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코야니스카시'
어떻게 표현할 것이고, 무엇을 표현하는지 고민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름의 철학을 갖고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썼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참신한 표현을 생각할 수는 있어도 참신한 표현법을 생각해내긴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이것저것 조물거렸다. 시간도 좋은 소재였고, 공간도 좋았다. 늘이고 줄이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에 의미를 덧입히며 세계는 조금씩 요동쳤다. 이 다큐멘터리만큼 그런 예시에 어울리는 영화도 없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충격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불발탄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감정을 머릿속에 깊게 박는다.
이미지와 이해하지 못하는 노랫소리만으로 전달된다. 설명이 없다는 것. 이해를 위해 직접적인 소통을 택하는 대신, 간접적인 방식을 택하는 건 무척 자신감 넘치는 일이다. 말과 글은 보다 확실한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소통 체계다. 치밀한 언어의 규칙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소통을 위해서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통은 진부하다. 상상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피어난다. 작디작은 오해가 숙성되고 피어나는 과정을 통해 상상이 맺어진다. 정확한 전달 외에 받아들이는 부정확한 정보들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이어져 상상이 된다.
언어를 통해 사고하면 언어라는 틀로만 세상을 보게 된다. 임의로 언어를 배제하고 나면 철저하게 우리는 홀로 남는다. 광막한 상상의 세계는 말이 좋아 상상이지 실은 공허한 감정이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제 머리를 굴려보게끔 생각을 강제하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글에 갇혀 살아가니까 사람들은 자유로이 상상하기보다는 서로의 글과 말을 정확하게 해석하기에 바쁘다. 사회 속에서는 정확한 이해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되니까. 이 영화에서는 언어에 의존해 소통하지 않는다. 원시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에 당신은 떠밀리듯 밀려간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정확한 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몇 가지 테마로 묶을 수 있는 이미지들이 어지러이 스쳐 지나갔다. 자연 대 인간 문명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로 이미지들이 지나갔다.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은 타임랩스로 많은 그림들을 빠르게 보여주거나, 슬로우 모션으로 한 장면을 느리게 보여준다. 정속으로 가는 그림이 얼마나 있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제멋대로였다. 1시간 26분 동안 그런 그림들이 지나간다.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은 그 긴 시간 동안 조용히 세계를 관조한다. 속도와 관계의 대비를 통해 끊임없이 이미지와 소리가 머릿속에서 부딪혀 충돌한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와 속도에 휩싸여 괜스레 불안해진다.
파도치는 모습, 광활한 숲, 메마른 절벽의 경이로운 모습이 지나간 다음에 석유 시추기가 땅 속에서 석유를 빨아들이는 동작을 보여준다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렴풋하게나마 환경을 보호하자는 생각을 해볼지도 모른다. 쓰레기가 넘쳐 발 밑에 굴러다니고,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이에 반해 자연은 적막하고 웅장하게 필멸의 생을 모두 끌어안는다. 이렇게 무작정 뻗어나가는 사유가 붙잡힌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붙잡고 그 생각을 갖고 또다시 비교하고 늘이고, 줄인다. 이러니 다음 장면들은 그 '관계'를 기준으로 추리하게 된다. 이해할 수 있는 단서라고는 이미지의 배열 순서뿐이니까. 관계는 지극히 텍스트적인, 말과 글에 의존하는 단어다. 이를 말과 글을 쓰지 않고 표현하려 해 보면 참 재밌어진다. 이런 느낌이다.
Q. 당신의 부모님과 당신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말과 글을 쓰지 않고 표현하시오(3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내가 '나'라는 사실은, 내 '부모'가 '내' 부모라는 사실은. 단순한 질문이지만 무척 고민하게 된다. 모범 답안은 아니겠지만, 내가 표현해보자면 이렇다. 한국에서 설명을 해야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단은 어색하게 웃는 모습과 앞줄에 부모님이 의자에 앉아야 하고 그 뒤에 나와 동생이 서 있어야 한다. 전형적인 가족사진의 구도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이 관계를 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 집은 별도로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적은 없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이런 많은 고민들에서 출발한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생각을 익숙하지 않은 도구로 표현하기에 이 영화는 마냥 쉽지는 않다. 미니멀리즘 음악만을 쓰는 건 충분히 미니멀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감독은 말과 글을 버리고 실컷 보여주기만 한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당신이 1시간 26분 동안 느낄 감정은 낯섦과 불안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글과 말에 둘러싸여 살아간다는 행복을 한껏 느끼게 해주는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내게 주어지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기에 그 긴 시간 동안을 온전히 생각에 잠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름의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마지막에 이르고 나면 그만한 보상은 얻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느꼈던 감상을 두서없이 이곳에 풀어놓는 것처럼, 어쩌면 당신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IMDB 'Koyaanisqatsi', 다음 영화 '코야니스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