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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에 사는 8천만 살의 바위

부산에서 한 달 살기 10월 24일 (2)

by memory 최호인

2. 8천만 살 바위


태종대에서 나온 우리는 바닷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이날 우리는 총 3만2천 보를 걷게 된다.

그렇게 많이 걷게 되리라고는, 친구 Y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걷다 보니, 결과가 그랬다는 것을 그날 밤에야 알게 됐다.


우리는 영도의 해안가 산책로를 걸어서 나왔는데, 중간에 흰여울마을을 통과했고 영도다리를 건넜다. 영도다리 이후에는 깡깡이예술마을을 거쳐 자갈치시장을 지나 남포동과 국제시장까지 걸어갔다. 그 긴 길은 그냥 평지만 있었던 게 아니라, 아마 절반 이상은 바닷가 산길과 해안가 바윗길이었다. 걷기에 힘들었다는 말이다.


흰여울마을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하염없이 이어진 바닷가 길을 걸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Y는 이미 과거에 걸었던 길이라서 그런지, 바닷가 자갈길과 절벽 아랫길로 거침없이 나를 이끌면서 행진했다. 나는 이따금 절벽으로 휘어져서 길이 안 보이는 곳으로 친구 Y가 가는 것을 보고, “거기에 길이 있어?”라고 묻곤 했다. 때로는 길 같아 보이지 않는 바위 위로 또 자갈들 위로 걸어갔다. 이따금 바위들 사이에 또 해변에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절벽 아래 있는 바위들과 또 우리가 밟고 지나치는 바위들의 나이는 8천만 살이라고 한다.


8천만 년 전에 바다 위로 솟아오른 바위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서 이 지역의 지질 변화를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 바닷가에 기묘한 모습의 아름다운 바위들이 수도 없이 놓여 있고 그 사이로 파도가 잔잔히 몰려드는 것을 보는 것은 태고의 자연이 품은 위대한 풍화와 진화를 깨닫게 해 준다.


수천만 년 전에도 수백만 년 전에도 이곳이 이런 모습을 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겨우 1~2만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현생인류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여기 이 지구상에서 찰나의 순간을 살고 지나갈 뿐이고, 그 전과 그 후에 남는 것은 자연이다. 그 자연 또한 더욱 긴 시간에서 보면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지고 찢어지고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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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위로 솟아오른 바위와 흰여울마을로 가면서 우리가 밟았던 바닷가에 있는 바위는 동일한 모석에서 갈라진 형제 암석들일 것이다. 그러나 땅의 변화에 따라 어떤 것은 아주 높이 어떤 것은 바다 아래로 잠겨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그러니까 땅 위에 솟은 것만 보고 세상을 느끼고 판단하는 일이 많지만, 영도는 바다에서 치솟은 산 봉우리일 뿐이고,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아랫부분이 바닷물에 잠겨 있다. 그러니, 여기서 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되새길 수 있다. 8천만 살의 바위의 변화 앞에서. 또 그간 바위를 끊임없이 몰아쳤던 바람과 바닷물 앞에서.


해안가를 걷는 도중, 절벽 위에서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바닷물에 떨어지는 햇살이 만든 원 모양을 보는 행운을 얻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곳에서 구름 사이의 햇살이 바다 한가운데 집중적으로 떨어져서 넓은 원이 되어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주변에는 이미 바다에 닻을 내리고 말뚝을 박은 듯 정박한 배들이 마치 호위병처럼 노랗게 빛나는 햇빛의 원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감흥, 나아가 전율을 주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같은 바다 모습은 자연이 선사하는 우연한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마치 그곳에서 그 순간에 돌연히 하늘의 점지를 얻어 영험한 기운을 느끼는 것과도 같다. 어쩌면 그런 모습을 보고 도사들은 도를 닦았다고 하고, 종교인은 돌연히 깨달음을 얻었다고도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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