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서울 모처의 로스터리 카페에 취직해 1년도 안돼 사원에서 대리 직급을 달았다.
나는 서브 로스터로 재직 중이다. 내 위로는 입사 5년 차 대리님께서 메인 로스터로 계신다. 카페는 매장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있는 매장직 직원 둘(남 1, 여 1)과 주말만 출근하는 파트 타이머까지 포함해 5인으로 운영된다.
회식이 있었다. 20년도 초반부터 유행한 전염병 코로나와 대리님 아내분의 출산 등 이런저런 핑계로 인해 근 1년 만의 회식이었다.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게, 나 역시 회식을 반기지 않지만, 이번 회식은 기대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4인은 오랜만에 회식인 만큼 뭔가 특별한 것을 해보기 위해 점집을 찾기로 했기 때문이다. 메인 로스터인 대리님이 출퇴근하시는 길에 위치한 점집. 그곳에 우리 4인이 방문할 것이라 예약을 해뒀다. 매장직 2명 중 여자를 담당하고 있는 1인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하지 못했지만, 우리 남자 3인은 예정대로 점집을 찾았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점집 안에서 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장구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지며 우리의 귀를 매몰차게 때리기 시작했다. 특정한 리듬을 갖고 울리고 있었는데 언젠가 본 무속인들이 나오는 공포영화에서 굿을 할 때 울리던 리듬과 굉장히 흡사했다. 우리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아니, 압도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면 이미 페널티를 갖고 가는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위치한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양치를 하던 한복 입은 사내를 마주쳤다. 우리 3인 중 내가 당당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예?”
한복 입은 사내가 우리를 바라보며 칫솔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나는 말만 걸어놓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 나 대신 얘기를 해줬으면 했다. 짧은 침묵이 어색해지기 전에 대리님이 말을 받았다.
“어제 예약했었는데요, 오늘 3시에 점 보러 온다고.”
한복 입은 사내는 물기를 털어낸 양치 도구를 정리하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 저는 여기 일하러 온 사람이고요. 주방 쪽에 물어보세요.”
장구 소리가 나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복 입은 사내는 걸음을 옮겼다. 우리의 정면으로 바로 주방이 있었고 주방 오른쪽에는 우리가 무당을 찾아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처님 조각상과 동자신 조각상들이 놓여있었다. 각 동상들 앞에는 초가 타고 있었고 초 옆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판매되고 있는 옛날 과자라든지 사탕들이 놓여있었다.
장구 소리는 주방 왼편에 있는 방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으신 할머님이 보였다. 손에는 흰 천 혹은 명주실 다발 같은 것을 들고 계셨는데 몸을 나풀거리며 덩실덩실하시고 또 빙그르르 돌기도 하셨다. 굿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전 본 엑소시즘에 관한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한국의 가톨릭 신부님들이 악마에 씐 소녀를 구하기 위해 구마 의식을 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였다. 신부님들의 조력자로 무당들이 나왔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현실과 분관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그로테스크한 CG로 처리된 연출이 많았는데 그런 장면들 모두를 포함해 내 기억에 가장 날카롭게 박힌 장면이 있었다.
무당들이 장구를 치며 잘린 소 대가리를 명주실 다발로 묶어 책가방처럼 등에 들쳐매고 소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굿을 하는 장면이었다. 방 안에서 굿하는 모습을 보고 영화에서 본 장면이 연상돼 무서웠지만, 티 내지 않았다. 다른 2인도 딱히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들도 무서웠으리라 확신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주방에 다가가 그저 아무나 들으라는 듯 내가 불렀다. ‘뭐, 가장 가까이 있으신 분이 대답하시겠지.’라는 심보였다. 그리고 또 말만 걸어놓고 침묵한다. 주방 안쪽, 음식을 하시는지 설거지를 하시는지, 고무장갑을 끼신 할머니 한 분께서 나오셨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리고 다시 대리님이 나섰다.
“어제 예약했던 사람인데요. 점 보러 왔거든요?”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람 불러드릴게요.”
주방에서 나오신 할머니는 우리가 들어온 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안돼 삐쩍 마른 남자분을 모셔 오셨다. 얼굴이 길고 입이 튀어나왔다. 눈에 짙게 쌍꺼풀이 있고 콧구멍은 큰 것이 영국의 축구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디낸드라는 축구선수를 닮았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는 우리를 작은방으로 안내했고 싹 다 몰아넣었다. 방은 따뜻했다. 우리가 앉은 왼편으로는 단상이 있었는데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조그만 테이블이 우리 앞에 놓여있고 퍼디낸드 아저씨는 그 위에 한지를 한 장 깔았다. 그리고 다른 한지 세장을 약 A4용지 사이즈로 접기 시작했다. 이때 우리는 퍼디낸드 아저씨로부터 이곳이 점집이 아니라 굿당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굿당이 뭣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설명도.
퍼니낸드 아저씨의 설명은 이랬다. 점집은 점쟁이, 그러니까 무당이 항상 상주하며 방문객들의 점을 봐주고 복비를 받는다. 하지만 굿당은 무당들이 굿을 하기 위한 장소다. 대여식으로 일정 시간 동안 장소를 내어준다. 굿당의 주인은 무당이 아니라 따로 있다. 물론, 무당이 굿당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점을 보러 온 방문객들이 굿당을 점집으로 착각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엔 멀리서 찾아오신 분들도 계셔서 매번 거절하기가 퍽 난감해, 그날 일하러 온 무당들에게 점을 봐줄 수 있는지 묻고 점을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나서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마주쳤던 양치하는 사내가 뱉은 말이 이해가 갔다. "저는 여기 일하러 온 사람이구요."라는 말은 곧 "나는 굿을 하러 외부에서 방문한 무당이니 굿당 주인에게 물으세요."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5분 아저씨의 가르침을 들으며 앉아있으니 예상외의 친절함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아저씨의 축구 선수상 얼굴도 긴장을 푸는데 한몫했다. 이 정도 긴장감은 좋다. 가격 흥정을 해야 한다면 우리 쪽에도 승산이 있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