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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0. 2022

드립 커피

3장. 4화.

그녀는 근무복으로 갈아입지도 못한 채 바(Bar)에 들어와 일을 도왔다. 성호와 지연은 마치 사전에 짠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했다. 바(Bar)를 홀로 책임지느라 정신없어하던 성호는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두 다리를 뿌리처럼 박아두고 끊임없이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지연은 소스나 시럽, 얼음, 우유, 물 따위가 담긴 음료의 베이스가 될 컵을 성호의 옆에 두었고 성호가 본인이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차례로 컵 안에 부어 음료를 완성했다. 그러면 지연이 그것들을 트레이에 올려두고 진동벨을 울려 손님을 호출했다. 나? 나는… 나는 그냥 하던 대로 주문을 받았다. 아니, 적었다. 수기로…


내가 손님이 주문한 음료 이름을 잘못 적어 일이 꼬이면 성호는 짧게 탄식했고 지연은 ‘그럴 수 있다.’고 웃으며 다독였다. 그 바쁜 와중에 사고가 터져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원래 손님이 주문했던 음료를 침착하게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지연이 그것을 들고 바(Bar) 밖으로 나가 손님을 찾아다니며 전달했다.


지연과 성호는 완벽하게 합을 이루고 있었다. 최소한의 소통과 최적화된 동선으로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끌려다니지 않고 오히려 능숙하게 통제했다. 서로가 서로를 보조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들 사이에 섞이고 싶었다.


앞서 나는 홍카를 ‘스페셜 티를 취급하는 로스터리 카페’라 적었다. 여느 로스터리티 카페가 그렇듯 스페셜 티 원두 이름들이 메뉴판 한편에 적혀있었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것을 핸드 드립으로 추출해 판매했다. 무릇 핸드 드립 커피란, 손이 많이 가기에 지금 주문이 들어온다면 아무리 합이 좋은 성호와 지연이라도 처리하기가 영 고역일 것이라 예상했다. 때문에 부디 찾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 있었다. 찾는 사람.


그러나 지연은 내 예상과 다르게 성호를 보조하는 중에도 드립 커피를 무리 없이 추출해냈다. 손쉽게 드립 커피를 추출할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사용하던 기구에 있었는데 그 기구에 대해 설명하려면 핸드 드립 커피 추출 과정에 대한 서술이 불가피하다. 하여, 간단히 적자면,


먼저, 계량한 원두를 그라인더로 분쇄한다. 그것을 종이 필터를 끼워둔 드리퍼(필터를 끼워 그 위에 분쇄된 원두를 담아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기구. 원조 격인 멜리타와 그 외에 칼리타, 고노, 하리오 등이 있다.) 안에 넣고 타이머로 시간을, 서버(드리퍼로 추출된 커피가 담기는 기구. ml 눈금이 적혀있다.)에 적힌 눈금으로 추출되고 있는 커피의 양을 체크해가며 드립 포트(드리퍼 위에 물을 부을 때 쓰는 주전자. 섬세한 물줄기를 내기 위해 일반 주전자와 주둥이 모양이 다르다.)로 물을 부어준다. 이때 아무렇게나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Drip’의 사전적 의미(방울방울 흐른다.)와 같이 일정한 물줄기로 추출이 끝날 때까지 아주 섬세하게 부어 준다.

왼쪽부터 드리퍼 (칼리타와 하리오.), 서버, 드립 포트. 직접 촬영.
하리오 드리퍼 안에 드립 필터를 끼우고 서버에 올리면 이런 모양이 된다. 핸드 드립 준비가 완료된 상태.


드리퍼에 물을 쏟아부어 비교적 추출을 빨리 끝낼 수 있는 ‘푸어 오버’(pour over) 방식도 있지만 홍카에서 이 방식은 ‘물줄기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없는 삼류들이나 쓰는 방식.’이라 천대받았다. 말인 즉, 바리스타는 핸드 드립을 끝낼 동안 다른 업무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타개책으로 홍카에서는 ‘클레버’라는 기구를 사용했다.

클레버. 출처 : 쿠팡. 브랜드 : 미스터 클레버.


모양새는 여느 드리퍼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바닥에 있는 커피 추출구를 컵이나 서버 위에 올리고 내리는 것만으로 쉽게 여닫을 수 있었다. 추출 과정은 핸드 드립을 할 때와 같이 클레버 안에 안에 종이 필터를 끼우고 분쇄한 원두를 넣는다. 그리고 그 위에 물을 부어 주는데 핸드 드립처럼 섬세하게 부어줄 필요 없이 원두가 물과 잘 섞이도록 푸어 오버 방식으로 쏟아붓는다.


커피가 우러나는 시간은 2분에서 3분 정도. 바리스타는 다른 업무를 보다가 물을 붓고 맞춰둔 타이머가 울리면 클레버를 컵 또는 서버 위에 올릴 뿐이다. 그러면 추출구가 열리고 종이 필터에 찌꺼기가 걸러진 맑은 커피가 추출된다. 우리 독자 여러분들, 고작 2, 3분? 하시겠지만 잘 모르시는 말씀. 숙련된 바리스타들은 그 짧은 시간에도 상당한 양의 업무를 처리한다. 홍카는 세 개의 클레버를 상비해 두고 손님이 몰리면 그것을 꺼내 사용했고 그로 하여금 바쁜 시간대에도 최소 인력으로 드립 커피를 판매할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빼곡히 홍카를 채운 사람들로 보이지 않던 홍카의 나무 바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오전, 한가했던 홍카의 그 모습을 다시 찾았다. 여느 카페들도 그렇듯 전쟁이 끝난 바(Bar) 내부는 ‘이런 곳에서 사람이 마시는 음료를 만들어 판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싱크대는 설거지 거리로 꽉 찼고 바(Bar) 위와 바닥은 급하게 계량하다 떨어진 시럽, 소스, 우유, 커피 등으로 흥건했다.


그러나 바(Bar)를 경계로 그 너머에는 초봄의 하루 중 가장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마침 홍카의 유리벽을 넘었고 그것이 닿은 테이블엔 어떤 이유에서인지, 평일 오후임에도 회사 밖에서 여유를 즐기는 손님 몇 명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책을 읽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연과 성호는 바(Bar) 너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어수선한 바(Bar)를 정리했다.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나도 고개를 숙여 바(Bar) 위의 얼룩들을 지워 나갔다.


“근데요, 설마 매일 이런 건 아니죠? 둘이서 마감 근무자 올 때까지 버티기가 힘들 것 같은데…”


문득 앞날이 걱정되어 진한 초코 소스 얼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나 대답하라는 듯 물었다.


“매일 이런데? 그리고 오늘은 인수인계 때문에 성호 오빠랑 상우 씨 둘이서 한 거지, 평소에는 마감 근무자 올 때까지 상우 씨 혼자 해야 돼요.”


‘아뿔싸!’


지연의 대답을 듣고서야 성호의 인수인계가 끝나면 마감 근무자가 출근할 때까지 혼자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매니저가 보내준 스케줄이 적힌 엑셀 파일에도 분명 오픈과 마감 근무자는 매장 당 한 명씩 배정되어 있었다. 다만 그 둘이 겹치는 시간이 있었을 뿐.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지연을 바라봤다.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곤 큭큭 웃었다.


“상우 씨, 우리 이제 점심 먹으러 가죠. 지연아 우리 갔다 온다? 마무리 좀 해줘.”


설거지를 끝낸 성호가 말했다.


“아, 저 옷 좀 갈아입고요.”


아직도 근무복으로 갈아입지 못한 지연이 사무실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 씨, 빨리 갈아입고 와!”


뛰어가는 지연의 뒤로 성호가 소리쳤다.


“우리도 지연이 나오면 옷 갈아입고 가죠. 밖에 쌀쌀할 텐데…”


옷을 갈아입은 지연이 바(Bar)에 다시 들어서자 성호는 사무실로 향했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성호는 홍카를 떠나며 확실한 마무리를 짓고 싶었는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인계하려 애썼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근무복 셔츠를 벗고 입고 왔던 맨투맨을 캐비닛에서 꺼내 든 그때! 지연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아, 깜짝… 야! 뭐 하는 거야!”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성호가 지연에게 소리쳤지만 되려 그녀는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띠고 장난스레 말했다.


“아니… 안 나오길래…”


“그렇다고 옷 갈아입는데 문을 열어? 그리고 바(Bar)는! 바를 비워두면 어떡해!”


소리치는 성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연은 한동안 문을 연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나가라고! 바(Bar) 계속 비워 둘 거야?”


성호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문을 닫고 지연이 나갔다.


“하… 쟤가 저래요.”


성호가 이제는 체념했다는 듯 말했다. 이때 나는 성호가 바(Bar)를 비워두는 지연의 안일함을 두고 말한 것으로 이해했지만 그가 뱉은 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성호와 내가 식사를 하고 다시 홍카로 돌아오니 면접날 맡았던 뻥튀기 튀기는 냄새가 매장을 채웠다. 우리는 다시 근무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지연이 홀로 지키고 있는 바(Bar)를 지나 사무실로 향했다. 기차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로스팅 머신 옆엔 언제 왔는지, 사장님이 있었다. 사장님은 식사를 하고 온 나에게 경쾌한 인사를 건넸고 일은 어떤지 물었다. 나는 아주 뻔뻔하게도 눈 하나 깜짝 않고 할만하다고,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했다.


오후의 홍카 근무는 누구나 한 번쯤 로망으로 품었을 법한 카페 근무 그 자체라 적을 수 있겠다. 성호는 에이드나 과일차의 베이스가 될 과일 청을 담갔고 지연은 수제 스콘을 반죽했다. 나는 지연의 옆에서 스콘 반죽하는 법을 배웠다. 과일청은 언젠가 아르바이트했던 카페에서 담가 본 적이 있었기에 홍카의 청 담그는 레시피만 받아 적어 두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바빴던 그때를 홍카 사람들은 ‘피크’라 불렀다. 스콘 반죽을 끝내고 ‘피크’에 팔려 나간 스콘과 쿠키를 구워 다시 채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쯤 돼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여유가 생겼다. 성호는 그 좁은 바(Bar) 안에서조차 우리와 거리를 두고 홀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개점부터 쉼 없이 달려 심히 지친 나도 성호처럼 핸드폰이나 하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왜인지, 지연이 내게 꼭 붙어 이런저런 사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상을 떠벌리고 다니는 것을 심히 경계하는 나로선 그녀의 행동이 참 불편했으나 초장부터 사이가 틀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면접 때 진행했던, 내 입사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사장님이 맹신하는 그 쌍놈의, 싸구려 성격 테스트 결과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아 적당히 받아주고 있었다. 그때 사장님이 바(Bar)로 나와 성호를 불렀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상우 씨는 첫 근무니까 오늘 포장 업무는 성호랑 할게요.”


아무래도 첫 근무인 직원을 데리고 포장 업무를 하기에는 미덥지 못해서 일까. 오늘의 추가 수당에 당첨된 성호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로스팅실로 들어갔다.


“그럼~ 오늘은 퇴근하고 뭐할 거예요?”


성호가 들어가자 지연이 더 적극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그냥 뭐… 운동하거나 쉴 것 같은데…”


“어쩐지… 그러신 것 같았어요.”


살짝 웃는 지연.


“뭐가요?”


“운동하실 줄 알았다고요.”


“아…네…”


시답잖은 문답이 오가던 중 퇴근 시간이 되었다. 또 무어라 물어대는 지연에게 대충 얼버무리고 사무실로 향했다.


“아, 퇴근? 오늘 고생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여전히 로스팅 머신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사장님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적지만 그녀는 인사를 참 정석? 적이고 경쾌하게 잘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가는 머신에 집중했다. 성호는 로스팅 머신 앞 실링기(용기나 봉지 따위에 내용물을 넣고 밀봉하여 포장하는 데 사용하는 기계.) 앞에 서서 원두가 담긴 봉투를 실링 하고 있었다.

실링기. 원두 봉투 주둥이를 봉인할 때 사용한다. 직접 촬영.


사장님의 인사에 짧게 대답하고 사무실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사장님과 성호, 그리고 지연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홍카를 나와 역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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