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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Feb 05. 2022

지금을 향유하다


사랑은 영원할 수 없는가?



가까운 지인에게 꽃을 선물할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리시안셔스’를 선물한다. 리시안셔스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특별히 부모님께 꽃말에 대한 설명이 담긴 편지와 함께 꽃을 드리니 아들이 다 컸다고 말씀하신게 너무 듣기 좋았던 이후로 지인들에게도 이 꽃을 선물하게 되었다. 꽃 자체의 모습도 예쁠 뿐더러 색깔도 사랑을 가시적으로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이 드는 보라색이기 때문에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만족하는 선물이 되었다. 




<변치 않는 사랑> 이라는 어구는 성인이 된 이후로 내가 가장 집착하듯 갈망했던 대상이다. 추상적이지만 실제로 형언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변치 않는다는 형용사는 내게 영원하며 조건 없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특별히 그 대상이 사람이 될 때 그 표현은 더욱 빛을 발하지 않나 싶다. 




조건 없이 영원한 사랑이 주변에 있는지 먼저 돌아본다. 모두가 그러지는 않아도 다수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릴 것이다. 태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은 자녀를 사랑하신다. 평생을 보살펴주고, 안아주고, 지켜 주신다. 나이가 들어도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부모님이다. 앞서 보라색이 사랑을 가시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한 이유도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이어서 그렇다. 이러한 경우 말고 더 떠오르는 경우가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나의 이러한 결론에 스스로 반하기 위해 내가 직접 그 사랑을 실천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해보려고 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사랑을 가지고 말을 하고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실제로 표현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주로 두가지 상황으로 나뉜다. 첫째는 특정 사람에게 내가 어떠한 대가 없이도 나의 것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이다. 가족과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랑이 나타났다. 둘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까지 이해하려고 했을 때 나타났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비관적이거나, 가시가 돋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했을 때 나의 행동에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전자와 후자의 경우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나의 노력에서 온다. 어떠한 대가 없이도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내가 나의 마음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인연인 것 처럼 상대방과의 관계를 엄청 특별하게 여기게 된다. 후자의 경우 내 마음이 가지 않는 상대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어느정도 노력을 하게 된다. 시간과 물질을 들여 나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사실을 내가 느끼고, 때로는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그 마음을 품고 관계를 위해 힘 쓸 때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순간 나의 사랑이 전해진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자에 내가 언급한 나의 그 인연같이 여기는 마음이 왜인지 모르게 너무 크고 깊게 여겨져서 그런 것이지, 왠만한 관계에서 나의 모습이 내가 어떤 짐을 지고 맺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확실하게 정리된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대한 나의 이 생각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다 어느 날 두 친구와 대화를 하게 된다. 두 친구 모두 내가 인연같이 여기고 아끼는 친구들이어서 나의 이러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가만히 듣더니, ‘우리 관계도 결국 조건적인거 아니야?’라는 질문을 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결국 우리도 서로에게서 좋은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게 그 친구의 의견이다. 그 모습이 만약에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관계를 맺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이어서 내게 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맞는 말이었다. 어쩌면 나와 마음이 잘 맞는다는 이유가 인연처럼 느껴진 것이라면, 그 대상은 누구든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어느 누군가가 어느 날부터 나와 마음이 갑자기 맞아버린다면 그 누군가도 내가 인연으로 여기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나의 사고방식의 허점을 잡고 비트는 듯한 말을 내 스스로에게 했다. 




오랜만에 나의 생각의 궁전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조건없이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나의 생각에 반하기 위해 지난날 살아왔던 것처럼 다시 나의 생각에 반하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 달 정도 거닐며 천천히 나의 생각의 궁전에서 집중하다보니 한가지 명쾌한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내 스스로가 영원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시도를 해보기로 한 것도 어느 정도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더 나아가 웃기게도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따라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을 내려 놓으니 내가 인연처럼 여기며 자부하던 관계들이 조건들이 존재하고, 관계가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게 여겨졌다. 결국 운명같은 상대라는 구절 속 운명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어떤 특정 상황을 다르게 부르는 말이기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할 것은 주어지는 관계들을 감사로 누리고, 내가 마음이 더 가고 가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채 관계를 포함하여 삶의 모든 여정 가운데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지금>느끼고 흘려보내는데 집중하면 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리시안셔스라는 꽃은 이제는 나의 다짐을 나타내는 꽃이 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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