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상당히 고된 마음과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상심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주말의 기억을 잊지 못한 채 처음으로 학교를 가는 것이 두려웠다. 앞으로 다가올 순간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자 애써 침착하게 숨도 고르고 호탕하게 웃어 보기도 했지만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정해진 자리에 앉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때 K가 눈에 들어왔다. K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학생회 활동도 같이 하고 지나가며 인사는 주고받는 사이라 어색하지는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인사하고 잠에 들었겠지만, 그날은 유독 K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는 K에게 말을 걸었고, 그 뒤로 두 시간 동안 내가 지난 주말 경험한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K는 처음에 갑작스러운 나의 하소연에 당황했으나 그 뒤로는 덤덤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와 K의 둘도 없는 관계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그때 ‘버스 사건’이라 언급하면서 나조차도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불분명한 그때의 대화는 우리의 인연을 그만큼 특별하고 운명처럼 여기게 해 준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 동안 같이 학생회도 하고 그 외에 다른 활동들도 같이 하며 K와 나는 점차 가까워졌다. 그리고 졸업을 앞둔 3학년에는 매일 K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누구보다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K는 나와 많이 다르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무언가를 지닌 사람에게 더 끌린다는 말이 있듯, 한창 민감하고 여린 마음을 소유했던 내게 K의 무덤덤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뚜렷한 모습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의기소침해 있으면 K는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인지, 아니면 흘려보내야 할 일인지를 객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었다. 내가 잘못을 한 일이면 냉정하게 지적을 해주고, 반대로 내가 스스로를 자책할 일이 아니라면 무심한 듯 우직하게 나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었다. K는 내가 부탁하는 일이 무엇이든 흔쾌히 도와주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센스 있게 짚어주며, 섬세할 때는 또 섬세할 줄 아는 사람임을 알게 해 주었다.
반대로 나는 K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지에 대해 어느 날 밤 기숙사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다 새벽 감성에 취해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관계에 이리저리 치이며 겉은 괜찮아도 속은 낡아버린 나의 마음을 감싸준 여러 종류의 담요 중에 분명 K-담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일을 다소 낯 부끄러워하는 내게 K는 내가 의지하는 대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문득 나도 K에게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 욕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내가 K에게 도움을 준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영어권 대학으로 진학을 하고 싶어 했던 K에게 내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영어 공부를 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다. 한번 습득을 하면 그대로 곧 잘하는 K라 내가 알려준 방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용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믿기 쉽지 않은 실력 향상을 보이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현재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K에게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K가 나의 부탁을 들어주듯, 나도 K를 위해 서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어떤 부탁이든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도왔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이렇게 저렇게 도움을 줬다고 할 수는 있어도 그 당시에 그러한 고민과, 나름 귀여운 걱정을 했던 이유는 아마 내가 받는 것이 더 크게 느껴져서 내가 주는 것이 작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울질을 한 것은 아니지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익숙했던 내게 K를 의지한다는 것에 이어서 내가 더 받는 것 같은 마음마저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낯간지러웠지만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그저 인정을 하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은 매번 느낄 때마다 새로운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생각의 흐름도 K와 나눈 적이 있었는데, 곧바로는 아니어도 내게 고마운 점들을 선뜻 얘기해줬던 그 순간은 내가 인정을 했기 때문에 더욱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K는 집중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을 자꾸 만진다. 그럴 때 그가 머리를 만지지 못하도록 옆에서 주의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K는 억울해할 때 말투가 정말 귀엽고 웃기다. 그 말투를 듣기 위해 내가 ‘이건 진짜 아니지 않냐’라고 말을 하면 항상 ‘그럼 어떻게 하라고~’라고 말을 하는데 그때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K는 코가 약하다. 코를 자주 비비기도 하는데 비염도 있어서 여러모로 치료를 얼른 받아서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동생도 비염이 있어서 이게 얼마나 삶에 여러모로 불편을 주는지 알고 있어 얼른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생기거나 노력을 통해 기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 ~ 해버렸지’라고 말을 하고 조금 더 생각을 하면 충분히 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임을 스스로 알지만 괜히 한 번씩 ‘이젠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마 K가 이것을 읽으면 어떤 상황에서 자신이 이 말을 자주 하는지 단번에 알고 웃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 사이에는 분명 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어떠한 조건이 존재한다. 일방적이거나 무조건적인 관계를 많이들 꿈꾸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을 처음 가지게 된 것도 K와의 관계가 조건적이지 않은 운명과도 같은 관계이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어쩌면 내가 K에게 변함없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고, 우리의 관계는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할 수 있다는 나의 욕심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억지로 내려놓으려 하니 순간 모든 관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결국 조건적이라면, 그 조건만 이룰 수 있다면 그 누구와도 각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허탈함이 몰려왔다.
다시 돌아와서 나의 욕심을 이번에는 천천히 흘려보내듯 내려놓으니 다른 답이 나왔다. 내가 정말 상대방을 위하고 이 관계가 소중하다면, 시작이 어떠하고 이 관계의 조건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지금 더 관심을 주고 마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내가 확신하기보다는 주어진 지금을 더 감사히 여기는 것이 내가 관계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더 값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하게 되었고, 아직까지는 그 가정이 맞는 것 같다.
K는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친구다. 동생이지만 친구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2016년 그 순간을 조건적인 운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