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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Feb 10. 2022

상하차

운이 좋게 기회가 생겨 성남에 위치한 우편집중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공고에 서류 작업이라고 적혀 있어 괜찮은 시급에 시간이어서 큰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연락이 와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막상 가보니 그곳은 물류센터였고, 내가 하게 될 일도 사무직이 아닌 물건을 나르고 싣고 부착하는 일이었다. 농장에서 일해본 경험을 떠올리며 반복적인 일에 자신 있던지라 기쁨 마음으로 일하리라 다짐했다.


일을 시작하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레일 위에 물건을 올리는 작업을 했다. 하다 보니 일이 수월하고 편하여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금방 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여유를 즐길 기대를 했다. 그러다 팀장님께서 나와 다른 분을 따로 빼내시더니 다른 일을 맡기셨다. 바코드에 입력된 정보에 따라 분류된 물품들을 다른 사람들이 쌓아 놓으면 기다란 막대에 꽂힌 랩으로 그 높은 상자 더미를 묶는 일을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상자가 쓰러지면 어떡하지, 랩을 제대로 못 씌우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사수분께 몇 번 배우고 나서 일을 시작했다. 워낙 요령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지 금방 적응했고 요령도 터득하여 일을 빠르게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몸이 편하지는 않았다. 가장 밑에 있는 박스부터 감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허리를 숙이고 몇 바퀴를 상자 더미 겉으로 걸어야 한다. 농장에서 일을 할 때 하도 숙이며 일을 했더니 허리에 많은 무리가 갔던 기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며 걱정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기쁨으로 일하기로 했음을 다짐한 것을 떠올리며 기도와 생각을 많이 하자는 마음을 갖고 일을 계속해서 하게 되었다. 그러고 정말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하고 생각하고 고민을 하며 보냈다. 우편집중국에 모이는 택배들은 단순 우체국 택배뿐만 아니라 각종 회사를 통해 주문하는 물건들도 오고 가는 곳이다. 


이러한 노동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육체를 사용하는 일은 상당히 고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존중받지는 못한다. 급여도 머리를 쓰는 직업에 비해 더 적고, 복지 또한 잘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일을 찾다가 별다른 이력을 요구하지 않는 이런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 적성에 맞아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려서 부터 이런 일을 꿈꾸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사용되는 이커머스 주문 시스템의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유통 역할을 하는 우편집중국에도 전보다 훨씬 많은 택배들이 밀려 들어온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택배에 지쳐 슬슬 눈살이 찌푸려지던 찰나에 자연스레 내 사수님한테로 눈이 갔고, 몇 시간 전 사수님 옆에서 배웠던 시간이 떠올랐다. 전해 듣는 바로는 이런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은 입이 험악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친절하셨다. 존칭을 쓰시며 몇 번이나 내가 했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셨다. 처음 상자를 랩으로 감싸는 시범을 보이실 때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드렸다. 그러자 사수분은 웃으시면서 ‘저도 하는 걸요 뭘’이런 말을 하셨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분이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쩌다 남들은 기피하는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 말했다. 행복에는 비슷한 이유가 있지만, 불행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마음을 내 마음대로 일반화하여 본다면, 분명 좋지 않은 사정으로 인해 각자 다른 감정을 가지고 이 일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맞닥뜨린 사정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억울하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맞이한 상황의 결과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왜 다를까. 자신의 바람과 상관없이 다른 상황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 줄까? 나는 이 일을 매일 해야 할 정도로 재정적으로 위급하지 않다. 그리고 학생이라는 본분이 있기에 이런 일을 매일 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드는 질문은, 남들은 꺼려하는 일을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처한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냐는 것이다. 이래서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선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이 직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해야 하는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감사해야 하는 것 인가? 내게 필요한 때에 제정과 양식을 허락하시는 것은 은혜이지만 없을 때에도 해야 하는 것이 절대 감사이다. 세상의 개념과는 아예 맞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시다. 그저 우리는 제자 삼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자녀이고, 주어진 삶에서 사소한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주 작은 지체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지금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을까? 애초에 이 고민을 하는 내 마음이 세상의 악에 의해 잘못되게 바라보고 있나. 수입이 적다고 해서 그것이 남이 기피하는 직업이고, 몸이 힘들다고 해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지는 직장임에 동의한 내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들의 삶의 가치를 내가 판단해 놓고 세상 탓을 한다. 내 실수이자 잘못이다. 오늘도 회개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을 매일 돌아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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