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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Oct 14. 2022

경청

경청

경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면서 전심으로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태도를 경청이라고 한다.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것은 내게 말하는 화자가 듣는 내 태도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경청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친구가 말했다. 구조적으로 내가 경험하지 않은 무언가를 상대방에 얘기할 때 그것을 경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의 사실적인 부분에만 집중했을 때 그 말이 성립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분명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조언을 해줘야 하는 고민과 생각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내가 경청하고 있음을 알게 해 주기 위해서는 때로는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고 있어야 한다. 정확히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하지만, 비슷한 경험에 빗대어 내가 느꼈던 감정을 떠올린다면 좀 더 마음 다해 경청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향을 논한다. 나는 원래 반응이 없어, 나는 원래 남 이야기에 관심을 잘 못 가져. 어쩔 수 없는 천부적인 특성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이 부족하기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해명한다.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다면, 상대방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내가 달라지길 바란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려니 하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근데 그런 것이 있다. 나의 이야기에 잘 공감해주는 사람이 나와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서로의 진심 어린 생각들을 서로 경청해줄 때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앞서 말했던 공감능력이 무딘 사람들의 관계보다 깊다고 느껴지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자신이 솔직하게 말한 생각과 뜻을 진심으로 내 친구가 들어주지 않아 서운할 찰나에 덜 가깝게 여겼던 누군가가 더 공감해주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솔직하게 내게 얘기해준다면, 나의 마음의 문은 활짝 열림과 동시에 원래 더 친했던 친구에게 실망감을 가지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상대방을 향한 어느 정도의 기대가 나도 모르게 욕심이 되어 급기야 관계를 저울질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깨달은 것은 단순한 공감을 넘어선 경청은 누구나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스스로가 경청을 잘한다고 겸손하게 자부할 수 있다면, 남에게 똑같이 그런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알게 모르게 힘이 된다는 말을 듣고 누군가가 계속 당신을 찾는다면 그저 주어지는 순간순간에 진심으로 경청해주면 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경험을 하며 자라왔다. 내 자아와 가치관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많은 감정을 경험해온 탓인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보이지 않은 무언가에 눈이 간다. 분석하기 위함이 아니라 감정과 감정이 만나고 이성과 이성이 만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너지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통해 상대방과 가까워지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처음 만난 사람도 충분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색함을 이겨내는 개념이 아니라 어색함에 마음을 맡겨 조금씩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은 적을수록 특별할 수 도 있지만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알아감과 동시에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정해진 누군가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처한 환경에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관계 면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있음을 주변을 둘러보아도 알 수 있다. 알고 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삶이 특별하고 소중함을 일러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축복이고, 더 나아가 누군가 내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고 고마워하면 아마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의 말에 경청을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나름 경청이라는 단어를 경험을 토대로 정의해보고 설명해보았다. 상대방에게 어떤 반응을 욕심내며 기대한다면 경청은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그 사람을 일방적으로 위한다면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경청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경청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생각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닫다 보니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더 마음 다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주변에는 정말 참된 경청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경청이라는 단어가 몸에 새겨질 정도로 경청을 잘해준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럴 자격이 있는 그 사람들을 보며 많이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경청하는 사람은 단순히 구불구불한 길을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보이는 하나의 아름다운 강을 바라보며 작은 순간에도 마음을 맡겨주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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