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디낸드 아저씨는 그렇게 한 5분 정도 한지를 깔고 접으며 우리에게 굿당과 점집의 정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는 할 일을 다 하셨는지 자리를 일어서시며 말씀하셨다.
“이제 선생님 모셔올게요.”
선생님이란 우리의 점을 봐줄 무당을 얘기하는 듯했다. 퍼디낸드 아저씨가 방문에 다가서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방울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다 나가기 전에 방으로 밀고 들어온 사내는 우리가 이곳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한복 입은 사내였다. 사내는 한 손에는 부채와 방울이 주렁주렁 달린 쇠막대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반대 손이 쥐고 있는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게 반으로 접히는 최신형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사내가 들어와 상을 사이에 두고 우리를 마주 보고 앉아 우리들 중 가운데 앉은 대리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느 분, 이분부터?”
얼떨결에 순서가 정해졌다. 이곳에 들어서기 전에 우리는 네가 먼저 보네, 내가 왜 먼저 보네, 그럼 직급 순으로 가자, 아니다. 직급 역순으로 가자. 하며 서로가 점 보는 순서를 미뤘다. 아무래도 처음 이런 곳을 방문하다 보니 모두가 긴장했기 때문이리라. 서로에게 당부하듯 말했지만 결국 자기들의 결심을 다지기 위한 말들도 했었다. 이를테면 ‘절대 맹신하지 말자, 우린 재미로만 보는 거야.’라던가 '우린 무조건 5만 원만 내고 나올 거야.' 혹은 ‘무당 앞에서 인사 말곤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다른 말 하면 그걸로 유추해서 점 보는 거니까.’ 같은 말들을.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의미 없었다. 들어선 사내의 기에 눌려 그에 의해 순서가 정해졌다. 기싸움에서 완벽하게 져버린 것이다. 이 기세라면 5만 원이 아니라 사내가 부르는 대로 값을 치러야 한다. 그가 대리님의 점을 보려 입을 떼자마자 다시 방문이 열렸다. 퍼디낸드 아저씨는 김이 나는 종이컵 네 잔을 낡은 쟁반 위에 받쳐 들고 오셨다. 믹스커피였다. 몸에 커피 원두 향이 배기 시작한 이후로 입에 대지 않은 믹스커피. 긴장한 덕에 줄곧 피워댄 담배로 입이 많이 썼기에 달달한 믹스커피가 눈에 보이자마자 한 모금 머금어 입을 헹구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 대지 않았다.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 나인’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형사에게 취조를 당한다. 한여름,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 취조실은 더웠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형사가 주인공의 앞에 놓아둔 시원한 보리 차를 입에 대지 않는다. 보리 차를 입에 대면 모든 걸 불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우린 무당 앞에서 함구해야 했다.
대리님이 받은 점사는 좋았다. 부러울 정도로. 차마 적을 수 없어 힌트만 주자면 사주에서 돈을 가지라 하는데 대리님이 발로 뻥 차는 격이라 했다. 지금 당장부터 장사를 해도 사업을 해도 망하진 않는다고 한다. 점을 다 본 대리님은 개운하다는 듯 퍼디낸드 아저씨가 가져다주신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왠지 그 홀짝거리는 소리가 참 얄미웠다. '스페셜티 커피를 볶는다는 사람이 믹스커피에나 손을 대고 말이야.' 하며 말도 안 되는 혼잣말을 속으로 지껄였다. 사내가 나를 쳐다봤다.
“이쪽이 다음?”
정면에서 사내의 얼굴을 보니 유명한 코미디언이 떠올랐다. 언젠가 이 코미디언이 텔레비전에서 멕시코 형사 분장을 하고 콩트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방 안의 분위기는 사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풀어져 있었다. 대리님이 먼저 점을 보실 때 이 사내가 영화나 텔레비전에 나오던 무서운 무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놓고 반말을 하며 쌀을 던지고 호통치는 무당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부를 때도 항상 이름 뒤에 ~씨는, 하며 굉장히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이제 내 차례다. 기대가 됐다. 얼마나 좋게 나올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어머니는 다른 점집에서 종종 내 점을 보셨다. 내 점사에 대해 몇 번인가 말씀해 주신 적이 있으신데 나 역시도 대리님과 같이 사주에 돈이 많다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내가 대리님의 사주가 적힌 한지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한지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고 받아 적었다. 사내가 본관을 물었고 내가 경주 이씨라 답하자 사내의 감탄이 나왔다.
“왜 그러세요?”
혹시나 안 좋은 것일까 싶어 긴장하며 물었더니 사내는 “아, 좋아서요”라고 답하고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상영씨는 대리님처럼 고지식한 면이 있네요?
방울을 멈춘 사내가 물었다. 예라고 답하자 사내가 계속해서 말한다.
“우리 상영씨는 머리가 굉장히 좋대요. 한번 보고 들은 건 안 까먹는대요.”
사내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상영 씨는 글을 쓰라는데? 모르겠어요. 나 아무것도 몰라.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는 거예요. 글을 쓰래.”
대리님이 처음 점을 보실 때부터 이 사내가 계속해서 뱉은 말이 있다. ‘난 몰라.’ ‘난 모르겠어.’등 모른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하나도 모른다면서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언젠가 우리와 같이 지냈던 것처럼 정확히 들어맞았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글을 써야 된대요. 지금 하는 거 그만두래. 그거 맞지도 않는대. 글을 쓰래. 글 안 쓰면 관짝 들어갈 때 한이 맺힌다는데?”
어느새 사내의 말이 반말로 바뀌었다. 나와 액면가로는 별 차이 없는 대리님 점을 볼 때는 끝까지 존댓말이었는데 갑작스레 반말로 점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글을 쓰고는 싶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다루는 플랫폼에 내가 쓴 글들을 게시도 해봤지만 플랫폼 운영진들은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기엔 미숙하다 생각했다. 공개되지도 못한 글들은 내 노트북 수많은 파일 속 어딘가에 묻혔고 나는 체념했다. 글도 배워서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학은 나와야 내 글에 설득력이 생기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생각했다. 사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너를 자꾸 의심하지 말래. 너 그거 하면 돼. 너 지금 그 월급 받고 이렇게 살려고 서울 왔어? 그냥 글 써. 당장 내일부터 써.”
이제는 반말을 넘어서 명령조로 말을 내뱉는 무당이 내 사주가 적혀있는 한지를 옆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볼 것도 없어. 이 사람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같이 점집을 올 정도로 친한 직장 동료들도 아무도 몰랐다.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리고 글을 인터넷 플랫폼에 게시해서 운영진들의 심사를 받았었다는 것을. 그런데 이 사내는 그걸 아는 듯 말했다. ‘음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너 그거 하려던 거 의심하지 말고 해.’라는 투로. 충격적이었다. 내 기대와는 너무 다른 내용의 점사였기 때문에, 글을 쓰려던 걸 들킨 것 때문에, 그리고 그걸 의심했던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사주가 적힌 종이를 집어던진 사내는 다시 우리 카페에서 남자를 담당하는 매장 직 직원의 사주를 빈 한지에 적기 시작했다. 식어빠진 믹스커피 한 모금이 입속을 한 바퀴 돌았다. 이렇게나 달았다.
각자 점을 보고 나온 우리는 우리가 점을 본 방앞에서 담배를 태웠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담배의 반이 타들어갈 무렵 대리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거봐 너 내가 글 쓰라고 했잖아.”
평소에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가족이 아니다. 대리님과는 주말 이틀을 제외하고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6시 30분까지 9시간을 항상 같이 있는다.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도 같이 먹는다. 아마도 내가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부터는 내 사정과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대리님일 것이다.
“대리님 제가 쓴 글 읽어 보셨어요?”
“너 평소에 말하는 것만 봐도 알아. 넌 글 써야 돼.”
대리님이 담배 한 모금을 빨아 연기를 속으로 삼키고 다시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너무 맹신하지는 말자.”
대리님은 우리의 다짐을 다시 상기 시켰다. 이곳에 오기 전 우리가 몇 번이고 돌아가며 말했던 그 결심.
“대리님 근데요 제가 고지식한가요?”
“그렇긴 하지. 근데 너무 믿지는 말자.”
“대리님 근데요, 제가 머리가 좋아요?”
“너 평소에 이것저것 보고 나한테 얘기 많이 해주잖아 머리가 좋으니까 그런 거 다 기억하지 않을까? 근데…”
말을 잊지 못하신다.
“대리님 우리 이거 맹신하면 안되는 거 맞죠?”
다시 물었다. 침묵한 대리님. 담배는 다 타들어갔고 우리는 담뱃재를 털어낸다. 대리님은 끝내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먼저 뒤돌아 점집을 나서시는 대리님의 뒤에서 나는 괜스레 장난기 어린 심술이 돋아 입가에 미소를 띠고 다시 묻는다.
“대리님 우리 이거 맹신하면 안되는 거 맞는 거죠?”
"오만 원에 이 정도 가성비면 나쁘진 않은 것 같네."
엉뚱한 대답을 하고 차에 타는 대리님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이미 시간은 점집에 들어서기 전부터 1시간 30분이 지나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대리님은 시동을 걸었다. 차는 달렸다.
군대에서 말년 선임들을 떠나보내는 후임의 입장에서 가장 많이 들는 말은 '이제 뭐 먹고살지?' 혹은 '나가면 뭐 하지?'였다. 그런 고민을 했던 선임들도 나도 지금은 다들 무언가를 해서 벌어먹는다.
누군가 뱉은 얘기가 떠오른다. '사람의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하니, '사람의 길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가 혹은 그녀가 당장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을 하든, 다른 길 위를 걷고 있든, 결국 돌고 돌아 정해진 길 위에 서게 된다'라는 뜻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아니, 이제는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어떤 계기로 어떤 사건으로 자신의 가야 할 길 위에 놓이게 될지는 모른다. 다 제각각의 경우와 사건과 계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경우도 그대의 사건도 우리의 계기도 오늘 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점쟁이 한마디에 맘을 먹는다는 것이 개미 눈곱만큼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렇게 가벼운 사람인 것을.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믿어서 손해 볼게 아니라면 나는 믿어 보련다. 점을 봐준 사내를 이제 점쟁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르련다. 선생님 말씀대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삼류 글쟁이의 길이라면 나는 걸어 보련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나는 비로소 내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믿어 보련다. 그리고 조금 이 길에 익숙해진다면, 그때 나 발 벗고 뛰어 보련다.
그냥… 그래 보련다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