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의 온도

by 바람에 실린 편지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울린다. 들뜬 거리의 소리, 마트 앞을 가득 채운 장바구니들, 가족을 기다리는 차들의 긴 행렬 속에서도, 나는 늘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명절이니까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세요”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유난히 멀게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전화 한 통이 온다. “언니, 잘 지내요?”
늘 그렇듯, 짧고 담백한 아우의 목소리다. 전화를 받은 순간, 나는 잠시 멍해진다. 사실 기다렸던 연락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래, 너는 잘 있니?” 하고 묻는다. 그러면 그는 “그냥요, 바쁘게 살죠. 언니는요?” 하고 웃는다. 그 짧은 웃음 속에 서로의 안부가 다 담겨 있다.


예전에는 명절이면 인사장을 썼다. 손글씨로 적은 문장 속에는 마음이 담겼고, 받은 사람은 그 글을 오래 간직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에 펜을 쥐는 대신, 휴대폰 화면을 스치듯 넘긴다. 인사장 대신 짧은 문자 하나로 모든 마음을 대신한다. “명절 잘 보내세요.”
그 말이 너무 흔해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부터일까. 남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어색해졌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신, ‘잘 지내겠지’ 하고 혼자 짐작만 하게 된다. 그렇게 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그리고 그 틈새로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조용히 들어온다.


나는 가끔 외로움을 병처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쳐야 하는 감정, 이겨내야만 하는 감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외로움은 누구나 품고 살아가는 마음의 그림자라는 걸. 마치 해가 비치면 그림자가 생기듯,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외로움도 따라온다.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다를 뿐이다. 예전에는 외로움을 피하려 했지만, 이제는 그 감정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려 한다. 외로움은 어쩌면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명절날,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인사를 써본다.
“잘 지내고 있지? 나도 잘 버티고 있어.”
그 글을 편지로 보낼 수도, 메시지로 남길 수도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도착했다.


다시 전화기가 울린다. 이번엔 오래된 친구다.
“야, 뭐하냐? 명절인데 같이 밥이나 먹자.”
그 한마디에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 외로움은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 건네는 짧은 인사, 따뜻한 한마디가 외로움을 조금 덜어주는 법이다.

일산공원을 거닐며 인플런서인 지인과 식사예약이 되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괜찮아, 오늘도 잘 버텼어.”
그렇게 말하면 마음속에 묘한 평안이 찾아온다.


명절의 진짜 의미는 화려한 음식이나 북적이는 집안 분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조용히 마음을 나누는 그 짧은 순간, 누군가의 안부가 나에게 도착할 때 비로소 명절이 완성되는 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느린 걸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내일은, 아우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다."잘 지내니"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외로움이 조금 덜하고,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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