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는 사랑
연애하는 기간 동안에는 백 가지 이유로 사랑하는 까닭이 다양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사랑하지 않을 이유만 눈에 들어오는 상황이 그려진다. 영원히 외롭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결혼은 어느덧 ‘인생은 혼자구나’를 더없이 체감하게 한다.
누군가를 의지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 의지는 곧 불안한 관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연애할 때의 수없는 약속은 결혼이라는 약속으로 끝맺음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모든 약속의 리셋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약속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무게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과 내가 모든 약속을 기억하고 꼭 지켜야 한다는 책임의식. 이것이 중요해지는 것은 결혼이라는 무게가 현실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결혼의 약속은 가볍지 않지만 쉽게 깨지기도 하기 때문에, 늘 조심스러운 사랑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이 이처럼 쉽게 이어지고 깨질 수 있다면, 사랑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애의 좋은 점은 둘만의 관계로 모든 소통과 약속의 한계가 둘 사이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좋은 점은 둘의 관계를 넘어 가정의 소통까지 한계가 넓어져, 두터운 관계 속에서 쉽게 갈라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확실히 두터운 관계가 유지되기 쉽다.
가끔 장난감 오뚝이를 보면서 우스꽝스럽고 또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좌우로 기우뚱하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는 모습은 대단하기도 하고, 그 모습에 애잔한 감정이 맴도는 그런 마음 말이다. 우리의 사랑도 여러 번 넘어지고 또 일어서지만, 서로 의지하고 기대어 줄 그런 사랑을 찾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멘토가 되고, 가정에서는 부모가 되며,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연인이 되는 그렇게 지지해주는 역할이 바로 안전망의 역할을 한다. 넘어지지 않게 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해주는 역할인 것이다.
사랑은 약속을 기반으로 하는 기꺼운 희생이지만, 실패가 없는 믿음을 갖게 하는 대단한 정신이다. 그 정신을 이어가는 표본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좋은 일을 함께하는 것은 남도 할 수 있지만, 어려움을 나누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어려울 때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말도 있듯이, 결혼생활 가운데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을 넘어서는 전우애라 할 정도의 고군분투를 함께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살림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함께 나이를 들어가는 시간 가운데, 서로 의지할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 서로의 짐을 대신 지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는 지루하고 과거의 타오르는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서로의 짐을 내 것이라 여기고 도우며 한 손을 기꺼이 내어준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사랑의 모양이 달라질 뿐이지 사랑은 쌓여만 가는 진행형이 된다.
때로는 그 짐이 경제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인 부분이 될 수도 있고, 육체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내 몫을 다해내는 의지를 가진 상태라면 상대방의 어려움을 모른 체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수고하는데 당신은 하는 일이 없고 무용하다’ 한다면 모든 수고를 나 혼자 한다는 생각에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내 몫으로 수고해야 할 부분을 다하고 노력한다면 서로에게 억울할 부분이 없고 부부간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 것 같다.
나는 아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침인사, 아침식사, 아침기도. 이렇게 세 가지는 늘 있는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상이다. 매우 현실적인 부분에서 사랑을 나누는 세 가지 방법은 나만의 의식 같은 부분이 되었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길 응원하는 마음에서 한식 위주의 아침식사를 하고, 각자의 일터로 가기 전 허그와 짧은 입맞춤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시댁의 문화 중에는 얼굴에 볼을 맞대고 볼 키스를 하는 문화가 있었다. 외국여행을 자주 하셨던 부모님은 이렇게 하는 인사가 자연스럽고 또 좋은 문화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나는 처음에는 수줍었지만 이제는 꼭 하는 인사법이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집을 나서기 전 가족의 안녕을 위한 기도 같은 일이다. 오래된 습관처럼 루틴이 되어버렸다.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내가 주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확인을 하려면 받으려고 하겠지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
결혼 후에 아이를 갖고서 엄마가 되어보니 나눠주는 마음이 얼마나 값진가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다. 하늘아래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 자식 간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할 만큼, 사랑을 그제야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단지 조금이라도 표현하는 훈련을 해 본다면 처음이 어렵지, 습관이 되어버리면 사람도 바뀐다. 일찍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 어린신부는 사랑을 받고 싶었고 또 주고 싶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아직도 마음은 어린아이 같았다.
사랑은 주고받는 ‘give and take’가 아니었다. 끝없이 주는 것이 사랑이었다. 무엇을 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은 한계가 없는 깊은 사랑이 되었다. 기대가 없고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귀하고 사랑스러운 순수한 사랑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역시 내 남편에게나 자녀들에게 요구사항이나 내 만족을 위한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이 존재 그 자체로 너무 감사하고 멋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도, 그저 그게 그 사람의 본연의 것이기 때문에 바뀌려 하지도 바뀔 이유가 없다. 단지 스스로가 변화될 부분을 고치며 살아갈 뿐이지, 손가락을 펴서 상대를 지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머지 네 손가락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단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사랑이 완전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쉽게 떼어지는 것은 다음에도 쉽게 분리되지만, 한번 붙어지고서 굳어지면 나뉘기가 어렵다.
어린신부에게 마음의 깊이를 넓히는 훈련은 한순간에 된 일이 아니었다. 오래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고 사랑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 있었고, 또 그 시간을 피하지 않고 사랑의 줄로 더 두텁게 매고자 하였다. 어린신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을 주는 넓은 마음이었다.
어릴 적에는 받는 것이 가장 기뻤지만, 이제는 베풀며 나누는 마음이 더 값지고 기쁘다. 그것이 바로 깨지지 않는 사랑의 비밀인 것이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