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의 무게

by 바람에 실린 편지

by 바람에 실린 편지

작품을 완성해야 했던 마감 하루 전이었다. 내 손으로 만든 AI 그림은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색도, 분위기도, 감정도 흐릿했다. 한참을 바라보다, 지웠다 다시 만들기를 반복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친구가 조용히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그린 작품을 보여주며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우리는 서로가 촌평을 해 주었다. 결정지은 그림은 출품하기로 하고 다른 작품은 나의 것으로 하라는 권유가 있어서 결국은 친구의 그림을 나의 이름으로 출품하였다. 그림은 말이 없었지만, 그 속엔 온기와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색감도 조화롭고, 분위기도 따뜻했다. 나보다 더 감각적인 그 그림 앞에서 나는 침묵했다.

내 작품은 아무래도 부족해서 맘에 안들어~~

“이거… 내가 사용해도 될까?” 순간, 나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주위 동료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어차피 다른 작품으로 정했으니까. 괜찮아.”

그렇게 나는 동료가 만든 AI 그림을, 내 이름으로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뒤, 장려상 수상자 발표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축하해 줬고,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마음 한편이 조용히 무거워졌다.

상장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상작 모음집에도 내 이름과 함께 그림이 실렸다. 하지만 나는 그 작품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다. 그건 내 손끝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림 아래 내 이름이 적혀 있을 때,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마치 타인의 기억에 내 이름을 써넣은 것 같았다. 그림을 누군가에게 자랑하는 일도 조심스러워졌다. “이거, 어떤 스토리인가요?” 누군가 그렇게 물어올까 봐 두려웠다.

처음에는 AI가 만든 거니까 괜찮다고, 친구가 허락했으니 문제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서 무게를 가졌다.

법적인 저작권은 누가 만들었느냐, 누가 제출했느냐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저작권은, 정직함의 문제였다. 창작자의 이름을 단다는 건, 단지 결과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과정을 감당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림 한 장이 남겼다. 내 이름으로 남았지만, 마음은 숨겨졌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결심했다. 다음 작품에는 나의 진심과 나의 감정을, 그리고 나의 이름을 담겠다고.

그리고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작품전에 내가 만든 작품을 제출하였다. 창작이란 단지 결과를 얻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을 내가 책임지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AI로 만든 작품도, 마음이 담겼다면 저작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그 마음이 남의 것이 아니라면요.”

이후 나는 글쓰기 강의에서도 그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어쩌면 작은 실수였지만,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었다. 법은 흑백을 가르지만, 창작자의 윤리는 색을 담는 일이다. AI 시대에도 ‘내 것’이라 말하려면, 적어도 내 마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림 한 장, 시 한 줄, 작은 짤방 하나에도 그 사람이 걸어온 생각과 손길이 묻어 있어야 비로소 ‘창작’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록 그 그림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지만, 그 찝찝함 덕분에 나는 진짜 창작자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때의 그림은 내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내 마음을 그리는 사람이다.”

벽면에 기대고 있는 두 작품을 바라보며 그림속에서 일어난 기억들은 나만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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