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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키우는 사춘기, 사랑으로 잇는 세대

by 우리의 결혼생활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는 육아의 영역에서 사춘기 자녀 양육이라는 낯선 세계로 명확한 관문을 통과했다. 엄마인 나 역시 제2의 사춘기이듯 어딘가 낯익지만 생소한 기분으로 나란히 통과의례를 지나듯.


어린아이를 키울 때는 몽글몽글한 솜사탕을 만지는 기분이었다. 부드럽고, 포근하고, 내 손길에 순순히 따라주는 느낌. 그런데 사춘기 자녀를 키울 때는 단단하게 뭉쳐진 반죽을 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쉽게 모양이 바뀌지 않고, 나름의 탄력과 저항이 있는.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는 자의식이라는 명확한 인격이 생겼다. 나름의 생각에 따른 가치관이 자리 잡았다. 엄마로부터 분리된 완벽한 인격체로서, 부모와 다른 외모와 성격, 그리고 마인드를 가진 완전한 하나의 개체가 되었다.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간 과도기에, 엄마와 언쟁을 하기도 하고 눈물을 쏟을 일도 생겼다.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로 나누어 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인간의 발달 단계는 신체적, 사회적 변화에 따라 잘 구분되어 있고, 조금만 공부하면 이해할 수 있는 학자들의 이론도 많다.


여하튼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의 2차 성징은 외모나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정신적, 정서적인 부분과 행동, 인성에까지 전반적인 변화가 있었다. 바르게 교육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엄마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과제는 언어 습관이었다.


욕을 배우는 나이는 만 8세 경이다. 더 어릴 수도 있지만, 미운말을 배우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희한하게도 손가락 욕을 욕으로 인지하면서부터 나쁜 말을 호기심 어리게 듣고 배우게 된다. 몇몇 아이들에 의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욕을 모르게 하자는 무의미한 노력이 아니다. 모두 알지만, 그 욕을 가감 없이 ‘버려질 언어’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그보다 나은 의사소통의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일이다.


욕을 할 줄 모르는 아이는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을 분별하고 자기 입에 담아내지 않을 용기와 판단력을 기르는 일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숙한 사회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


두려움에는 그와 상응하는 저항이 있다. ‘하지 말라’는 이유에는 타의가 아닌 자의적인 결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엇을 길들이는 일은 힘들고, 근육을 붙이는 일은 피가 날 만큼 단단해지기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 그중에서도 혀를 길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모두가 아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온전한 언어 습관을 가르치는 일은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며, 양육자의 피나는 코칭이 필요한 일이다.


존댓말을 배우는 것이 첫걸음이라면, 관용어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언어의 선택, 그리고 훈련받은 의사소통 방식을 터득하는 것은 다음 단계다. 앞으로 면접과 구직, 훗날 사람을 대하며 살아갈 어른들의 세상에서 얼마나 유익하게 작용할지 가늠할 수 있다.


간단한 예로, 어른들과 함께하는 거실 다과 자리에서 동생이 언니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야, 비켜봐. 물 좀” 이렇게 명령어와 존칭 없는 대화를 한다면 부모로서 적극 나서야 한다.


나는 이런 경우라면 이렇게 말하길 바랐다.


“언니, 좀 비켜줄래?”

“내가 물 좀 갖다 줄까?”

“난 물 좀 먹고 싶은데, 마실 거 필요하신 분 계세요?”


말의 어미를 부드럽게 하거나 존중하는 뉘앙스를 갖추어 말하도록.


급하게 무엇을 부탁할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 제가 아침에 책상 위에 프린트를 두고 갔는데 가져다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렇게 부탁을 하는 청유문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한 번 더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서 말해보기를 코칭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식사 예절이나 인사하기 등의 간단한 기본 습관을 길들인다면, 이번에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사회적 지능을 키우는 훈련을 해주어야 한다.


가정교육의 꽃은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 문화는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이 어린 시절 내가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과 애착을 잊지 말고, 그때 들었던 사랑스럽고 정겨운 말을 지금 사춘기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따스한 엄마의 언어를 전달해 주는 일이다.


엄마로 살아가는 사십 대의 지금, 나는 내가 부모님께 더 듣고 싶었던 그런 말들, 혹은 느끼고 싶었던 단어들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사랑을 담은 시선과 함께 전달해 주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단단하게 뭉쳐진 반죽 같은 사춘기 아이들.

그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은 강압이 아니라 언어다.

존중이 담긴 언어, 사랑이 배어 있는 언어.


그 언어가 세대와 세대를 이어,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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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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