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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Dec 14. 2023

강17 초반에 이목을 집중시켜라

강의 기법 04


의학이든 인문학이든 한 사람의 강의를 1시간 이상 듣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온종일 진행되는 연수강좌나 세미나에 참석한 청중은 나중에 지치기 마련이다.

이런 청중을 상대로 어떻게 접근하면 내 강의에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

초반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강의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생뚱한 말로 설(說)을 풀어가는 것이다.

무엇으로?


1) 색다른 인사말로 시작하라

좌장의 연자 소개가 끝나고 연자의 발언 차례가 되면 대부분의 연자는 먼저 좌장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 후, "이런 훌륭한 자리에 연자로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의례적인 인사말로 시작한다.

이럴 때 청중이 예상치 못한 말로 서두를 장식 하면 처음부터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그날 날씨가 유별나면 날씨 이야기로 풀어가거나,

강연장까지 오는 데 겪었던 에피소드로 풀어가거나,

그 도시에 얽힌 범상치 않은 역사를 들먹이거나.

처음 방문하는 도시일 경우, 그 도시에 대한 첫인상의 덕담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


그럼 실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성 씨 중에 한(韓) 씨는 본(本)이 하나로서 청주가 바로 그 본향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한 번 청주에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는데, 이번에 여러분 덕분에 그 꿈이 실현되어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2) 유머나 조크를 용하라

앞에 언급한 것은 여러 명의 연자가 등장하면서 연자 당 강의 시간이 20-30분에 불과할 때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고, 강의 시간이 40분 이상 넘어갈 경우에는 스토리 형 유머나 조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강의와 아무 관련 없는 생뚱맞은 조크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재미난 이야기를 자신의 강의에 절묘하게 갇다 붙이는 능력. 이런 것도 연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임을 명심하자.

그럼, 실전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이바구 두 자루'를 풀어 보일 터이니 즐감하고 잘 활용하시길.


탁발승과 부잣집 주인의 염불 대결


다음 이야기는 한 유명 목사님이 방송에 나와 "오늘은 강의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재미난 유머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하며 던진 조크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그만 절에 식량이 다 떨어져 한 스님이 마을에 내려가 시주(施主)를 구하러 갔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염불과 목탁소리에 아무리 못 사는 집이라 하더라도 하다못해 납작보리쌀이라도 내어와 스님의 바랑을 채웠다. 그러나 절반도 차지 않았다.     


이에 근심 어린 스님이 마을 어귀에 이르러 큰 부잣집 앞에 다다르자 한껏 기대에 부풀어 대청 안까지 잘 들리라고 보다 큰 소리로 염불을 외우며 열심히 목탁을 두드렸다.     

집 안에선 분명 인기척이 들리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자 화가 난 스님은 볼륨을 한껏 높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염불 운율에 맞춰 읊어댔다.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가나 봐라..."


그러자 그 염불에 효험이 있었는지 누군가 안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나더니 대문 가까이 와서는 스님의 염불 운율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읊어댔다.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주나 봐라..."



그 목사님은 이 이야기로 방청객을 한바탕 웃기고 난 후, 곧이어 다음 말로 한 번 더 웃겼다.     

"이제 제가 강의를 시작할 텐데 여러분이 속으로 '듣나 봐라 듣나 봐라' 하면서 딴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그러니 졸지 말고 끝까지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기막힌 연결이다.


목사, 기사, 몬로, 그리고 하느님

나는 대학 교수로 재직 중 참으로 많은 강의를 하고 다녔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대학에서 하는 학생 수업 시간도, 외부에 초청 연자로 가서 하는 강연도 하필이면 점심 먹고 난 바로 다음 시간 아니면 하루종일 강의 듣는다고 지쳐있는 마지막 시간 가까이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유용하게 써먹은 비장의 카드 하나.



"한 목사님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올라가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당연히 천당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목사님은 하느님 입에서  ‘지옥’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너무나 황당하여 “하느님, 제가 어떻게 지옥을??” 하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길,

“자네는 그동안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너무 잠 오게 만들었어.”


이러면 청중의 1/3쯤 웃는다.

웃음이 끝나면 나는 다음 이야기로 이어간다.          


"이번에는 총알택시 기사가 죽어서 올라갔습니다.

1970년 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부산-울산 사이에는 비포장도로였습니다.

두구동에서 밤 11시에 출발하는 합승택시를 타면 비포장도로를 달려 30분 만에 울산시내까지 대려다 주니 그야말로 총알 같은 택시였지요.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다 죽은 기사는 틀림없이 지옥 갈 것이라 생각하고 풀 죽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하느님, 저는 어디로 가게 되지요?”   

그러자 하느님 입에서 ‘천당!’이라는 말이 떨어졌지 않겠습니까?!!

이에 놀란 기사가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천당을??” 하며 송구스러워하자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그동안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어!”


이 말이 떨어지면 청중의 수준에 따라 2/3~3/4이 웃는다.

그러면 나는 “아직 안 웃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 걸 보니 어째, 좀 시시합니까?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지요.” 하고는 마지막 카드를 던진다.

]

"마지막으로, 마릴린 몬로가 죽어서 올라갔습니다.

저승 문을 여니 붉은 카펫이 죽 깔려있고 그 끝 높은 보좌 위에 하느님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녀는 얼굴에 매혹적인 미소를 듬뿍 머금고 그녀 특유의 몬로 워킹(Monro's walking)으로 카펫 위를 섹시하게 걸어갔습니다.          


그녀가 걸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뭔가 좀 헷갈리는 겁니다.

그동안 뭇 남자를 즐겁게 해 준 걸 생각하면 천당 갈 것 같기도 하고,

남의 가정을 파탄 낸 걸 생각하면 지옥 갈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느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에 그녀는 “야!~~ 이거 오늘 예후가 괜찮겠는데!”란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하느님 앞에 다가가 드레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예쁘게 서양식 인사를 하고 난 후 고개를 들어 “하느님,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느님 얼굴이 노기 띤 얼굴로 변하면서 버럭 고함을 질렀습니다.


“가긴 어딜 가? 내 옆에 앉아있어야지!”     


이 말이 떨어지면 온 강의실은 폭소로 넘쳐난다.
그러면 나는 말한다.    

      

“이제, 잠 좀 깨셨어요? 여러분은 제가 죽어서 천당 가기를 원합니까, 지옥 가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하는 얼굴로 다들 나를 주목한다.


“만약 오늘 제가 강의로 여러분을 잠 오게 만들면 앞에 나온 목사님처럼 저도 지옥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옥 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한 사람도 졸지 말고 제 강의에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리하여 나는 강의 시간표가 어떻게 짜이든 청중이 피곤할 때다 싶으면 이 버전(version)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끝까지 잘 이끌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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