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장 20, 21절 -
이 책을 통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따라가던 중. 이 구절이 떠올랐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신뢰하던 분류 체계가 얼마나 임의적이고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싶은 '질서'가 얼마나 취약한 신념 위에 세워져 있는지도 보여준다. 설령 우리가 만물의 질서를 완벽히 분류하거나 정의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앞의 인용문처럼 만물 속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그러나 보이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질서와 어떤 힘이 있다. 그 질서가 인간의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는 질서와 신성을 모른다고 핑계 댈 수 없다. 이 책에서 만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 질서와 신을 애써 외면했고, 결국 스스로 무너졌다. 신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았으며, 신께 감사하지도 않았다.
혼돈을 삶의 진실이라 믿었던 저자의 아버지와 그 혼돈 안에서 질서를 찾아보려던 그녀. 그러다, 그녀는 두 세계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과학자였던 아버지는 세상은 엔트로피에 지배받고 있으며, 인간은 의미 없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허무한데 무심하기까지 한 말들을 딸에게 쏟아낸다. 삶에 연민도 없고 냉소적인 아버지의 이런 말은 10대의 룰루에게는 너무 가혹했고, 그 영향은 깊었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삶의 키를 놓아버린 룰루는 상실과 혼돈 속에 깊이 가라앉게 된다. 모든 것이 무너진 그 시기, 한 인물이 매혹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혼돈을 받아들이라 말하던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무질서에 맞서 싸웠다. 세상의 혼돈 위에 질서를 세우려 했고 의미를 붙들려했다. 룰루는 묻게 된다. 삶이 부서질 때마다, 그는 어떻게 다시 그 조각들을 주워 담아 앞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룰루는 기대했다. 무너진 자신 안에서 다시 길을 찾을 실마리가 그의 삶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그녀는 그의 삶을 쫓기 시작한다. 자연을 분류하고, 혼돈 위에 사다리를 세우려 했던 남자. 흩어진 세계에서 질서를 건져 올리고, 그 위에 자기만의 체계를 쌓아 올리려 했던 분류학자. 그러나 그의 이름을 따라갈수록, 룰루는 명성의 단단한 표면 아래 감춰진 균열을 보기 시작한다.
분류학자로서 그는 믿었다. 신의 계획은 완벽히며, 그 완벽함은 ‘자연의 사다리’라는 형상으로 세상에 드러난다고. 그는 생명을 하나씩 끌어올려 등급을 매기고, 질서의 틀 속에 배치하고자 했다. 표면적으로는 창조주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학구적 열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말 그것뿐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신의 뜻을 해독해 내고 더 나아가 그 계획을 능가할 실마리를 손에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신을 거슬러, 신의 자리에 앉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욕망은 순수하지 않다. 인간은 언제나 거기서 미끄러진다.
신이 은밀히 보여준 비밀 앞에서 감탄하고 멈추는 대신, 인간은 그 비밀을 움켜쥐고 그걸 보여준 존재를 밀어낸다. 신의 자리를 빼앗고, 스스로 질서를 선포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축복을 탐욕으로 되갚는, 어두운 본성. 그가 쌓아 올린 것은 단순한 분류체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자리를 흉내 내고자 했던, 교만한 자의 질서였다. 페니키스 섬에서 시작된 '자연의 사다리'는 결국, 신의 완벽함을 모방하려 했던 인간의 오만이었다.
그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집 한 채 높이의 어류표본을 모았다. 세상의 혼돈 속에서 생명 하나하나를 끌어내 질서라는 이름의 사다리 위에 올려 두려 했다. 그러나 1906년, 대지진은 그의 모든 수집과 작업을 단 한순간에 쓸어버렸다. 수천 종의 어류표본은 먼지처럼 흩어졌고, 그가 공들여 세운 체계는 무너져 내렸다. 질서는 다시 혼돈으로 되돌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룰루는 의문을 품었다. 어떻게 그는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을 견딜 수 있었는가? 그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카프카는 말했다. “모든 인간 내면 깊은 곳엔 파괴되지 않는 것이 있다.” 룰루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안에서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찾고자 했다. 처음엔 그것이 '그릿(grit)'이라 믿었다. 하지만 끝내 마주한 진실은 당혹스러웠다. 그가 움켜쥐고 있었던 건 진실이 아닌, 거짓이었다. 아니, 그 거짓이 진실이기를 믿고자 애쓴 '자기기만'이었다.
자기기만을 경계하라던 그가, 절망 앞에서 오히려 그 길을 택했다. “운명의 형태는 의지가 만든다”는 말 뒤에 숨어, 그는 의지라는 이름의 망상으로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려 했다. 진실이 아닌, 믿고 싶은 서사를 붙들었다. 그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의 질서를 고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결국, 자기기만으로 그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심리학자들은 ‘자기기만’을 정신적 결함이라 말한다. 하지만 인생을 좀 더 가볍게 살아가는 사람들, 좌절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자기기만'이라는 특성이 있다. 이 결함이 때론 인간을 살게 한다. 고통 앞에서도 입술을 다물고, 다시 걷게 하는 힘. 대부분의 사람은 작은 자기기만 하나쯤은 주머니에 넣고 산다.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유예. 삶의 날을 무디게 깎아주는 둔기. 그 덕분에, 덜 다치고, 덜 피 흘리며, 때때로 우연처럼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조던은 첫 번째 아내 수전을 잃고, 오래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아내 제시를 얻는다. 물고기 컬렉션이 지진에 무너졌지만, 더 크고 화려한 규모로 다시 세운다. 손실은 늘 대체 가능했고, 삶은 언제나 복구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는 더 높은 자리로, 더 큰 이름으로 올라섰다. 마치 실패가 없었던 사람처럼.
어쩌면 이런 ‘긍정적 착각’이야말로, 신이 부재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 믿음을 발판 삼아 나아가는 방식. 한때 교회 목사들이 남용하던 ‘긍정의 힘’이란 말처럼. 데이비드는 그 힘을 진리인 양 움켜쥐고,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시스템에 몸을 실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긍정적 착각’이 견제되지 않을 때, 그것은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공격하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룰루는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그 힘이 어떻게 잔인함으로 바뀌었는지를 목격한다. 제인 스탠퍼드를 무너뜨리고, 동료를 배제하며, 반대자에게 침묵을 강요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는 점점 신의 대리인처럼 행동했고, 끝내 우생학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인간의 존재 적합성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인간을 등급으로 나눈 사람.
신의 뜻을 읽겠다던 사람은 어느새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존재를 평가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이들을 희생시켰다. 그가 구축한 질서는 무질서보다 더한 폭력적이었고, 그가 붙들고 있던 자기기만은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가장된 '독'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어류의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었다는 사실이 결국 드러난다.
과학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진실은 단순하다. 과학은 믿음을 품어선 안 되고, 신념은 검증되어야 하며, 모든 관념은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가 조금만 더 의심했더라면, 그 ‘완벽한 사다리’가 허상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입증할 수고와 고통을 감수했더라면 어땠을까. 허상을 지키기 위해 거짓을 쌓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과학자가 오류와 싸우며 낭비한 시간도, 그의 이름에 남은 불명예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세운 사다리는, 하나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반복된 수많은 왜곡과 회피의 잔해였다.
룰루 밀러는 혼돈과 상실의 시간을 통과하며 삶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의 삶을 좇았다. 그녀에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은 마치 ‘그릿(끈질김, grit)’의 표본처럼 보였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정신력. 하지만 그 밑바닥엔 ‘나는 옳다’라는 독단이 웅크리고 있었다. 진실을 외면한 채, 자신만의 정의로 타인을 짓밟는 방식. 그의 사다리는 허상이었고, 그의 질서는 교만이었다. 그가 구축한 어류라는 사다리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유를 위해 다가갔던 그의 삶에서 룰루가 마주한 건 그의 파괴행위였다.
조던이 붙들었던 ‘자기기만’은 그를 일으킨 힘이 아니라, 타인을 해치는 칼이 되었다. 그 기만은 개인의 방어기제를 넘어서 권력이라는 갑옷을 두르고, 명성을 방패 삼아 수많은 사람에게 무자비한 칼날을 휘둘렀다. 그것은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었고, 신념을 위장한 오만이었다. 차라리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멈췄어야 했다.
심리학은 말한다. 적당한 자기기만은 삶을 회복시키기도 한다고. 그러나 그것이 권력을 먹고 자라면, 언제든 사람을 해치는 흉기로 변할 수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 위험한 진화를 거듭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룰루는 묻는다. 그녀가 기대고 있던 희망, 그 '그릿'이 자기기만이라면, 도대체 어떤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혼돈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진실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신의 자리를 넘보려 하지 말고, 세상 만물 속에 새겨진 신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오만함으로 가득 찬 자기 확신이 아닌, 자신의 작음을 인정하는 정직한 고백이야말로, 우리를 혼돈으로부터 지켜주는 진짜 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속이는 거울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기만을 피할 수 있다. 혼돈을 견디게 하는 진짜 힘은 자기기만이 아니라 겸손이다.
우리는 우연히 존재하는 먼지가 아니다
혼돈 속에 내던져진 무력한 조각도 아니다
자연 만물에 새겨진 창조주의 흔적은
우리를 향한 신의 서명과도 같다
그러니 우리는 중요하다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우리는
서로에게 단순한 타인이 아닌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기만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
룰루 밀러는 혼돈 속에서 방향을 잃은 자신을 붙들 무언가를 찾고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좇았다. 그 과정에서 그의 삶은 해체되었고,『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그 해체의 기록이 되었다.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단순한 과학자의 전기가 아니었다. 이는 ‘우리는 어디까지 진실을 외면해도 괜찮은가’, ‘그릇된 신념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는가’를 묻는 한 편의 철학적 고발장이었다.
그녀의 책이 널리 읽히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 역시 재조명되었다. 지금까지는 위대한 분류학자,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총장, 미국 어류학의 대부로 기억되던 인물이었지만, 이제는 우생학을 옹호하고 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그의 어두운 이면까지 함께 이야기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 건물, 기관, 기념비들은 철거되거나 이름을 바꾸자는 논의도 이루어지는 등 학계와 관련 기관에서는 비판적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조던의 삶은 이제, ‘위대한 업적’과 ‘위험한 신념’이 공존하는 존재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경고로 남게 되었다.
룰루는 진실을 좇았고, 그 진실은 결국 한 이름의 무게를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사람들의 시선도 다시 그 이름을 향했다. 조던을 감싸고 있던 베일은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고, 그 뒤에 감춰졌던 실체가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