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상인가?

영화 '내추럴 디스오더'

by wanderer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는가. 누가 누구를 '비정상적'이라 규정할 때,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교과서로 배웠던 '다름의 인정'을 실생활에 적용해 바라보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 영화는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묻는다. 야코브 노셀과 우리는 분명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이 살고 있지만,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걸음걸이는 구부정하고, 발음은 어눌하다. 숨 쉬고, 말하고, 움직이는 매 순간이 그에게는 싸움이다. 스스로가 대상인 싸움 속에서, 야코브 노셀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때론 그 자신에게, 때론 세상을 향한다.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나(야코브 노셀)는 살아도 되는 인간인가. 당신은 뇌성마비 자식을 낳을 것인가. 뇌성마비 환자의 정자 기증을 받을 것인가 하는 질문들은 그 질문들을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도 숙연한 감정이 생긴다.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는 일이 나쁜 일이라 배워왔으면서도, 실제로 그 일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이란 생각은 못한다. 비수 같은 질문들을 갖고, 야코브 노셀은 연극을 한 편 만든다. 본인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한 연극이다.

이 영화는 일반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매체에서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야코브 노셀의 이야기를 마냥 슬프게 그리는 것도, 장애를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지도, 동정심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장애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그를 둘러싼 세상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담담하게 담아낼 뿐이다. 그에 대한 연극이 극장에 상영되기까지의 일들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야코브 노셀은 미래에는 어떻게 사회가 바뀔지 철학자와 이야기하고, 의사를 찾아가 본인이 남들과 어느 부분이 다른지 물어보고, 연극을 만드는 사람과 그 의견들을 나눈다. 세계와 세계의 충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찌할 바 모르고, 당혹감을 느낀다. 야코브 노셀과 연극을 같이 만들던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어떤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했다. 야코브처럼 연기를 하던 배우가 느꼈던 것은 그런 종류라고 생각한다. 단지 갸우뚱한 고개로, 말을 어눌하게 한다 해서 그의 삶을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야코브의 삶을 재연하는 것에 있어서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불가해 영역에 놓여있는 야코브의 삶.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야코브의 질문들은 외면해도 끊임없이 내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망각하는 순간, 삶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고 존재하게 되는, 그래서 애써 묻지 않는 이들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와 자신의 것들로 국한되는 것이 아닐까. 나를 정상으로 두는 일은 편한 마음가짐이다. 적어도 우리는 야코브처럼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철학자를 찾아가거나, 의학 상담을 받지는 않으니까. 이 영화는 감정 이입의 반대편에서 울림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질문하고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 야코브 노센이 있었다. 오히려 내가 그의 세계를 잘 모르기에, 그가 생각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더 잘 와 닿았던 것 같다. 이렇게 미쳐 생각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사고는 훨씬 더 감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정상이 되기 위해서 비정상을 고민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정상을 증명하기 위해 정상을 고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중에 언제나 빠져있던 나 자신을 그 한복판에 두고 생각해보는 일은 생소한 경험이었다. 가정의 시작은 '내가 정상인의 입장에서 보면'이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 나는 스스로를 확신할 수 없었다. 정답도 없고, 본인 선택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겠지만 생각 없이 보내온 나날에 대한 부끄러움이 먼저 들었다. 언젠가 마지막으로 비정상이라 판단해왔던 사람이 죽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가 '정상적인' 세상 속에서 살게 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비정상'을 찾아내고 계급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수저도 나뉘는 마당에, 무엇이 불가능할까. 정상이 되고자 노력하는, Be정상은 非정상의 영역인가 정상의 영역인가. 구분 짓고, 구별을 통한 차별이 본능의 것이라면 우리의 본성은 정상적인 것일까. 수없이 많은 다큐멘터리가 그러했지만, 야코브 노센의 목소리와 영화에 담긴 메시지의 무게는 너무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내추럴 디스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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