 다큐멘터리 속 가족들의 모습은 우리 집처럼 보였다. 아주 당연하게 살고 있을 때에는 몰랐던 공간의 낭비들과 '나만의 공간',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어졌다. 머릿속으로 나만의 집을 생각하면서 그 공간에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워 넣을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이 '공간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내가 살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내 공간 속에 채워나갈지 고민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공간에 대한 고민은 '나'를 찾는 과정의 연속선상에 놓인다.

사람들이 만들어둔 골격 안에 들어가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든 내 생활 패턴과 습관을 그 속에 욱여넣어서 버티고 버텨 익숙해질 때까지 있어야 한다. 한국의 아파트는 단순하지 않다. 40여 년의 세월을 변화해온 그 중심에 아파트가 있다. 동일한 규격의 수많은 아파트들은 한편으론 몰개성이라 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론 '평범함'이라는 틀이 될 수도 있다. 언제 낮은 적이 있었냐만은, 갈수록 턱없이 높아져만 가는 아파트 가격을 보고 있다 보면 그에 따라서 '중산층'이라는 틀도 혹은 '평범'이라는 기준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만 같다. 집을 위해서 어떻게든 대출을 받고,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는 일상들이 내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진다. 그 거대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것은 아직 무엇도 되지 못한 학생의 입장에서는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사람들의 삶이 무엇에 중독되어 있다면,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한 것인지 알아보고 중독에 맞는 대처를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아파트 중독'은 무엇에 대한 중독일까. 표준화된 삶에 대한 중독인가, 효율성에 대한 중독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아파트에 사는 걸까. 급격하게 도시를 향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수많은 아파트들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 집약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도시는 '아파트 중심'의 것이었다. 높디높은 빌딩과 집약적인 도시의 면적 활용은 오로지 '빠른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 위로 뻗어나가는 아파트의 아찔한 높이를 두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이젠 비교할 수 없이 편해진 아파트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과연 나를 위한 집에서 사는 것인지 아파트를 위한 내가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우리 집은 누구를 위한 집일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하이 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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