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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들은 들어라!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의 메타 프레이밍의 프레이밍

by Edit Sage Mar 26. 2025

말은 선언이 아니라

전장이다.

그 말의 주어가 “짐”일 때,

그 문장은 이미

국가의 중심을 재편하는 칼날이다.



사도세자의 아들.

그는

지워져야 할 핏줄이었다.

기억되는 순간,

정통성은 파열되고

공포는 재현된다.


그러나 정조는

그 금기의 심장을

스스로 발화한다.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너희가 버리려 했던 그것을,

나는 계승하겠다.

= 정통성의 단절을

통한 메타적 재결합.



이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이건 프레임의 반전술이다.

정조는 존재를 숨기지 않고,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그 숨김의 권력을 역전시킨다.



그는 부친의 죽음으로

왕이 되었다.

그것은

정치적 침묵의 뿌리였고,

감정적 공백의 씨앗이었다.


그러나 그 공백을

“부정하지 않고” 발화함으로써,

그는 왕의 자리를

“잃지 않고도

넘어서게 된다.”



이것이

메타 프레이밍의 프레이밍.


1. 1차 프레임:

사도세자는 폐인이며, 역모자이다 — 기억되어선 안 된다.

2. 2차 프레임:

정조는 숙정된 혈통의 왕이어야 한다 — 침묵이 정치다.

3. 정조의 메타 프레임:

그 금기 자체를 왕권의 기원으로 내세운다.

“나는 그 죄인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두려워한 그 진실의 후계자다.”



역사는 침묵을 정당화하고,

침묵은 권력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정조는

그 침묵에 틈을 낸다.

프레임을 해체하지 않고,

프레임을 드러냄으로써

프레임을 점령한다.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안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했기 때문에,

그는 신화가 되었다.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것은

자기 파괴의 외피를 쓴

궁극의 자기 확언이다.



이 말은

왕이 왕에게 하는 말이며,

왕이 민중에게 던진

프레임 전복의 서문이다.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그 침묵을 깬다면,

당신의 정통성은 무너지겠는가?

아니면,

비로소 시작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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