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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Sep 11. 2023

강15 발음을 제대로

강의 기법 02

발음의 중요성

말이란 내 생각이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수단 중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그 일차적인 목표는 상대방이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듣도록 하는 데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발음을 정확히 해야 한다.   

 

한글은 표음문자인지라 어떤 장면, 상황, 소리 등을 묘사하는 데는 아주 뛰어난 문자지만 어떤 대상의 본질이나 특성을 표현하려면 술어가 길어질 수밖에 없어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차용해 와 우리말 단어로 쓰고 있는 것이 많다.


하지만, 단어의 글자 수를 줄인 한자어에는 발음기호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가 많아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만, 단어를 구성하는 각 음절의 고저, 강약, 장단을 달리함으로써 많은 경우 동음이의어를 구분해 낼 수 있다.

(예)
수상(殊常)(首相) 감사(監査)(感謝) 기도(氣道)(祈禱) 소식(消息)(小食) 감상(鑑賞)(感想)  

     

이 말은 곧, 이런 단어를 제대로 구분하여 발음하지 않으면 엉뚱한 뜻의 말로 들릴 수 있으니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떻게 잘못하고 있는가?


구속(拘束)이란 자유를 제한하거나 사람을 잡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구속(救贖)은 예수의 보혈로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하므로 두 단어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각 음절의 높낮이로 감별하는데 구속(拘束)의 발음은 폭포수 떨어지듯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고->저), 구속(救贖)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저->고). 엑센트 역시 높은음에 붙게 되므로 구속(拘束)은 앞에, 구속(救贖)은 뒤에 붙게 된다.

 

이 구속(救贖)이란 단어는 기독교 예배 중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말 중 하나이고, 이 말이 한번 나왔다 하면 그날 설교 중에는 여러 번 나오게 되어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목사님이 아무 개념 없이 구속(救贖)을 구속(拘束)이라 발음한다. 

죄로부터 자유케 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보고 자꾸만 사람을 얽어매고 옥죄인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 그런 설교 듣고 있으면 은혜가 되겠나 안 되겠나?

 

이런 문제는 문장으로 넘어가면 더 심해진다.

 

우리말은 영어에 비해 말을 할 때 음의 높낮이, 즉 억양(抑揚. intonation)의 변화가 굉장히 완만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1950-6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학교에서 한국 선생님으로부터 영어를 배우고 외국인과는 회화 한번 옳게 못 해본 사람들이라 외국인과 만나 대화를 하면 콩글리시(Konglish)를 한다는 놀림을 곧잘 받곤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서울 사람들이 영어 하는 걸 들으면 경상도 사람의 귀에는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나라 지방 사투리 중 서울 사투리가 억양의 굴곡이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서울말은 서로 대화를 할 때는 부드럽고 애교가 넘쳐 좋은데 우리말 표준어의 높낮이를 너무 넘나들다 보니 단어의 발음이나 문장의 억양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은 방송국에 '~캐스터'로 채용되려면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거쳐야 한단다.

하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규정이 없어 그런지 TV 방송 일기예보 시간에 나오는 여자 기상 캐스터들은 대부분 표준말 아닌 서울 사투리를 쓰면서 우리말을 왜곡했다.

 

예를 들어 "내일은 비가 온 후에 맑겠습니다."라는 말을 그들이 하는 발음대로 높낮이를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내일은 비가온후에 맑겠습니다-

                                              -저고저 저고중저저 저고중저고-

 

몸매도 늘씬하고 어여쁜 사람이 나와 서울말로 저렇게 애교가 똑똑 떨어지게 말하면 보는 남자들의 눈과 귀가 황홀해져 시청률이 올라갈 수는 있다.

 

그런데 말이다. 어디 한 번 물어보자.

내일(고저)이 맞나 내일(저고)이 맞나?

비가온후에(고고고중중)가 맞나? 비가온후에(저고저저증)가 맞나? 

맑겠습니다(고고고고저)가 맞나 맑겠습니다(저고저저고)가 맞나?

 

 뭣 하나 제대로 발음하는 게 없어요.

 

강의도 마찬가지다.

일기예보보다 몇십 배나 긴 시간 동안 말을 하면서 우리말 발음을 개념 없이 아무렇게나 한다면 연자 자격이 없다.

 

간헐적으로 하는 연설이나 강연이 아니라 평생을 직업인으로서 강단에 서는 사람이라면 백번 양보해서 사투리 억양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중요한 단어의 발음만큼은 제대로 익히고 연습해야 할 것 아닌가?

 

말버릇은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니,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사람이라면 먼저 말하는 법부터 제대로 배우고, 스스로 끊임없이 훈련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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