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이팔… 10년간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졌다.
우연치 않은 계기로 점을 보게 되었다. 어려서 한 몇 번 엄마 따라 점집을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돈 써가며 점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친구들 말로 치자면 내돈내점이라 할 수 있으려나? 글을 쓰란다. 그렇지 않으면, 관짝 나무못 박힐 때 한이 맺혀 눈 못 감는단다. 내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한지를 집어던지며 점쟁이는 이렇게 말했다.
“볼 것도 없어 이 사람은.”
내년이면 커피 경력 10년을 채운다. 어떤 일이라도 10년을 파면 뭐라도 된다는데, 10년간 쌓아올린 커피 경력이 물거품이 됐다. 공든 탑인 줄 알았는데 비눗방울로 쌓아올린 탑이었던 것이다.
글에 흥미는 꾸준히 있었다. 저어기 내 고향 시골엔 50세의 연세에 시인으로 등단하신 어머니가 계시다.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고 어머니께서 나를 잠재울 때에도 품에 안고 책을 읽어 주셨다고. 고등학교 시절 두 형제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읽어대는 책을 사대기가 여간 힘드셨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빌려 읽는 책은 싫다고 소장한 책만 읽겠다는 고집을 부려 퍽 난감했다는 말씀과 함께... 자식새끼가 읽겠다는 책을 돈 핑계를 대가며 못 읽게 하고 싶진 않으셨다고 한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있다. 참 특이하게, 이 플랫폼은 아무나 글을 게시할 수 없다. 몇 편의 글을 작성해서 작가 신청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내가 쓴 글들을 제시하면 이 플랫폼에서 끼가 있는 일부에게 작가 승인을 해준다. 작가 승인을 받은 사람만이 이 플랫폼에 글을 게시할 수 있다.
있었던 일을 글로 적어 장난스레 작가 신청을 했었다. 보기 좋게 떨어졌다.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진입장벽이 낮은 플랫폼이라도 작가라는 호칭은 아무나 얻는 게 아닌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졸에 배운 것 없이, 빽없이, 이따위 가벼운 맘으로 감히 예술을 하려는 나를 세상이 허락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점쟁이는 이런 것들을 보고 내게 ‘글을 써라. 네가 너를 의심하지 말고 그거 하면 되니까 하려던 거 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해석해 본다.
그런 연유로 ‘나 같은 놈이 글을 써?’ 혹은 ‘이게 쓴다고 돈이 되겠어?’ 하는 심정으로 포기했던 펜을… 아니, 키보드를 이제야 맘잡고 두드려 본다. 그런데 맘을 잡았음에도 이 속에 뭔가 꽁한 것이 남았다. 위에도 얘기했듯, 본디 예술은 있는 집 자제들이나, 이미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재직중인 곳에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여학생이 일용직으로 왔던 적이 있었다. ‘이야 집이 잘 사나 보네.’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 어린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바이올린을 포함해서 모든 악기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잘 살아서 그 길로 뛰어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사는 사람이 악기를 전공할 수는 없어요.’라고. 내게는 글 역시 그랬다.
또 어디선가 주워들은 얘기로 역사상 저명했던 수학자들도 다들 먹고 살만하니까, 시간이 남아 수학을 재미로 연구했다고 한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 그렇지만 당장에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내 처지에 글이라니. 내가 예외에 해당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재미로 보러 간 점집에서 무당이 내뱉은 한마디에 결심이 섰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귀가 얇고 한없이 가볍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영 개운치가 못하다. 꽁하게 마음속 저기 한쪽에 자리 잡고 비켜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쓰고자 하는 글은 이렇다. 우리네 인생이 살면서 꼭 계획대로 풀리진 않는다. 상투적인 충고나 늘어놓자고 이런 얘기를 지껄이는 건 아니다. 그 계획에 어긋나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화가 나고 분노하고 너무 슬퍼서 피눈물을 흘렸을지라도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살짝 물러나 그때의 나를 회상해 보면 참 재밌는 일들이 많다. 물론, 정도가 지나친 슬픔에 여전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일도 있겠다. 그런 일들. 그런 일들을 조금씩 가감하고 각색해서 쓰고자 한다.
메시지라든지, 페이소스라든지, 그런 거 잘 모르겠고 뭐 검색해 보니까 글의 3요소, 4요소 그리고 글학이라든지 나오던데 그런 것들 공부해가며 멋진 글을 쓸 주제도 안된다. 삼류라도 좋다. 아니, 오히려 삼류라서 좋다. 나는 삼류다. 이 세상 모두가 일류일 수 없다. 또 극소수의 일류를 제외한 모두가 이류일 수 없다. 소수의 일, 이류를 제한다면 세상은 이미 대다수의 삼류가 지배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삼류다. 삼류 다운 글을 쓰겠다. 그저 여러분들은 동네 술자리에서 조금은 모자란 동네형이 노을 져가는 여름날 저녁에 쓰레빠 직직 끌고 나와 풀어주는 썰 듣듯이 이 책을 읽어준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공감해 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