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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1. 2022

나가믄 김치찌개여?

1권. 마무리.

역으로 걸어가는데 오른쪽 골반이 쑤셨다. 오랜만에 일을 하니 슬슬 반응이 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오랫동안 걷거나 서 있으면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시작은 아마도 이십 대 후반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연신내역에 도착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트에 들렀다. 내 부모님은 즉석식품이나 배달을 시켜 식사를 해결하는 것보다 집에서 해 먹는 것에 더 가치를 두셨다. 그 영향으로 즉석식품을 사거나 배달을 시키면 마음 한편에 왠지 모를 죄책감이 자리 잡았다. 때문에 천안에서 자취할 때도 만들어 먹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면 집에서 직접 요리했었다.


보통은 마트에 요리할 메뉴를 정해서 오지만 도저히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지 모르겠는 날이 있기 마련. 오늘이 그랬다. 이런 날은 마트를 둘러보며 손 대기 만만한 식재료나 할인하는 것을 골라 메뉴를 정한다.


만만한 식재료 중 으뜸가는 하나를 꼽아 보라면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와 계란 프라이라 적겠다. 이 둘은 오늘 피크 때 본 성호와 지연의 합처럼 곁들이기 좋을뿐더러 남았을 때 보관 방법 또한 간단하다. 계란 보관이야 굳이 적을 필요 없을 것이고 남은 돼지고기는 얼리면 그만이다. 찌개가 남는다면? 이 또한 오히려 좋다. 이거저거 할 것 없이 그저 상온에 보관한다. 그러면 밤 사이 그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화학? 또는 상호작용이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다음날 더 맛있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이 메케니즘을 ‘김치찌개의 법칙’이라 일컫고 있다.


마침 운동도 쉬는 날이겠다 여유롭게 마트를 돌았다. 내 장바구니에는 아직 구매하지 못했지만 꼭 필요한 조미료와 돼지 뒷다리 살이 담겨있었다. 그길로 야채 코너에 들러 손질된 대파와 양파도 담았다. 엊그제 삼겹살에 곁들이려 사둔  마늘 중 남은 것들을 저며서 냉동해 두었으니 마늘은 됐다.


자주 사용하지만 한 번에 소비하기 어려운 식재료, 예를 들면 마늘, 파, 양파 등은 각각 저미고 다지고 채 썰어 냉동해두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마트의 위층에 ‘다이소’가 입점해 있어 조미료 소분용 통도 담았다. 그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이미 마트 중간까지 줄이 섰다. 혼자인 사람들이 많았다. 슬랙스에 니트를 입고 오버사이즈 코트를 걸친 젊은 옷차림으로 보아 나와 같은 1인 가구 직장인일 것이다. 그들의 장바구니에 눈이 갔다. 그 안에는 대부분 레토르트나 마트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즉석식품, 그리고 각기 다른 술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다시 내 장바구니를 들여다봤다. 괜히 한 번 뿌듯했다.




호주에 있던 기간을 빼면 자취 3년 차. 그동안 수없이 김치찌개를 끓여 왔다. 이런저런 재료를 넣어도 보고 넣는 순서를 바꿔도 보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여러 가지 레시피를 따라도 해봤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 입맛에 꼭 맞는 완성형 레시피가 탄생했다. 그 핵심은 재료를 먼저 볶는 것.


달궈진 냄비에 깍둑 썰려 있는 돼지 뒷다리 살을 넣었다. 사실 기름이 많이 나오는 삼겹살을 더 좋아하지만 현재 가계 경제를 생각하면 저렴한 뒷다리 살로 만족해야 한다. 고기 익는 소리가 나고 내 콧구멍 안을 익숙한 그 냄새가 침범했다. 나는 한 마리 파블로프의 개, 입안에 침이 나일강처럼 범람했다. 혓바닥에 농사를 짓는다면 올해는 분명 풍년일 것이다.


고기의 빨간 부분이 보이지 않을 때쯤 김치와 다진 마늘을 넣어 같이 볶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간과의 싸움이다. 설거지가 어렵기는 하지만 살짝 탈 때까지 볶아주면 맛은 배가 될 것이다. 중학교 때 경제 용어인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대해 배웠다. 학생들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하셨다. ‘이미 마려운 똥을 참고 참고 또 참았다 한 번에 내보내면 그 쾌감은 더 커지지 않느냐. 한 번 내보내고 바로 또 싸면 처음만큼 시원하더냐?’ 가르침에 따라 최대의 쾌감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냄비 테두리에 갈색 탄 자국이 보이기 시작해 자박하게 물을 부었다. 그리고 그 안의 내용물을 가위질해 잘게 조샀다.(<구어> 먹기좋게 칼로 다지고 조각내 버리다.) 김치 국물을 한 국자 넣고 간장 조금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새우젓이 들어가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비싸다. 아니, 새우젓은 원래 비싸다. 언젠가 마트에서 새우젓 가격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사정이 나아지면 삼겹살에 새우젓도 넣어 거하게 한 번 끓여먹기로 하자.


전기밥솥 안에 보온되어 있는 밥을 한 대접 펐다. 두 번 수고하기 싫어 국 대접을 밥그릇 대신 사용했다. 집에서 가져온 밥공기는 양이 적어 분명 먹다가 흐름이 끊길 테다. 오랫동안 밥솥 안에 있던 밥은 군데군데 누렇게 굳어있다. 하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다 굳었더라도 찌개나 라면 국물에 불려 먹으면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 정도 굳은 것은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다.


밥 위에 계란 프라이 두 개를 올리고 그 위에 김치찌개를 두 국자 정도 얹었다. 다른 밑반찬은 필요 없다. 구색 갖추자고 올려둬봐야 손이 가지 않는다. 이만해도 다른 1인 가구보다는 훨씬 잘 챙겨 먹는 것이라 생각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밥이 절반 정도 남았을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보던 유튜브를 일시정지해두고 전화를 받았다.


-아들! 어째, 어뗘?


어머니셨다.


“뭐가요?”


-아이, 이사하고 며칠째 연락이 없으니 어뜨케 잘 지내나 싶어 전화했지. 밥은? 밥은 잘 챙겨 먹는 겨?


“지금 먹어요.”


-뭐 해서 먹어?


“그냥 뭐… 김치찌개에 계란 후라이 올려가꾸.”


민망해하며 웃는 나.


-아이, 어째 너는 나가믄 김치찌개여? 가만있어 봐. 아빠가 바꾸랴.


아버지께 핸드폰을 건네시며 ‘야유.’(여기요. 를 뜻하는 충청도 사투리.)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응. 을 뜻하는 충청도 사투리.) 어뜨케. 좀 어뗘?


그리고 특유의 소리로 웃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독립 한 후로 나와 통화할 때면 ‘이히히’ 웃으신다.


“아이, 똑같어요. 천안이랑. 아부지 식사는 하셨어요?”


사실 서울에서 하는 자취는 천안에서 하던 그것과 많이 달랐다. 돌이켜 보면 천안 자취방은 본가에서 직행버스로 약 2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손수 밥을 지어먹으면서 생활함.’이라는 사전적 정의로서 자취를 했다면 납득이 되기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당일 치기로도 본가를 찾을 수 있었으니 그것을 보편적 의미에서 자취라 적기엔 뭔가 애매하다.


따라서 호주에서 머문 기간을 제외하면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진짜 자취는 지금이 처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들에게 자취의 소감을 ‘딱 삼 일이면 적응돼. 그다음부터는 엄청 자유롭고 편해.’라고 얘기하고 다녔던 내가 지금은 이미 3일이 지났음에도 뭔가 낯선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적응이 더딘 모습이 은연중에 티 날까 겁이 나 짧게 대답하고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나는 먹었지. 니 엄마가 해준 거. 회사는 어뗘?


“아직 잘 몰러요. 이제 첫 출근 했어요.”


-잉? 어째? 너 어젠가 첫 출근한다고 안혔어?


“그쪽에서 미뤄가지고 오늘 처음 나갔어요.”


-어째 그려… 아주 지들 맘대루 구먼 그려… 그래두 잘 혐마…(잘 혀, 인마. 를 빠르게 발음하시는 아버지의 말버릇.) 잠깐 있어봐. 엄마가 바꾸랴.


어머니께 핸드폰을 건네시며 ‘야.’(여기. 를 뜻하는 충청도 사투리.)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응. 김치 가져간 거! 안 부족하겄어?


“아이, 혼자 사는데 이거면 한참을 먹죠.


-그려. 잘하구.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하구. 큰 아들 잘 자! 사랑해!


평소 장난기가 많은 어머니가 발랄하게 말씀하시고 깔깔깔 웃으신다. 어머니의 가식 없는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예. 저도 사랑해요. 쉬셔요.”


전화가 끊겼다.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귀에 맴돌아 덩달아 나도 피식 웃었다. 남은 밥을 처리하기 위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왜 인지. 그 새 입맛이 달아났다. 들었던 숟가락을 다시 내려놓았다.


천안에서 첫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본가를 찾아 한 이틀을 가족들과 보냈다.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끝내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잘 도착했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답하는 것으로 짧게 끝났다. 그리고 집 떠나 삼 일이면 자유를 얻는다고 떠들던 스물여섯의 상우는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2018년 11월, 호주에서 귀국해 2019년 2월까지 약 세 달 정도를 가족들과 지냈다. 분명 빨리 독립하고 싶어 안달 났던 나인데 오늘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서른의 상우는 스물여섯의 상우가 그랬던 것처럼 괜히 기분이 울적해졌다. 이별했던 가족들과 다시 만나 지낸 세 달은 어쩌면 너무 짧은 시간이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보고 있던 유튜브를 재생했다. 온갖 소리를 질러대며 일상을 소개하는 운동 유튜버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대접의 밥을 한 숟갈 떠 억지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 해가 지고 자취방에 드는 2월의 한기도 팔팔 끓인 찌개를 식히지는 못했나 보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부모님과 통화를 끝낸 지금까지 식지 않아 땀이 흐르게 만들까. 내 볼따구니를 간질이는 이것은 분명 땀이다. 가려운 볼따구니를 긁었다. 흐르는 땀이 멈추지 않아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눌렀다. 그냥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떠난 입맛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대접을 들고일어나 싱크대에 쏟아 버렸다. 김치찌개 국물에 벌겋게 물든 밥이 개수구에 쳐 박혔다. 양손으로 싱크대를 잡고 버려진 밥을 바라보며 서른의 상우는 생각했다.


‘하… 씨바, 음식물 쓰레기봉투 없는데…’


미완성 삼십대 1권. 마무리.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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