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마력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예기치 않은 위기를 당할 수 있다.
나를 파멸의 궁지로 몰아넣기로 작정한 사람의 모략에 빠진 경우
내 말을 믿어줄 사람도, 결백을 증명할 방법도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지금부터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한 주방장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지혜를 한 수 배워보자.
역설의 진수
먼 옛날,
중국의 한 임금님 음식담당관이 수라간 주방장을 심히 미워하여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한 가지 계교를 부렸다.
어느 날,
임금의 수라상에 잘 구운 쇠고기 산적이 올라왔는데
그 고기에 머리카락이 칭칭 감겨있는 게 아닌가!
이에 임금님이 대로(大怒)하여
주방장을 잡아들여 그 고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네 이놈, 너는 내가 목이 막혀 죽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것을 본 주방장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폐하! 신이 세 가지나 되는 죄를 지었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우선 그 날카로운 칼로 고기는 자르면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죄요,
자른 고기를 쇠꼬챙이에 꿰면서 머리카락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두 번째 죄이며,
고기의 속까지 익도록 구우면서 머리카락을 태우지 못한 것이 세 번째 죄이옵니다."
이에 임금은 즉각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음식담당관을 문초하니 이실직고하더라.
참 기막힌 역설이다.
사람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동물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감정에 불을 지피면 순간적으로 이성은 타버리고 만다.
위의 임금이 바로 그랬다.
머리카락이 칭칭 감긴 고기산적을 보았을 때 조금만 냉철한 이성으로 생각해 보았더라면
주방장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으리라.
만약 주방장에게 임금을 해할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는 독을 풀어넣지 어떻게 한눈에 띠는 머리카락을 감아놓겠는가?
하지만, 임금이 먹을 음식에 자그만 이물질 하나만 묻어있어도 경을 칠 일인데
이건 아예 보란 듯이 머리카락이 칭칭 감겨있으니 꼭지가 돌 수밖에!
음식담당관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주방장이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한들 믿어주겠는가?
하지만 주방장은 현명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빠져나갈 궁리에 골똘했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변명하는 대신, 역설로 되받아쳤다.
먼저, 자신은 죽어 마땅하다는 말로 임금의 노기를 가라앉힌 후
산적 만드는 조리 과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반어법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그는 임금으로 하여금 들으며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이 머리카락은 밥상이 주방장의 손을 떠난 후 감긴 것이란 사실을
임금으로 하여금 깨닫게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멋진 패러독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