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세상, 신이 원한 건...
혼자 건너지 마라. 함께 건너라
삶이 의미도, 이유도 희미해진 채로 버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던 해였다. 세상의 부조리에 실망하고, 신이라는 이름이 도구처럼 이용되는 현실에 환멸을 느꼈다. 무력했고, 회의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섯 편의 이야기와 만났다. 네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들의 하나님』 그리고 영화 <가버나움>. 서로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말하는 듯 보였던 이 이야기들은, 어느 순간 내 안에서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된 에피소드처럼 이어졌다. 각기 다른 주인공들과 작가는 그들의 고통과 문제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그 해, 나도 내 안의 무너진 사다리와 마주했다. 난방이 안된 마룻바닥처럼 차갑던 마음, 무력감 앞에 움츠렸던 삶. 그러나 조용히 구원처럼 다가온 ‘파 한 뿌리’의 의미. 그때 나는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선회하는 시간을 경험했다.
그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했다. 신은 지금도 세상에 그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가 인간에게 바라는 건 고립된 성공이나 위선적 경건이 아니라, 파 한 뿌리라도 건네는 작지만, 서로를 보듬고 돌보는 연대와 사랑이라는 것.
신은 성전에 갇혀 있지 않다. 램프 불빛 아래 무릎 꿇은 어느 병약한 이의 눈물 속에도, 존재가 부정당한 어린 소년의 주먹 쥔 항변 속에도, 외면당한 자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이의 펜 끝에도 살아 계신다. 신이 인간에게 바라는 건, 단 한 가지. 우리가 겪는 그 고통을 서로 외면하지 않고, 서로에게 ‘파 한 뿌리’를 건네는 용기이다. 믿음은 거창한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 한 뿌리’를 건넨 손끝에, 자신의 신분증 앞에서 해맑게 웃어 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그리고 연대를 통해 세상을 잘 건너가겠다는 각자의 결심에 있다. 그것이 우리가 다시 인간다워지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혼돈 속에서 우리가 살아 나오는 길이다.
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너 혼자 건너지 마라. 함께 건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함께 불구덩이와도 같은 이 세상을 건너기를 바라신다. 거기에 우리의 구원과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