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위안

한 마디의 말

by 바람에 실린 편지




한여름의 태양은 무심했다. 숨이 막히도록 뜨겁고, 도시의 먼지와 열기가 뺨을 쓰다듬듯 스쳐갔다. 그런 날, 나는 시청 앞 근처의 상담소를 찾아가야 했다.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고, ‘혼자’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겁게 느껴진 것도 오래간만이었다.


발길은 무거웠지만, 마음 한편엔 작은 위로라도 찾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예전에 한창 바쁘던 시절, 예전 서소문로 삼성본관 근처에서 먹었던 콩국수 맛이 내 속을 다독여 주던 그 느낌. 콩국수 한 그릇에 서린 고소함과 그 안에서 잠시 숨 고르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그때처럼 오늘도,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나를 위로해 줄 콩국수를 먹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일부러 친구와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 골목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건물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그때의 식당도 온데간데없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식당을 몇 번이나 바라보며 긴감인가 두리번거렸다. 결국 나는 붐비는 콩국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가득했고, 왁자지껄한 소음에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그 안에 앉아 주문했다.


곧 내 앞에 하얗게 빛나는 콩국수가 놓였다.

첫 숟갈을 떠올리자, 입안에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번져갔다. "참 고소하다." 예전의 맛이 소환된다. 작은 감탄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뜻밖에도 울컥하는 마음이 밀려들었다. 뜨거운 태양 때문만은 아닌, 내 속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문득 스르르 풀려나오는 듯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느껴졌던 이 도시 한복판에서, 진한 콩국수 한 그릇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저 한 그릇의 콩국수였지만, 오늘 내 마음을 달래주러 나와 준 친구가 고마웠다."

혼자라는 두려움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지만, 누군가의 작은 친절과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그날 나는 다시 깨달았다. 길을 걷다 보니 덕수궁 돌담길도 걷게 되었다. 순간 예전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생각이 났다. 친구들은 잘 지내는지 지난 추억에 마음이 찡해진다. 나만의 설움이 아니고 살다 보니 다정함에 대한 고마움, 콩국수의 고소한 맛이 준 위안,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웃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희망에 대한 감성이었다.

친구는 약속시간 전까지 나를 배려하여 동행해 주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모든 일에는 꼬리가 달렸지요." 나직하게 속으로 되뇌었다. 하나의 일이 얽히면 그다음 일이 또 엮이고, 그렇게 연달아 문제가 꼬여 들어갔다. 이번 일도 다르지 않았다. 뜻하지 않은 곤란한 상황, 막막한 마음, 그리고 내가 향한 곳은 나의 상황을 다 해결해 준다는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의 다정함이 내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무엇보다 나를 성심껏 상담해 준 직원의 다정한 한마디가 내 마음에 작은 불씨처럼 스며들었다. 그 직원은 나의 상황을 꼼꼼히 들어주었고, "괜찮습니다. 다 잘 해결될 겁니다."라며 웃어주었다. 그 미소에, 내 안의 무거운 짐들이 잠시 내려앉는 듯했다.


세상은 여전히 낯설고, 때로는 버거운 일들이 끊이지 않겠지만, 나는 그날 또 다른 뭔가를 배웠다. 가끔은 멀리까지 돌아가서라도, 우리 스스로를 위로해 줄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때로는 그것이 한 그릇의 콩국수가 될 수도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한 사람의 미소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모든 일에는 얽힘이 있지만, 그 얽힘 속에서도 따뜻한 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그 따뜻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도시의 열기는 여전했지만 내 마음에는 조금의 시원함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내 삶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콩국수를 먹으며 위안을 주었던 친구와 용기를 주었던 한 사람의 다정한 미소를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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