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견디는 나만의 방
올해는 몇 년 만에 이례적인 기온은 너나없이 최고의 더위로 느낀다. 아침 해가 뜨자 조금도 미련이 없는 듯 하늘 꼭대기에서 맹렬하게 쏟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늦게 창문을 닫을 때까지, 공기마저 달궈져 있는 느낌이다. 거리에는 연신 폭염주의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휴대전화에는 ‘온열질환 안전문자’가 수시로 울린다. 여름이 이렇게 덥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한증막 어때?” 짧은 물음이었지만, 그 순간 묘하게 마음이 끌렸다. 그야말로 즉흥적인 약속이었다. 더운 날에 뜨거운 데를 간다니 누군가는 고개를 저을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즉흥 번개팅으로 네 명이 웃으며 차에 몸을 싣고 장거리 대형 한증막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뜨겁고 신선한 초록의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첫 호흡은 늘 버겁다. 하지만 이내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 몸이 마치 오랜 기억을 되살리듯 자연스레 적응한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생각한다. "이열치열이라는 말, 괜히 생긴 게 아니지." "아휴 시원해" ' 살 거 같다는 이구동성으로 릴랙스의 몸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한증막을 단순히 사우나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에게 이곳은 그 이상이다. 겉으로는 땀을 흘리는 장소지만, 속으로는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놓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뜨거움 속에서, 매일매일 쌓인 피로와 걱정이 땀과 함께 흘러내리는 듯하다.
특히 한증막만의 묘미는 그 뒤에 있다. 뜨거운 방에서 나와 평상과 의자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청량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와닿는다. 친구들과 동시에 “아, 살겠다!” 하고 외치며 웃는 모습은, 그 어떤 여행지의 화려한 풍경보다 값진 추억으로 남는다.
한증막은 흥미로운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다. 낯선 이들과도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뜨거운 열기를 함께 견디다 보면, 묘한 동지애가 생기기 때문이다. 옆자리에 앉은 지인은 “더울 땐 더운 데 와야 시원하지” 하며 농담을 건네고, 그렇게 흘러가는 장면 속에서, 나는 삶의 온기를 배운다.
친구들과의 대화도 빠질 수 없다. 무거운 주제도, 가벼운 농담도 모두 허용되는 공간이다. 땀에 젖어 지친 얼굴로도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어떤 친구는 "내일 시험인데 그냥 포기하고 왔다"며 푸념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회사에서 혼나고 난 뒤엔 여기가 제일 좋다"며 웃는다. 그러다 보면 우리 사이에 얽힌 근심과 피로가 한 겹씩 벗겨지는 느낌이다.
요즘 사람들은 여름이면 멀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닷가나 계곡, 혹은 해외여행까지. 하지만 늘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 시간과 돈, 복잡한 준비물이 필요하다. 반면 한증막은 피서 겸 마음이 가볍게 된다. 그 안에서 흘린 땀과 나눈 웃음이 그 어떤 화려한 리조트 못지않게 마음을 채워준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행복은 꼭 거창한 곳에서만 오는 게 아니구나.’ 뜨거운 방 안에서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다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면, 세상 소음이 멀리 사라진다. 그 순간의 평온함이야말로 내가 찾던 진짜 휴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바쁘다. 일과 학업, 가족과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낸다. 그러다 보니 마음을 비울 시간은 쉽게 놓친다. 하지만 한증막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내려놓게 된다. 옷도, 장식도, 체면도 다 벗겨지고, 오로지 ‘나’만 남는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나는 이곳에서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잘 살고 있나?" 뜨거운 공기 속에서 답을 찾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묻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들여다보게 된다. 땀과 함께 엉켜 있던 걱정이 조금은 풀리고, 막혔던 생각이 한결 유연해진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한다. 사람들은 앞만 보며 달리고,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안도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건 이런 작은 쉼표들이다. 뜨겁지만 따뜻한 공간, 숨 막히지만 자유로운 자리. 바로 한증막이 그렇다.
누군가는 에어컨 아래에서, 누군가는 푸른 바다에서 여름을 보낸다. 나에게는 이 뜨겁고 작은 공간이 여름을 견디는 힘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가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무덥지만 소박한, 땀이 흐르지만 마음은 맑아지는 이 여름. 그 안에서 나는 매일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한증막, 나에게는 뜨겁고 작지만 가장 분명한 쉼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