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 자판기

by 주부맥가이버

머릿속에서 영감님이 날뛰신다

얘야! 어서 영감님 모셔라

박제영 시인이

*시 쓴답시고 삼십 년 동안 다섯 권 시집 내서

지금까지 받은 돈이 대략 이백만 원이란다

시인의 눈을 꾹 누르면

오타 벵가가 또르르

자판기 밑으로 떨어졌을 테고

시인의 코를 꾹 누르면

가만덕 씨와 마귀순 씨의

오동동 오동동 방구 타령에 동참하게 되며

시인의 입을 꾹 누르면

서울 생막걸리와 춘천 생막걸리를

섞어 마신다는 경춘선을 탄다는 것이다

시 한 잔의 값은 백오십 원

감성 둘, 회한 둘, 동경 둘

둘둘둘의 꿀조합

그 백오십 원이 나무처럼, 언덕처럼

쌓이고 고여서 이백만 원이 되기까지

자꾸 신 내리듯 오시는 영감님이

내게도 시 자판기 하나 놓아주셨다

나의 손등을 꾹 누르면

내내 주방에서 욕하며 씻던

달래 향이 차오를 테고

나의 명치를 꾹 누르면

무당 엄마의 굿판이

내 글판으로 탈바꿈되며

나의 발등을 꾹 누르면

종종 걸으며 애 입에 약을 털어 넣던

내 목과 허리춤처럼 긴긴밤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내 시 한 잔의 값은 빵 원

분노 둘, 성깔 둘, 빡침 둘

둘둘둘의 어깃장

그 빵 원이 탑처럼, 전봇대처럼

굽이굽이 이어져 시집 한 권이 되기까지

머릿속에서 영감님 춤추신다

얘야! 어서 영감님 시 한잔 대접해 드려라

* 박제영 시집 [안녕, 나의 오타 벵가] 중 '잔혹 동시'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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