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움의 종착역'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되지만, 한 사람 사람의 이야기는 잊히기 마련이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는 역사책에 남았지만, 그 개개인의 삶은 잊혔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도 개개인과 함께 같이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한 줄의 말로 남은 기록이 그들의 이야기를 다 담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남해에는 독일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독일마을'이 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그곳에는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뻔한 사실이 놀랍도록 무신경했던 내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여행 스케줄 속에서 그곳에 누가 사는가 관심 가질 일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 여행의 목적은 그들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니었으니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바른 표현일 것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몰랐던 사실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되살아났다.
이야기의 끝은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역사 속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 생각하고 잠정 결론을 지었던 이야기는 새로운 공간에서 탄생했다. 남해에 있는 평범한 마을은 문화교류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의 '관광지'가 되었고, 그렇게 독일마을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보고 나서,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그 공간은 마냥 이국적인 풍경만 남아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타지에서 몇십 년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제목처럼 그리움의 종착역이었을까? 서로 다른 고향을 두고 살아왔던 부부 사이에서 고향은 그리움의 종착역이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끝내 해소되지 않는 끝없는 그리움을 마음 한편에 남겨두고 사는 일이 그런 것 아닐까. 태어나 자라온 고향과, 살아가는 고향 두 공간 속에서 어느 한 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그리움의 모양새는 각자 다 다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보고 싶고 애타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뭔가를 그리워하면 반드시 그 대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중요했던 것은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말이 많지도, 소리의 공백을 메워줄 음악이 풍부한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내레이션 또한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 '독일마을'이라는 공간에서의 생활, 그 환경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리움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 부재에서 오는 허한 마음을 보여줬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영화는 몇 마디 말을 덜어내는 대신에, 그만큼을 가슴속에 새겨주었다.
제목에 독일어가 있어서 검색을 해보니 저 'Sehnsucht'라는 말에는 그리움이라는 뜻 외에도 열망, 갈망, 혹은 동경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거기에 독일인들이 꼽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그런 조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독일 사람들이 무척이나 애정을 갖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리움이라는 말은 상실의 아픔이 만들어내는 가장 따뜻한 감정이다. 부재의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해 꼭꼭 마음속에 담아두고 이따금 열어보는 경험이 그리움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움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더 많이 이별하고 헤어져봐야 한다. 그 수많은 이별 속에서 사람들은 그 또한 관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적응하고 살아간다. 아직 미련이 많아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들이 내 주변에는 수두룩하다. 언제쯤 잡고 있는 그 끈들을 마음 편히 놓을 수 있을까. 그리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가 되는 것은 몇 살쯤일까. 암만 생각해봐도 지금은 도저히 그 답을 모르겠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