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버 렛 미 고(2010)'
예전에 어렸을 때에 병아리를 키웠던 적이 있다. 유독 깃털 색깔이 샛노랗던 병아리였다. 작은 상자 안에서 그 울음소리가 듣기 참 좋았었다. 처음 우리 집에 올 때부터 아팠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 애는 죽어버렸다. 주말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다시 집에 와보니 죽어있었다. 유치원을 다닐 때로 기억하는데 그게 내가 본 첫 '죽음'이었다. 그렇게 병아리를 묻어두고, 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머리를 잘라주시는 아주머니는 갑작스럽게 울음이 터진 나를 어찌할 줄 몰라하셨고, 엄마는 그 상황에 대해서 열심히 해명하셨다.
그 일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 너무나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이었고, 거의 유일하게 기억나는 7살 때의 기억이긴 하지만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은 내가 살아온 만큼 나이를 더 먹고 나서였다. 중학생 때 나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이런 생각은 참 이상하게도 해가 쨍쨍하고 기운이 넘쳐날 때 나지 않았다. 꼭 잠들기 전에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그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고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베갯잇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있곤 했다. 도대체 그 생각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된 것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쉽게 잠들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커다란 공포였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보다 당장에 학점과 토익과 졸업과 취직이 더 큰 공포로 느껴진다. 어쩌면 그 공포의 원인은 이 영화에 나오는 복제인간들처럼 결국에 어디엔가 팔리게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1952년에 의학적인 발전을 이뤄서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100살이 넘어가는 시대를 가정하고 있다. 한적한 교외에 지어져 있는 헤일셤 학교는 장기기증을 위한 아이들을 기르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학교 밖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철저히 통제되어 안전하게 키워진다. 그렇게 18살이 된 아이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져서 장기 기증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토미와 루스, 캐시도 그런 아이들이었다. 평범한 헤일셤의 학생들이었다. 캐시는 다른 아이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하던 토미를 알게 모르게 챙겨주면서 친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토미는 항상 그를 놀려대곤 했던 루스와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세 사람은 그렇게 어울려 생활했지만, 관계는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새로운 곳에서 기증을 기다리는 동안 어긋나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고 결국 그들은 흩어지게 된다.
담고 있는 주제의식이 무겁기 그지없었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아마도 그 영향은 주인공들이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을 가르쳤던 루시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그들이 장기를 기증하는 예정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덧붙여서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 그 아이들에게 '죽는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다음 날에 선생님이 떠났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 장면을 다시 보면 볼수록 과연 그 선생님의 이야기가 올바른 것이었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살다 죽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꼭 필요한 말이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겼다. 나라면 과연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정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었을까. 반쪽짜리 자유가 있음을 알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아예 그들에게 그 사실 자체를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아직도 고민스럽다. 누군가는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바꾸지 못하는 것이라도 말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것을 말해주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일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는 수많은 영화에서 다뤄졌었지만, 이 영화처럼 다룬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캐시의 내레이션은 담담했다. 그녀는 관찰하고 있었고, 영화의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답답하는 생각이 들 때에도 잡다한 고민들이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 가장 마지막에 내 마음속에 남는 것은 '처연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아프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영화 내내 기다려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시: 그런데 확신이 안 서는 것이 있다. 과연 우리 목숨이 우리가 살린 목숨과 그토록 다를까? 우리는 모두 종료된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과연 충분히 살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보는 것이 아프지만,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그런 영화들은 보고 나면 생각이 남는다기보다는 감정이 더 크게 남는다. 개중에는 영화를 보고 있던 당시의 감정도 있고, 나중에 이런저런 생각이 겹쳐지면서 느껴지는 감정도 있다. 감정을 기억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 영화의 경우에는 그것을 꼭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네버 렛 미 고(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