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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Feb 24. 2022

소확행

충청남도 서산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내 학교는, 마치 다른 세계에 존재하듯 특별하고 은밀하다.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은 그 자리에 남아있다.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오후 캐리어를 한 손에 들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죽전 간이 휴게소에 모여든다. 그렇게 학교 버스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들어가다 보면, 저 멀리 여자 기숙사 건물 옥상이 달빛에 비춰 흐릿하게 보인다. 

잠에서 아직 덜 깬 상태로 학교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게 되면 끼고 있던 유선 이어폰을 정리한 채 주머니에 넣다가도, 별로 친하지 않은 후배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으면 어쩔 줄 몰라하며 건너편에 앉은 친구한테 부탁해 깨워 달라고 하기도 했다. 

학교 정문을 버스가 빠르게 지나가는 그 순간 바깥세상에서 벗어나 우리만 알고 있는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Harrypotter의 Harry가 9와 3/4 정류장을 들어갈 때처럼 긴장을 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구겨진 곳은 없는지, 머리는 헝클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벗어 놓은 신발을 급하게 다시 신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온전히 보내기 위한 준비 절차였다. 나만의 토템이랄까. 그리고 그 순간이 나의 학창 시절 중에서 소소하게 행복했던, 일명 ‘소확행’의 시간 중 하나였다. 

스스로 소소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20대 초반을 지나 22살이라는 초중반의 나이에 들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진취적인 존재이지만, 때로는 커다란 것을 얻기 위해 사소한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그 사소한 것들이 커다란 것을 더 빛나게 해 주었다. ‘사소함’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무언가는 정말 다양하지만 그 시절 내게 힘이 되었던 사소함은 바로 사소한 순간, ‘소확행’이다.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을 포함해 내가 무심코 기대하고 설레던 순간들은 내 삶에 만연하게 퍼져 힘이 되어주었다.  

이른 새벽이나 수업이 끝난 오후에 조용한 기숙사 안에서 혼자 샤워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고민을 흐르는 물에 씻겨 보내는 어느 누아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수건으로 닦은 물기는 지난날 내가 흘렸던 피고, 헤어드라이기로 말리던 내 머리는 내가 죽였던 악당들을 잊는 나의 의식이 되었다.

밤에 몰래 내 방으로 넘어온 친구와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같이 잠에 드는 그 순간은 내일을 더 기대하게 했고, 사감 선생님께 걸리지 않고 맞이한 아침은 그날을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도록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을 위해 물컵 6잔을 손가락에 끼운 채 조심조심 걸어와서 친구들에게 선뜻 내어줄 때 느꼈던 뿌듯함과 친구들의 감사 표현은 헌신의 기쁨을 알게 해 주었다.

축구를 포기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시늉을 하다 저녁을 먹으러 가며 바라보던 노을은 선물과도 같았고, 같은 시간에 축구를 하고 땀 흘리며 식당을 향해 뛰어가던 친구들의 뒷모습은 괜히 나를 한 발짝 앞서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이외에도 내가 방 후배들과 시시콜콜 대화를 나눴던 순간, 친구들과 한 방에 모여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던 순간 등 내 학창 시절을 표현하는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기에 소확행은 충분했다. 

사람의 어느 한 감각이 무뎌지면 나머지 감각들이 더 발달하듯, 내 마음을 아리게 하는 순간들이 내가 놓치고 있던 나의 소확행들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반대로 내가 기억하는 소확행들은 내가 덮어둔 쓰린 순간들을 마주할 힘이 되어준다. 두 순간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는 모르고,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 매력적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어울려 내 몸의 근육을 이루는데 모든 순간들이 필연적이고 굳이 나누었던 두 순간들이 상호적인 관계라면 가끔은 진취적인 인간의 본연을 잊은 채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택해도 괜찮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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