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화.
출근시간인 오전 10시가 되기 15분 전. 홍카에 도착해 카페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있기를 약 5분. 주변 카페들은 이미 오픈 준비에 들어갔으나 홍카의 문은 아직 잠겨있었다. 그때 저 멀리 누군가 홍카를 향해 걸어왔다.
“오늘 첫 출근하는 분이시죠?”
그는 미처 홍카에 다 이르기도 전에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같이 근무하게 된 ‘성호’였다. 막 크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평균은 웃도는 덩치에 170cm 후반의 신장, 가는 은테 안경을 썼다. 렌즈의 도수가 높아 그리 보이는 것인지, 원래 타고난 모양이 그런 것인지 눈이 굉장히 작았다. 물론, 내 눈도 작지만 만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실눈은 이때 처음 보았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상우라고 합니다.”
성호는 내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나를 지나쳐 열쇠를 꺼내 잠긴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결국 대답도 없이 휙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는 구석구석 흩어져있는 스위치를 찾아다니며 홍카의 불을 밝혔다.
“저는 김성호라고 하고요. 보셨죠? 스위치 찾아서 불부터 켜시면 돼요.”
이제서야 자신을 소개하는 성호.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도대체가 돼먹지를 못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못마땅한 것인지. 첫 만남부터 계속되는 그의 도 넘은 쌀쌀맞음에 살짝 짜증이 났다.
‘저기요’
하고 불러 세워 따져볼까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을의 입장. 수습 기간 중 사수의 평가는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참았다. 절대로 무서워서 참은 것은 아니었다. 전개되는 글의 흐름 상, 당시 내가 무서워서 참은 게 맞다는 의심이 들 수 있다. 그렇더라도 독자 여러분들! '아, 상우 작가가 잘못 적었구나.'라고 생각 하시 옵고 그냥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로 무서워서 참은 것은 아니었다.
“성호 씨, 저는 뭐부터 하면 될까요~?”
분위기 환기를 위해 필살기 시전. ‘뭐.부.터.하.면.될.까.요.~.?.’ 물결 표시가 포인트.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함과 동시에 사근사근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무려 호주의 ‘머핀 브레이크’에서도 먹혔던 마법의 문장을 뱉었다. 최대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 글에서 단 한 번도 적지 않았던,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적히지 않을 물결 표시가 등장했다는 것이 당시 내 말투가 정말 그랬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짧은 고찰을 학창 시절 문제집에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보시오.’라는 지문으로 수없이 훈련해 왔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나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셨으리라 믿고 마저 진행해 보겠다.
“청소부터… 아, 일단 이쪽으로 와보실래요?”
성호는 면접 때 사장님이 드나들던 중문을 넘어 오른쪽으로 사라졌다. 무미건조한 태도는 여전했다. 그를 따라 중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도니 비좁은 복도가 나왔다. 그 끝에는 어딘가로 향하는 철문이 있었다.
“이쪽으로…”
철문을 열어 닫히지 않게 붙잡고 나를 기다리는 성호가 말했다. 얼굴 한 번을 쳐다보지 않던, 인사도 받지 않던 그가 결국 나를 외진 곳으로 불러냈다. 30년간 쌓아온 빅데이터로 미루어 보건대 상황이 몹시… 좋지 않다. 초면인 남자 둘이서 외진 곳을 찾을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 번은 겪었던 ‘그 상황’ 임이 분명하다. 내 짧은 역사를 돌아보면 ‘그 상황’에 놓인 나는 항상 패자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나는 마냥 맞아줄 생각이 없다. 성호의 홈 그라운드인 것을 감안해 먼저 쳐야 할지, 아니면 후처리를 생각해 일단 한 대 정도는 맞아 주고 쌍방을 주장할지 고민하며 철문으로 들어서니, 건물의 밖으로 향하는 시멘트 계단이 나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을 앞에 두고도 캐노피 지붕을 투과해 계단 위를 비추는 초봄의 햇살은 어찌나 눈치가 없던지, 주황빛 그 색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사로웠다. 성호는 내가 들어올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계단 위로 세 칸 정도 올라섰다. 유리한 위치를 놓쳤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든 그를 끌어내리고 내가 계단 위를 선점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찰나,
“담배… 태우시죠?”
계단 한편에 놓인 여러 종류의 담배 중 하나를 집어 든 성호가 말했다.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리고 웃는다. 평상시에도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더 짓이겨가며 처음으로 웃는다.
“여기가 직원들 흡연하는 곳이에요. 청소도구도 여기 보관하고요. 이거 담배도 다 직원들 거예요. 한 대 빨고 시작하시죠.”
하… 다리가 풀렸다. 한편으로는 ‘설마… 에이, 설마…’하며 따라오기는 했다만 분위기로 보아 주먹은 아니래도 쌍욕 정도는 오갈 거라 생각했다.
“여기… 잠깐 앉아서 태워도 되나요?”
서있자니 오금이 저려 성호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계단 위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성호도 나를 따라 내 몇 칸 위에 자리를 만들어 보다 푸짐한 엉덩이를 두었다.
본가 병천을 떠나 생에 처음 정직원으로 취직한 카페, 그러니까 호주로 떠나기 전까지 일했던 천안 카페에 입사했을 때 나는 심한 텃세를 겪었다. 면접 당시에는 몰랐는데 출근하고 보니 나를 제외한 전 직원이 여자였다. 누군가 꿈꾸는 하렘(일본어: ハーレム. 한 남자가 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내용을 담은 작품들을 일컫는 말이다.)은 커녕, 요즘 들어 인터넷에서 부쩍 많이 언급되는 여초 직장 특유의 은근한 무시와 따돌림을 그대로 당했다.
당시 나는 이미 계약한 원룸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좋으나, 싫으나 감내해야만 했다. 괴롭힘을 주도하던 이가 있었는데 나와 동갑인 점장이었다. 본사가 도산할 때 매장을 떠 앉게 된 기운이 형님은 왜인지, 그녀를 쫓아내듯 해고했다. 훗날 우연한 자리에서 그녀를 만나 괴롭힌 이유를 물었다.
"그냥… 나랑은 잘 안 맞을 것 같아서."
잘 안 맞는 것도 아니고 안 맞을 것 같아서… 괴롭힘과 따돌림에 이유는 없었다. 흐르는 시간이 그때 받은 상처 주변 흙먼지를 씻어갔대도 정작 상처가 아무는 속도는 더뎌 아직도 잠 못 드는 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성호의 일관된 쌀쌀맞은 태도에 그때의 상처가 다시 욱신거렸던 것이다. 그대로 아픈 과거가 반복되게 둔다면 기존의 것 외에 또 다른 지독한 후유증이 남을 것이 분명했기에 극단적인 상황까지 염두했더랬다.
담배연기가 속을 한 번 돌아 나가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한국은 학연, 지연, 혈연에 흡연이다.’라는 말대로 자연스레 서로의 신상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성호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를 했고 전역하고 나서 취미로만 즐기던 커피를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홍카를 마지막으로 커피 업계를 떠날 참이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고 그는 ‘돈이 되지 않아서…’라고 짧게 설명했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충분히 납득됐다.
담배가 다 타고도 한동안 대화는 이어졌다. 얼마나 떠들었을까.
“헤에! 개 늦었다. 이제 해야 돼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본 성호가 숨을 한 껏 들이마시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부리나케 움직여 청소도구를 챙겼다.
“그쪽에 락스랑 빗자루, 쓰레받기 좀 챙겨주세요.”
성호의 말대로 그것들을 집어 들고 다시 홍카로 들어왔다. 그는 중문과 맞닿아 있는 화장실 앞에 챙겨 온 도구들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로스팅 머신 오른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홍카는 첫인상처럼 내부 구조도 정말 동굴 같았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들여다보지 않을 곳에 문이 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들이 나왔다.
그를 따라 들어간 방 안에는 두 대의 PC와 두 대의 프린터, 그리고 온갖 서류, 사무용품들이 즐비해 있었다. 사장님이 면접 때 중문을 지나 보이지 않던 어딘가로 드나들며 성격 검사 문제와 결과지를 가져왔는데 이곳인 것 같았다. 성호는 이곳이 홍카의 사무실이자 직원들의 탈의실이라 설명했다. 그는 PC의 맞은편에 있는 다섯 개의 캐비닛 중 하나를 열어 앞치마를 꺼내 내게 건네며 말했다.
“셔츠 가져오셨죠? 이제부터 이 캐비닛 사용하시면 돼요. 옷은 여기서 갈아입고요.”
성호와 나는 옷을 갈아입고 청소를 시작했다.
천안 카페에 취직하기 전 여러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용돈벌이를 했었다. 지나온 카페 사장님들마다 성격이 다르듯 청소 방법도 제각기 달랐다. 홍카는 내가 겪었던 여느 카페들보다 청소에 엄격했다. 로스팅 머신이 카페 내부에 있다 보니 커피를 볶을 때 날리는 체프(커피 겉면에서 떨어져 나오는 얇은 막.)가 바닥과 테이블을 가리지 않고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성호가 설명했다.
오픈 근무자는 개점 전까지 혼자서 화장실 청소는 물론이요, 테이블과 의자를 전부 드러내어 청소기를 돌려야 했고 락스를 푼 뜨거운 물로 바닥을 걸레질해야 했다.
청소를 끝내고 우리는 바(Bar)에 들어와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섰다. 어느 카페를 불문하고 개점하기 전, 바리스타들은 그라인더(커피 원두를 잘게 부스러뜨리는 기계.)에서 갈려 나오는 원두의 분쇄도(갈린 원두의 입자 크기. 주로 메쉬=Mesh라고 표현한다.)와 포터 필터(에스프레소 머신에 결합되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기구.)에 담기는 원두의 양을 1g 단위로 조절해가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맛을 본다.
판매하는 커피의 최적화된 맛을 찾기 위한 과정인데 이 과정을 세팅이라 일컫고 ‘세팅을 잡다.’ 또는 ‘세팅을 하다.’라고 표현한다. 홍카에서는 오픈 때 한 번 그리고 점심에 손님이 몰리고 나서 또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세팅을 잡았다. 세팅값은 사용하는 원두, 머신, 그라인더에 따라 달라진다. 또 그날의 온도, 습도, 날씨에 따라 매일 같이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청소가 그렇듯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입맛 되시겠다.
홍카는 두 가지의 원두를 사용해 각각 다른 맛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각 원두마다 다른 그라인더를 사용했고 역시 당연하게도 그라인더 분쇄도를 각각 따로 조절해야 했다. 바리스타들은 이 과정에서 몇 번이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맛을 본다. 에스프레소의 맛이 괜찮다 싶으면 따뜻한 물에 희석해 아메리카노로 만들어 또 맛을 본다. 그 아메리카노를 식혀서도 맛을 본다. 원하는 맛이 날 때까지 계속해서 세팅 값을 변경하고 커피를 추출해 들이켠다.
때문에 바리스타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이라 한다면 만성적인 복통이라 적을 수 있겠다. 언젠가 나도 세팅을 잡다 위염을 거하게 앓은 적이 있다. 꼬박꼬박 아침을 챙겨 먹는 내가 비정상 취급을 받는 현대 사회의 풍조 상 대부분은 빈속으로 하루를 시작할 터, 식사를 하고 세팅을 잡아도 병이 나는 마당에 빈속에 커피를 연거푸 때려 부으니 그 속이 온전할 리 없다.
앓았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나는 세팅 과정에서 맛을 볼 때 커피를 삼키지 않는 버릇을 들였다. 첫 한 모금을 삼켜 목 넘김을 판단하고 그다음부터는 입에 머금어 맛만 보고 다시 뱉어 냈다. 실제로 많은 커피 업계 종사자들이 이렇게 맛을 본다. 그러나 성호는 계속해서 커피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내가 물었다.
“성호 씨, 혹시 아침 드셨어요?”
”아뇨, 저는 아침 안 먹어요.“
“근데 커피 그렇게 마시면 속 괜찮아요?”
“네. 전 괜찮던데요? 안 마시면 세팅을 어떻게 잡아요?”
“맛만 보고 뱉어도…”
“그러니까요. 아까 보니까 안 마시더라고요?”
성호가 내 말을 잘랐다. 동시에 순간이었지만 탐탁지 않아하는 그의 눈빛을 나는 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뭐… 다들 자기만의 방법이 있잖아요? 원래 여기 분위기가 막… 너무 이상한 거만 아니면 그런 걸로 뭐라고 하지는 않아요. 다들 서로 존중하는 편이에요."
존중? 존중은 개뿔. 다시 한번 적지만 나는 성호가 미처 숨기지 못한, 탐탁지 않아하는 눈빛을 분명히 보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회피한다.’고 들었다. 커피 업계를 겪어 온 나는 이 말을 내 나름대로 이렇게 재해석했다. ‘자신이 고수해 온 방식이 부정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라고.
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겪었던 사람들은 그랬다. 변화가 빠른 업계 특성상 누구보다 트렌드를 읽는데 앞장서고 여과 없이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사람(직원.), 방식 등을 굉장히 배타적인 태도로 대했다. 참 쉽게도 상대방의 사소한 말, 행동 하나가 자신이 지켜 온 가치들을 침해 했다 생각했고 일단 그렇게 판단되면 좋은 의도였다 한들 목소리를 높였다. 쉽게 적자면, 사람, 방식, 가리지 않고 부리는 텃세가 어마어마했다는 말이다. 성호라고 다르지 않았다. 담배 한 대 피우며 풀어졌던 그의 태도가 내 세팅 방식을 보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 또한 업계 사람이었다. (분명 다 그렇지는 않다고 적었다.)
홍카의 개점 준비는 천안 카페에서 그리고 아밋의 ‘머핀 브레이크’에서 하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할 것이 많았다. 네 달 동안 백수로 지내며 몸과 정신이 둔해졌는지 오랜만에 겪는 오전의 속도에 발맞추기가 여간 벅찼다. 겨우 청소만 끝냈을 뿐인데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포스기(POS-Point of Sales, 판매 정보 관리를 담당하는 기기.) 앞에서 성호에게 주문받는 법을 배우며 이제 좀 쉬엄쉬엄 가나 싶었지만 곧바로 첫 번째 손님이 방문했다.
아직 홍카의 음료 레시피를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받는 것. 그마저도 홍카의 포스기는 내가 일하던 곳에서 쓰지 않던 것이었기에 성호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주문을 받았다. 그는 내 질문에 답해 가면서도 숙련된 솜씨로 실수 없이 음료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손님이 끊겼다 싶으면 나를 불러 새로운 것들을 인계했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오니 뇌 내 용량은 이미 한도 초과. 다행히 지나쳐 온 카페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해야 할 우선순위를 구분할 수 있었기에 정말 숙지해야 되는 것만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비교적 사소한 것들은 흘렸다.
오후가 되자 홍카에 쓰나미가 일었다. 한정된 점심시간 안에 홍카의 음료를 구해야 하는 인근 회사 또는 상가 직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홍카의 모든 테이블은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찼고 그 사이사이 서서, 주문을 또는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매장 내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에스프레소 머신 위에는 포스기에서 출력된 주문서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더 붙일 곳이 없어 마지막 주문서 뒤에 겹쳐 둔 것만 어림잡아 열 장이 넘었다. 내가 포스기에서 손님이 주문한 음료의 터치키를 찾지 못해 주문 처리가 늦어지자 성호는 일단 금액만 맞춰 계산을 하고 메뉴 이름을 따로 적어달라 말했다. 그의 지시대로 금액에 맞춰 계산을 하고 옆에 꽂혀있는 펜 하나를 뽑아 들어 출력된 주문서에 인쇄된 메뉴 이름을 지우고 수기로 적어 나갔다. 우리가 보내야 할 하루를 올라야 할 산에 빗대어, 단언컨대 이 시간은 가장 가파른 구간임이 분명했다.
‘도대체 인력 배분을 이렇게까지 빠듯하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홍카의 직원들은 고작 두 명이서 이 많은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에 불만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돈 때문일까? 꿈 때문일까? 제문이라는 고등학교 동창 별명이 때문이었는데…’ ‘홍카는 경험으로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다른 곳을 알아볼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기계처럼 주문을 받고 있으니, 카페를 채운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뚫고 정확히 우리를 겨냥한 ‘안녕하세요!’라는 낭랑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지연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