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너스레를 위해서

영화 '할머니의 먼 집'

by wanderer

아흔셋이신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하셨다 한다. 화장대 위에는 장례에 쓰라고 30만 원이 올라와 있었다. 그해 여름, 할머니를 카메라로 촬영했다. 손녀와 할머니, 카메라가 함께 하는 삶. 손녀는 할머니에게 대뜸 왜 죽을라 그랬냐 물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살아온 만큼만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평생 아픔을 모르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렇다. 살아온 만큼의 상처가 새겨져 있고 좋든 싫든 상처에는 새살이 돋아난다. 원치 않아도 다친 곳에는 새살이 돋아난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일처럼 우리가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 없다. 그저 살아가고, 삶을 겪어낼 뿐이다. 그 무게에는 경중이 있다. 어떨 때에는 한없이 가볍다가도 돌아보면 버거울 정도로 무겁게 매달리기도 한다. 상처가 쌓이면 삶이 가벼워진다. 영혼은 원체 무거운 것이라 상처가 나면 그만큼 파인다. 마음 같지 않은 몸을 그대로 두고 떠나려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그냥 그만큼 영혼이 가벼워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에는 모든 일에 정답이 있었던 것만 같았는데 자라면서 보니 답이 없는 일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처음 사는 삶에 처음 만난 사람들을 익숙해질 만큼 오래 봐왔어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한 번만 본 사람들이지 않은가. 몇 번씩 되살아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서로서로 처음 사는 삶에 조심스럽게 행동할 뿐이다. 사는 일의 답이라고 하는 것도 보면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진리일 뿐이다. 모든 게 처음인 이 세상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조심한다. 상처받는 일에 조심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상처 내며 살고 있다. 아이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어른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변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는 변하지 않는 일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너무도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숙의 빈자리를 할머니는 술로 채웠다. 연거푸 술을 찾으시는 할머니를 두고 손녀는 계속 그렇게 술을 찾으시면 그냥 서울로 가버린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런 손녀의 말에 별말씀하지 않으신다. 보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보고 싶어도 미안해서 차마 붙잡지 못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훌쩍 커버린 손녀는 가끔씩 시골을 오갈 뿐 찾을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이는 술 밖에 없었다. 술로도 온전히 해갈할 수 없는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달랠 방법이 없었으리라. 외숙은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 말이 무척이나 아프게 다가왔다.


어렸을 때에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 때마다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이 할머니를 힘들게 만드는 말이었을까?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가 문득 생각났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항상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찾아뵈면 그렇게 말하라고 은근히 부추기셨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손자인 내가 무얼 할 때까지는 살아 있어야지 라고 말하셨던 것 같다. 어느샌가 자신에서 자식으로 자식에서 손자로 미뤄졌던 삶의 목표는 그 손자까지 장성하고 나면 비워진다. 그럴 때 문득 자신의 삶에 공허함이 밀려 들어오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의 책임으로 버텨왔던 그 삶은 가족들이 흩어지고 나면 다시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오래오래 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좋든 싫든 실컷 얼굴을 맞대며 살아야 하는 시간들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평생처럼 느껴지던 집을 벗어나서 '본가'와 '자취방'이 나뉘는 사이에 부모님은 부쩍 나이 드셨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은 자신의 취미를 찾으셨고 자식 둘을 키우느라 소홀했던 본인의 삶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계셨다. 넓어지지는 못해도 깊어지는 삶. 깊어지며 보이는 것들은 넓어지며 봤던 것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리 없이 나이를 더 먹어봐야 한다. 영상에서 어른들이 나눴던 대화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무엇이 그 사람을 더 생각해서 하는 말인가? 하는 질문에 나는 쉽사리 나의 대답을 가질 수 없었다.


굳건한 너스레. 사는 순간순간을 힘껏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은 그 '굳건한 너스레'에서 나온다. 담담하게 아픈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손녀가 할머니에게 하는 이야기는 대놓고 마주하기보다는 넉살 좋게 은근슬쩍 던져지는 질문들이다. 대답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때에 묻는다. 너스레는 이 영화를 마냥 감상적으로 슬픈 눈길로 바라보게 두지 않는다. 마음 한편에는 생각을 위한 공간을 두지만 일단은, 환하게 웃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할머니의 먼 집'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