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에 대해’
M이라는 친구와의 첫 만남의 기억은 매우 선명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의 지극히 일부이면서 동시에 꽤나 영향력 있는 그의 강점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M은 무언가 되게 확신에 찬 듯한 제스처와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고집이 강하고 감정적이었던 어린아이였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도 넘치는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넘치면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친구를 보면 왠지 나보다 더 자존감이 높아 보였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그것을 다룰 줄 아는 능숙함은 솔직히 말하자면 M이라는 친구를 멋있게 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삼촌에게 선물 받은 노트북을 켜 놓고 마우스 패드 위에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파일을 정리하던 그 손짓은 지금도 자주 볼 수 있지만 그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단지 노트북 하나를 잘 다룬다고 생각이 들었을 법도 하지만 그 친구를 지켜보면 지켜볼 수 록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지만 M은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고, 악기도 어느 정도 다룰 줄 알았고, 시도 잘 썼으며 다른 컴퓨터 기술들도 곧잘 사용했다. 다재다능한 사람은 많지만 그런 재능들을 M의 방식으로 ‘섬세하게’ 풀어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기숙사 목장을 배정받아 M의 방에 들어갔을 때 검은색 소니 스피커를 창가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Coldplay의 yellow를 틀어 놓은 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이불속에 누워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던 그의 자태는 내가 그에게 자주 사용하는 ‘M스럽다’의 시초였던 것 같다. 이외에 옷을 입는 방식이나, 말투, 걸음걸이, 뛰는 자세 등 누구나 각자 만의 방식이 있겠지만 유독 M에게는 M스럽다는 표현이 찰떡이다. 이 표현의 결정적인 요소는 자신의 그런 실력 혹은 능력에 대한 확신이 가미되어 완성된다고 본다. 이런 M을 옆에서 보며 나는 자주 M에게 도움을 구했다. 단적인 예로는 나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좋아할 마음이 들지 않는 한 새로운 것에 오래 눈길을 두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M이 소개해주었던 Coldplay라는 밴드, 이태원 클라쓰 혹은 프레너미라는 웹툰 등 다양한 장르에서 나 스스로는 몰랐을 것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시도를 하고 싶거나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M에게 자주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M이 나의 이런 주접을 귀찮아하기도 했지만, 그를 통해 접하는 것들의 깊이와 재미는 가끔씩 느껴지는 거절감이나 무안함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M이랑은 꽤나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같이 뜻이 맞는 부분이 좀 있어 학교 생활하면서 진취적으로 이루기도 하며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다.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M이 싫어하는 말, 좋아하는 말 등 그에 대해서 더 알아가게 되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무엇인가가 생기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M이다.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해 내가 인정을 하는 표현을 하면 마지못해 웃으며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게 M이다. 반대로 M이 노력으로 보낸 시간들을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하면 불편해하는 낌새를 보인다. 끈기 있는 삶의 자세가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많은 성취와 배움을 일으키지만, 몇몇 상황에서는 가끔 M이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무턱대고 자신 있어하는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 참 독하다는 표현이 걸맞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면서 속으로 웃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M이 자신의 노력이 부정당했을 때 기분을 나빠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쏟는 시간과 투자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고결하기에 먹칠당하는 기분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기분을 자극제로 사용하는 것이 M만의 방식이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기를 좋아해 각 사람의 사소한 말과 행동들을 캐치하는데 어느 정도 스스로 일가견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M의 습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난처하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M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로 오른손 네 손가락으로 목을 긁는다. 그리고 뜸 들이면서 답을 하는데 십중팔구 문장의 시작은 ‘그,,,’ 혹은 ‘혹시,,,’이다. M은 눈이 피곤하면 손으로 비비지 않고 양손 손바닥 밑부분으로 눈을 살며시 눌렀다가 뗀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M은 준비성이 매우 철저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그의 가방이나 옷 주머니에는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최근에 내가 그에게 붙여준 새로운 별명이 ‘M라에몽’이다.
M과의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서 학교 이외의 각자의 삶에서 분명 다르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경험들을 겪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다지 놀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나 스스로 M이랑 나랑 보낸 시간들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었다. M과의 모든 기억이 다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M에게도 말했지만 나의 미숙했던 감정과 생각의 묶음들로 인해 미안했던 적이 많았고, 반대로 M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M에게 서운했던 경험이 조금 있었으나(^^) 그것은 분명 내가 M에 대한 신뢰를 욕심으로 대체했기 때문임을 알기에 잘 넘길 수 있었다. 이런 순간들을 나는 머릿속에서 잘 잊지 못하지만, 그 기억들이 끝에 와서 아름답게 맺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가끔은 새벽에 다른 순간들보다 낯부끄러운 M과의 순간들이 감성을 불러온다.
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 M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내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나도 그렇다. 졸업하고 서로를 평소에 자주 찾지는 않지만, 신기하면서 미묘하게도 그 사실이 우리 관계에 더 안정감을 준다. 언제든 전화해도 마음 편한 그런 M은 내 학교 생활에 많은 기억을 함께하는 친구다.
M이라는 친구를 떠올리면 앞서 정리했던 글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지만, 아직 깔끔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아직 감정과 기억만으로 싸인 그 상자는 내 마음속에만 있지만 앞으로 조금씩 더 풀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