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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의 법칙.

by 상우

“어떤 가족이 과일을 먹는디 그집 아부지가 자기는 신 부분이 좋다고 단 부분은 아들 다 주구 자기는 신 부분만 골라 먹더랴.”


집 근처 정육 식당. 어머니께서 불판 위, 익어가는 삼겹살을 뒤집으시며 말씀하셨다. 형제의 앞접시 위엔 살코기가. 아버지의 앞접시 위에는 오돌뼈가 붙은 삼겹살 몇조각이 놓여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린 내가 어머니께 뜻을 여쭸다.


“아빠가 오돌뼈 있는 부분은 다 드시고 늬들 살코기만 주잖어. 아빠도 엄마도 맛있는 부분 좋아혀.”


어머니의 가르침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아닌디… 나는 오돌뼈가 좋은디... …”




우리 가족은 주에 한두 번 정도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켰다. 그때마다 메뉴를 두고 형제와 아버지 간에 의견이 충돌했다. 예를 들어, 고깃집을 간다 치면 형제는 달달한 양념갈비를 시켜달라 졸랐고 아버지께선 생삼겹살을 고집하셨다. 배달을 시킨다고 하면 형제는 피자를. 아버지께선 치킨을 원하셨다. 아주 가끔 우리와 아버지의 의견이 치킨으로 수렴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형제는 양념치킨,아버지께선 후라이드를 원하셨다. 어머니께선 대체로 밖에서 고생하시는 아버지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독자 여러분들, 두 가지를 다 주문하면 되지 않았느냐. 라고 하실 수 있겠지만 당시 이씨 가문 행정 보급관직으로 계셨던 윤여사님께선(나의 어머니. 물론, 지금도 직책 수행 중에 있으시다.) 배달과 외식에 굉장히 회의적인 입장이셨기에 두 가지 메뉴를 같이 주문 한다는 것은 우리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로 돌아와, 회사 과장님이 내게 물었다.


“평생 하나만 먹을 수 있어. 그럼 너는 삼겹살, 갈비. 어떤 거?”


“아, 저는 무조건 삼겹살이죠. 갈비는 먹다 보면 질려서 많이 못 먹어요.”


갈비를 시켜달라고 그렇게 떼쓰고 조르던 내 어린 시절이 무색하게 당연하다는 듯 삼겹살을 택했다. 어렸을 때 항상 내 입맛을 사로잡았던 피자도 이제는 혼자만 펼쳐보는 대구빡 속 메뉴판에서 삭제된 지 오래다. 그러나 입맛이 변했더라도 그 메뉴판 한 켠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바뀔 대로 바뀐 입맛인데 나이가 서른둘이 되어도 이것만은 바뀌지 않으니, 우리 우정 평생 가리라 생각했다. 바로 양념치킨.


수많은 치킨 메뉴가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치킨을 시킨다고 하면 맥시카나의 양념치킨을 고집한다. 어느 금요일. 퇴근 후 여자친구와 맥주를 한잔하기 위해 메뉴를 고르던 중 놀랍게도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바삭한 후라이드, 소금 찍어 먹고 싶어.”


한 번의 일탈이라 생각했지만 후로도 나는 양념치킨을 주문하지 않고 있다. 비로소 나는 아버지와 실랑이 없이 치킨을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두 마리를 한 번에 시키는 괜한 지출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최근, 인터넷에 '유전의 법칙'이 화제에 올랐다. 키도 유전, 공부도 유전, 병력도 유전. 심지어 노력하는 성향마저도 유전이라는 얘기가 이제는 더 이상 이루지 못한 자들의 핑계가 아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명절에 친가로 인사를 드리러 가면 친가 어르신들은 내가 아버지와 똑 닮았다고 말씀하신다. 반대로 외가에 인사를 드리러 가면 외가 어르신들은 내가 어머니와 똑 닮았다고 하신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지인들에게 아빠와 엄마 사진을 보여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빠와 닮았다고 말한다. 이제는 입맛마저 아빠와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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