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영화 '웨이스트 랜드'

by wanderer

현대 예술가 빅 무니즈. 그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져와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낸다. 흙, 철사, 시럽, 장난감 등 소재가 되지 않는 것들은 없다. 그는 본인의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살고 있던 터전에서 나와서 다른 환경에 있어보는 것'. 그는 바로 그 경험이 사람을 변화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빅 무니즈는 그 믿음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쓰레기 매립지에서의 작업을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라고 이야기하는 '자르딤 그라마초' 지역. 그곳에서 사람들을 촬영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예술가는 자르딤 그라마초가 어떤 곳인지,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알아간다. 재활용품을 줍는 사람들을 여기서는 '카타도르'라고 부르는데 빅은 그런 카타도르의 초상을 담아내려 한다. 그들이 하루 종일 날라 옮기는 '매립된 쓰레기들'을 통해서.


빅 무니즈의 아내는 이 프로젝트를 걱정했다.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빅 무니즈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가를 끈질기게 설득해야만 했다. 그는 단지 예술가의 무모한 도전 정신에 입각해서 이 일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신념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불어넣고 싶었다. 일상 속 소재들로 그곳 사람들을 그려내고 싶어 했다. 카타도르는 버려진 쓰레기를 긁어모아 본인의 삶을 영위한다. 빅 무니즈는 그 물건들 속에 얼굴이 숨어있다 믿었다.

이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모든 영화에는 매력적인 순간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두 가지 순간이다. 하나는 영화의 초반부에 빅 무니즈가 '슈거 칠드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다. 스스로도 본인의 제일 주요한 경력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그 작품은 캐리비안 세인트 키츠 섬에 있는 농장 일꾼들의 아들, 딸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 섬의 일꾼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해맑은 아이들과 비교해서 부모들의 삶은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농부들은 16시간을 농장에서 일했다. 그 대조를 보고 느끼며 그는 하나의 의문을 떠올렸다.


'행복했던 아이가 왜 서글픈 어른이 되는 것인가? 자라면서 무엇을 잃는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답은 설탕이었다. 설탕이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아 간 것이었다. 그런 결론을 내리자,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서 설탕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그려서 사진으로 남긴다. 아마이 맥락을 모르고서 설탕으로 그려낸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들의 순수함이 달콤한 설탕으로 표현이 되는구나,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설탕으로 표현할 생각을 하다니'라고 작가의 의도와는 정 반대로 해석해내지 않았을까? 누군가의 초상화를 만드는 일은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담아내는 일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기게 마련이다.


빅 무니즈의 활동이 자르딤 그라마초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가감 없이 동료들과 이야기하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자르딤 그라마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의 삶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이리저리 방황하다 끝끝내 그곳에 정착한 사람도 있었다. 이 영화는 그 부분까지 보여준다. 작품 제작에 참여한 모델들은 자르딤 그라마초를 이미 잊었다고, 돌아가기도 싫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유명 예술가의 모델이 되는 일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일이니까. 그의 동료들은 염려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의 마음속에 불만 질러놓고 책임지지 않는 것인지를 그에게 되묻는다. 빅 무니즈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다른 현실을 봐야 생각의 방식도 달라진다고 믿었다.


미술관에 가본 적이 있다면 사람들이 작품을 어떻게 관찰하는지 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작품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작가가 어떻게 색을 입혔는지,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를 본다. 다가서서는 소재를, 멀리 떨어져서는 이미지를 본다. 저 사진 속에 있는 재활용품들은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던 모든 이들의 삶이다. 저 개개의 재활용품에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이 있다면 그것을 한데 모아 그림으로 만들어 놓은 저 사진 전체는 어떠한가. 저 그림은 누구의 삶일까?

빅 무니즈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장 배경의 역할이 컸다. 그가 만약에 가난한 집안이 아니라, 부유 한집안에서 자라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며 지금 그의 위치에 도달해 있었다면 이 영화는 어쩌면 예술가의 괴벽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빅 무니즈는 가난했다. 그는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물질적인 것에 집착했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꾸밈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 참여한 모델들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열어줬다는 것에 있다. 작품 전시와 함께 언론에서 카타도르의 인터뷰를 하는 모습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시 자르딤 그라마초로 돌아갈 수도, 그곳을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카타도르들은 적어도 그들의 과거를 마냥 덮어두려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그 사소한 변화가 내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소재가 중요한 것은 그런 이유다. 어떤 소재는 사람의 시야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다큐멘터리의 목적이 타인에 다가서는 것이라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은 그 소재와 방식의 문제다. 빅 무니즈의 말대로 '물질(작품에 쓰이는 재료)이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면 다큐멘터리는 그것을 온전하게 화면 밖으로 인도해줄 수 있어야 한다. 화면 속의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청자의 몫이지만,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을 원활하게 이끌어내야 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웨이스트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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