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 때타월

내 몸을 살피며 마음도 함께 살핍니다

by 자유인

일요일 저녁이 되면 루틴 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아서 한 주간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일입니다. 먼저 욕조를 간단하게 청소하고 물을 받기 시작하면 물 받는 동안 변기와 욕실바닥, 세면대를 먼저 깨끗이 씻어냅니다. 곧 있을 나의 목욕 시간을 더 쾌적한 공간에서 보내기 위한 하나의 의례입니다. 욕실 청소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의례로 새로운 의미를 두고 보니 욕실청소를 하면서도 나름의 즐거움이 덧입혀지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인생은 참 별 것이 없습니다. 그저 소소한 일들에 아름다운 미명들로 의미를 찾아주면 그 모든 것들이 제 삶의 장에 켜켜이 정돈되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쌓이면 그것이 곧 내 삶 전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뜻한 물이 욕조에 절반 정도 차오르면 라벤더 향기가 가득하도록 목욕 소금을 넣어줍니다. 손과 발을 시작으로 욕조에 몸을 담그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피부로 전해 오는 따뜻함이 주는 짜릿함과 편안함 때문에 이전에 내게 머물던 생각과 감정의 잔해들이 물속에 사르르 녹는 듯하지요.


20분 정도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충분히 몸을 풀어준 다음 드디어 때를 벗기기 위해 때타월을 꺼내듭니다. 팔을 시작으로 때를 밀기 시작하는데요, 이 시간은 매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시간입니다. 피부 상태의 변화를 느낄 때도 있고요. 외식이 유독 많았을 때는 군살이 불어난 것을 살펴볼 수도 있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등교 준비와 함께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남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만 저를 단장하는 수준으로 거칠게 나를 돌보는 게 고작입니다. 퇴근 후 돌아와 샤워를 할 때도 바깥의 더러움을 씻어내며 하루의 마침표를 신속하게 찍기 위해 내 몸에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는 편이지요.


그러나 일요일 저녁은 좀 다릅니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남편을 역에서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헛헛할 때도 참 많아요. 요즘은 봄날씨도 참 좋아서 남편 배웅이 끝나면 바로 집 앞 호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3km 정도 걷습니다. 다리가 살짝 뻐근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살피는 목욕 시간을 갖는 거죠. 근육도 풀어지고, 헛헛한 마음도 풀어지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도 잠시 멀어져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습니다.


때를 미는 동안은 과거는 아주 가볍게 벗겨 냅니다. 지난주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거나 반성할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라고요. 저는 주로 나의 미래와 내일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을 섬세하게 아주 정성 들여서 살피는 편입니다. 발을 유심히 살피는 이유가 있어요. 내 마음의 상태나 일상의 생활 상황을 점검하는 중요한 지표가 발의 상태인 것 같아서요. 여러 가지 이유로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다 보면 제일 먼저 망가져 있는 게 발 같아요. 각질이 붙거나 건조해져서 발이 건강해 보이지 않을 때는 스스로 깊은 반성에 들어갑니다.


'나의 일상 중 균형에서 벗어난 영역이 있었나?'

'중요한 것을 간과하며 내 마음대로 살아간 시간들이 있었나?'

'나는 나의 시간 중 대부분을 무엇에 집중했나?'

등등의 질문을 해봅니다. 그럼 마음이 꼭 답을 합니다. 무엇 때문에, 급하게, 대충 살아왔던 시간들이 길면 한 달 정도만 축적이 되어도 제 발은 금세 변해져 있더군요.


제가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목욕을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엉덩이 쪽에 동전 모양 습진 같은 것이 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지금 1cm 정도의 작은 크기여서 곧 자연스레 좋아지겠지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그러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고 지내며 연고를 발라봤는데요.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목욕물에 라벤더 소금을 넣어서 몸을 씻으며, 혼자 생각했습니다.

'오늘 목욕으로 엉덩이에 있는 요것도 싹~ 사라지면 좋겠다.'

어머나! 그런데 놀랍게도 한 주 뒤에 다시 몸을 살폈을 때는 정말 사라져 있었어요. 거의 1년을 몸에 달고 지냈던 건데, 순식간에 사라졌더라고요. 혼자 생각으로는 소금의 효능이지 않았을 때 싶은데요. 정확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소금을 첨가한 목욕을 매우 즐겨하고 있습니다.


때를 밀고 이불 속에 들어가면 그 개운함과 촉촉함이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잠은 그냥 스스륵이지요. 그렇게 일요일 저녁을 보내면 월요일이 그렇게 버겁지는 않더라고요.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행복의 조건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일요일 저녁 대를 밀며 목욕하는 일, 그리고 개운한 기분으로 달달한 잠에 빠져드는 일. 저는 이런 시간을 제게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작은 일상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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