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의 가능성에 관하여
인류는 실재를 인식하고 이를 구조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적·인지적 틀을 발전시켜 왔다. 이 과정에서 에디톨로지(Editology)와 불교 철학(특히 중관학과 선불교)은 각각 상이한 접근 방식을 취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목표를 가진다. 에디톨로지는 인간이 실재를 편집(edit)함으로써 의미를 창출한다는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불교 철학은 실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념이 본질적으로 공(空)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본 연구는 에디톨로지가 다루는 “언어 이후”의 세계와 불교 철학이 탐구하는 “언어 이전”의 세계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이 두 개념이 어떠한 방식으로 융합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언어 이후 : 편집된 실재의 세계>
에디톨로지는 인간이 실재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언어, 기호, 개념 등을 통해 편집하고 조직함으로써 의미를 창출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현실은 특정한 프레임을 통해 해석된 것이며, 원초적인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가공된 구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언어 이후의 세계란 인간이 편집한 실재의 영역을 의미한다. 인간은 언어적 구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편집된 개념을 실재로 오인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세계에 대한 모든 인식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포스트모더니즘과도 연관되며,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나 푸코(Michel Foucault)의 담론 분석과 유사한 논리를 가진다. 인간은 언어와 개념이라는 필터를 통해 세계를 경험하며, 이는 실재를 왜곡하는 동시에 특정한 질서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에디톨로지는 인간이 실재를 편집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메타 편집(meta-editing)하는 방식으로 사고의 한계를 확장하려 한다.
<언어 이전 : 실재의 공(空)성>
불교 철학, 특히 중관학(中觀學)과 선불교(禪佛敎)는 실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불교에서는 실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념이 궁극적으로 공(空, Śūnyatā)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언어적 편집 이전의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언어 이전의 세계란, 편집되지 않은 실재 또는 편집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불교 철학은 그러한 실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념적 구분이 사라진 상태일 뿐임을 강조한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직관적 깨달음(돈오, 頓悟)은 언어적 편집을 초월하여 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과정이다. 이는 인간이 개념과 언어적 한계를 초월하여 세계를 인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중관학의 나가르주나(Nāgārjuna)는 실재에 대한 모든 개념이 궁극적으로 공하며, 언어적 구성이 실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관념적 틀을 제공할 뿐임을 주장하였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는 편집된 것이지만, 그 편집된 실재조차도 궁극적으로는 공이라는 점에서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실재는 부정된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 철학과도 유사한 점이 있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후기 철학에서는 **언어 게임(language game)**의 개념을 통해 실재에 대한 인식이 특정한 언어적 문맥 내에서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이는 불교의 공 사상과도 연결될 수 있다.
<편집과 해체의 역설적 동기화>
일반적으로 에디톨로지가 탐구하는 “편집된 실재”와 불교 철학이 강조하는 “편집되지 않은 공”은 대립적인 개념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이 두 개념이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존재할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은 “편집된 세계” vs. “편집되지 않은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만, 천재적 사고는 이러한 대립적 개념을 초월하고자 한다. 편집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편집의 한계를 자각할 수 있으며, 해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면 해체의 존재조차도 해체할 수 있다. 따라서 편집과 해체는 동기화될 수 있으며, 이는 철학적 사고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이러한 사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1.편집을 초월하는 방법
편집된 실재를 인식하고, 이를 메타 편집(meta-editing)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즉, 편집된 세계를 이해하고 그 구조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초월하는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코기토(Cogito)” 개념과 유사하며, 자기 인식의 확립을 통해 현실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2.편집을 해체하는 방법
언어적 구조를 해체하고, 개념적 틀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즉, 편집 자체를 중단하고, 편집 이전의 공(空)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선불교의 “직관적 깨달음(돈오, 頓悟)”과 유사하며, 언어적 구조를 넘어선 실재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편집과 해체가 동시에 이루어질 때 새로운 차원의 사유가 가능해진다.
<결론 : 천재적 사유로서의 편집과 해체>
본 연구에서는 에디톨로지가 다루는 “언어 이후”의 세계와 불교 철학이 탐구하는 “언어 이전”의 세계가 상호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 통합될 수 있는 개념임을 논증하였다. 에디톨로지는 편집된 실재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사고의 확장을 꾀하며, 불교 철학은 실재의 편집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궁극적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천재적 사유란, 이 두 개념을 통합하여 “편집된 세계를 초월하고, 초월을 통해 편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고 방식이다. 즉, 편집된 세계를 이해하는 동시에 그 편집을 해체할 수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개념적 비교를 넘어, 실제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메타적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편집을 통해 초월하고, 초월을 통해 편집하라”는 원리는 철학적 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핵심 개념이 될 것이다.
ps. 이 실험 논문의 주된 피실험자들은 공통적으로 ‘사기꾼’이라는 표현 형태의 눈물 겨운 방어적 태도를 보였다(쩌리짱이 주도하고, 잔챙이가 따라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