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일 Feb 05. 2022

A에 대해

A에 대해

전화기 너머로 나지막이 들려오는 A의 인사말과도 같은 ‘어?’는 매번 내 입꼬리를 올라가게 한다.  A가 자신도 모르게 내게 안정감을 주는 방식이다. 바쁘게 내 삶을 살다가 A와 대화를 나누면 한 템포 쉬어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A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덧 햇수로 9년 전, 중학교 1학년 치고는 작지 않은 키와 몸집을 가진 그가 기숙사 방에 처음 들어온 순간을 기억한다. 추운 겨울과 맞지 않는 얇은 패딩을 입고 훈훈한 외모가 가미되어 내게 ‘나와 친해지고 싶지?’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그 뒤로 그 친구는 나의 안목이 들어맞았음을 알려주는 듯 많은 친구들이 찾는 친구가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면 캐나다 가서 함께 생활하는 룸메를 생긴다. 가는 지역이 달라 함께 할 수 없었던 A가 그날 기숙사에서 나눴던 대화가 나와 A의 관계의 시작이라고 스스로 정해 놓았다. A가 내게 넌지시 한마디 했다.
“아 성일이랑 룸메 해보고 싶었는데”
“왜?”
“뭔가 재밌을 것 같아서”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당시 나는 자존감이 낮았는데 그 말을 듣고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때 그 한마디의 고마움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결여되었던 내게 힘을 실어주는 한마디였다.  

내가 한 친구와 갈등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너무 사소하고 내가 일으켰던 갈등이라 굳이 언급하기 부끄럽지만, 그때 A가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 말없이 나와 친구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끝까지 개입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한참이 지나 그 친구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그 자리에 있던 A에게 부끄러움을 억누른 채 다가갔다.
“… 아까 분위기 흐려서 미안해”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A의 표정은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대략 해석해보자면
‘친구와 싸우는 건 그럴 수 있지만, 감정을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네 모습은 좀 아쉽긴 해’이다.
무조건 괜찮다고 할 줄 알았던 A의 반응이 달라 당황했지만, 오히려 내가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 그 당시에 서운함은 조금 들어도 내가 감내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 채 고맙다고 답을 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A는 편한 느낌이 강하다. 많은 친구들이 쉽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치며 편하게 다가간다. 사람 자체가 주는 호감 때문인지 개개인의 관계 속에서도 A와 돈독한 사이를 맺고 있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앞서 나누었던 경험들 외에도 A에게 나는 티 내지 않아도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았다. 그렇기에 A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 A를 유심히 지켜보고는 했다.  


유독 A가 지쳐 보이던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A에게 밤에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냐고 물었고 A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둘이 나란히 침대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간 내가 A에게 느꼈던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당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말하며 A에게도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물었다. A는 때로는 친구들이 자신을 너무 편하게 대하는 것 같은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지칠 때가 있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친구가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나눠주는 것은 매우 기쁘고 감사한 일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어떠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좋았기보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나눠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 얘기를 들은 나는 진심 다해 나의 이런저런 생각을 말해주었고, A는 내가 이렇게 생각이 깊은 사람인지 몰랐다며 고마워했다.  


A는 더위를 많이 탄다. 더울 때마다 옷의 가슴 부분을 주먹으로 움켜쥐며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흔든다. 때로는 양손으로 옷의 밑단을 잡고 흔들기도 한다. A는 신날 때 양손 엄지와 중지로 경쾌한 딱딱 소리를 낸다. 그리고 정말 신날 때는 말 그대로 돼지 울음소리를 낸다. A는 노래를 잘 부른다. 기숙사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대체로 고음의 노래들은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감색 나시를 입고 있을 때 많이 부른다. 한 팔을 들며 높게 고음을 부르다가 한계에 이르면 끝에 “끼야오”라는 단어를 연발한다. A는 민망할 때 코를 훌쩍인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순간적으로 간지럽히거나 끌어안고는 한다. A는 자신이 들은 말이 기분 나쁘거나 살짝 불쾌하면 멋쩍게 웃으며 ‘뭐?’라고 답을 한다. (이 글을 A가 본다면 분명 거울을 보며 ‘뭐?’를 한 번쯤 해볼 것이다.) 


나는 내가 겸손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A를 본다. 겸손하고 멋진 사람들은 많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그저 그렇게 바라보는 A에게 내가 보기에 얼마나 멋지고 겸손한 사람인지 일러줄 수도 있어 일석이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진심을 A는 알아주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칫 교만해질 수 있지만, 남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만큼 감사하고 가슴 뛰는 일이 없다. 이런 사람이 나와 함께라는 것이 기쁠 뿐이다. 얼마 전에 목욕탕에서 A와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학교 다녔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일들, 각자의 마음 상태와 앞날에 대한 얘기를 할 때 예전에 침대에 앉아 얘기 나눴던 순간이 떠올라 잠시 향수에 잠기기도 했다.


A는 내게 어떤 친구인가에 대한 답은 어떻다 하기보다 A와 나눴던 대화 속에 답이 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기다려지는 대화가 있을까
     


이전 01화 Small talk with myself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