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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Feb 05. 2022

가치관


생각의 궁전

일련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지게 된 습관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드는 생각을 이성적으로 깊게 파헤쳐보는 것이다. 생각을 다소 깊게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그러한 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끝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폭포수의 근원지를 찾아가는 그 희열은 내게 많은 배움을 가져다 주었다. 남들이 보기에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습관을 나는 ‘생각의 궁전’을 찾아간다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생각의 궁전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담아 놓고 있는 곳이다. 폭포수를 시작으로 거친 태풍, 드넓은 사막 등 다양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고 그 대상을 마주하고 더 파헤칠 때야 비로소 나의 감정은 다시금 제 역할을 온전히 해낸다.



혼자 있는 시간을 점차 더 선호함에 따라 생각의 궁전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이전에는 생각의 궁전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사유를 하게 되면 금새 문이 보일 정도로 반복적인 고찰은 생각의 궁전을 더 넓혀주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이 많다고 하면 가볍지 않고 깊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각이 많은 것이 오히려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생각이 많으면 우선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보다 시간은 걸리지만 보다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행동 할 수 있게 해준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이 가시가 돋은 말을 듣더라도 감정 상하지 않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들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내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도 상대방이 나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을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하는 선택이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은 필수적인 역할을 해준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내게 좋지 않을 때도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꽈배기처럼 꼬고 꼬아서 받아들일 때 스스로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A는 A이다’. 라는 문장을 A부터 Z까지 돌고 돌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그 일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생각들을 정리하다 혼자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들어가 생각의 궁전을 통해 겨우겨우 빠져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까지 생각을 하면 다양한 상황에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지만,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자세를 취하게 되면 내가 상대방을 분석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들 속에서 나는 생각을 두세 번 더 하려고 하고, 그것이 나를 신중하고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만, 때로는 이처럼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할까? 내가 가지고 살아가는 내 삶의 가치관은 무엇일까. 

나는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남에게 관대하게, 내게는 엄격하게 대하는 삶을 이제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는 그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일을 살아갈 때 내가 내 교만함과 악함을 너무나 잘 알아 조금이라도 낮은 자세로 살아가기 위함이다. 생각을 많이 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아무래도 나의 감정과 바램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나의 본성에 휩쓸리지 않기 위함이다. 나는 갈등을 기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박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나아질 수 있다면, 쉽지 않은 상황들도 마주하고 싶다. 나의 내면에서의 갈등은 매일 발생하고 있지만, 사람과의 갈등에는 때로는 감정이 들어가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가 상대를 더 위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생각을 하며 최선의 말과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앞서 얘기했듯이 오히려 상대방과 내 스스로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언젠가 내가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성적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검토를 하고 다음을 위해 더 준비하자고 마음을 다잡겠지만, 유독 그날은 스스로를 더욱 자책했었다. 시험 하나를 가지고 내 삶의 태도까지 돌아보며 내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시험 점수와 비슷하게 매겼다.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저조한 성적이 나왔더라면 충분히 필요한 성찰이었겠지만, 열심히 노력했던 내게 그러한 사고는 위험했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친구가 내게 던진 한마디가, 정말 가벼웠지만 내 스스로 무게를 더하고 더해 나중에는 친구가 왜이리 생각이 꼬여 있냐고 불편함을 토로할 때, 그제서야 사과를 하며 그저 최대한 이해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했던 적도 있다. 



내 영혼과 좋은 관계를 맺고, 남을 하나님을 대하듯 사랑하는 것을 목표하지만, 이러한 쉽지 않은 상황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가 내 힘으로 계속해서 그러한 화합을 이루려 했기 때문에 한계에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생각의 궁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많은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을 해주게 해주지만, 그 이상을 생각할 때는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더 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그릇은 생각보다 좁고 그릇을 넓힌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에 그분의 사랑이 넘치기를 바라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내 가치관에 지금처럼 내 생각과 경험 속 배움이 자리잡기 보다는 언젠가 하나님의 말씀만 남기를 기대하며 어제도 내일도 바라보지 않고 오늘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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