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환자는 검사용 가운으로 갈아입고 엑스레이 테이블에 올라가 아랫도리를 다 벗은 채 왼쪽 몸을 비스듬히 들고 누워있다. 의사가 와서 조영제 30cc가 든 커다란 주사기의 뭉텅한 팁(tip)을 환자의 페니스 끝에 있는 소변 구멍에 밀어 넣은 후 왼손으로 귀두를 단단히 잡고는 서서히 조영제를 주입하다가 다 들어갈 무렵 "슛!" 하고 소리친다.
조정실 안에서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던 방사선사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슛" 이란 말을 복창함과 동시에 엑스레이 발사 버튼을 누른다. 그러고는 재빨리 필름 카세트를 들고나가 엑스레이 테이블 안에 들어있는 카세트를 새것으로 교환한 후 조정실로 돌아가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자, 이제 바로 누워서 바닥에 발을 디디고 양쪽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 테이블이 넘어갑니다."
엑스레이 기계가 ’윙‘ 소리를 내며 90도를 돌아 장승처럼 우뚝 서게 되고 환자는 엑스레이 테이블 발판을 딛고 나체 조각상처럼 서 있다. 언제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지 모르는 촬영실에서 아랫도리를 다 드러내고 서 있는 환자는 불안감과 수치심이 점점 증가한다.
"자,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몸 왼쪽을 45도 정도 앞으로 내밀고, 움직이지 말고~, 소변보세요!"
방사선사의 지시에 따라 힘껏 소변을 보면, 페니스 끝에서 발사된 오줌 줄기가 거침없이 촬영실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환자의 수치심을 최고조에 끌어올리고, 오줌 줄기가 한창일 때 의사는 "슛"을 외치고 방사선사는 발사 버튼을 누른다.
방사선사는 조정실에서 재빨리 나와 필름 카세트를 빼서 암실로 들어가 앞서 찍은 필름과 함께 현상한다. 약 10분 뒤, 현상된 필름이 뷰박스에 걸리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의사는 인상을 찌푸린다.
"에이~~ 썅!, 또 안 찼네. 한 번 더 합시다."
환자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방사선사는 끈적끈적한 조영제로 칠갑을 한 바닥 청소할 생각에 입이 툭 튀어나오고, 의사는 속에서 욕이 나온다.
'이놈의 좃또그람, 참말로 뭐 같네. 내, 이 짓 하기 싫어서라도 빨리 2년차로 올라가고 말아야지. 에이~.'
나영이 오죽 열받았으면 유레스로그라피(Urethrography) 혹은 유레스로그람(Urethrogram)이라 부르는 요도촬영에다 좃또그람(Zottogram)이란 별명을 만들어 불렀을까.
위의 두 검사 중 먼저 시행하는 검사를 ‘역행성 요도조영술(Retrograde urethrography)’이라 부르고 소변을 보면서 하는 검사를 ‘배뇨중 방광요도조영술(Voiding cystourethrography)'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주로 사고나 구타로 사타구니를 다쳐 페니스 안에 들어있는 요도가 찢어지거나, 전립선비대 혹은 전립선암으로 소변을 잘 못 볼 때 감별진단 및 후방 요도 상태를 보기 위해 하던 검사다(요즈음은 요도 손상 외에는 거의 초음파, CT, MRI로 대치되었다).
이들 검사 중,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 애먹이고 좃또그람이라는 욕까지 들어먹어야 하는 비운의 검사는 역행성 요도조영술이다.
왜 그럴까?
방광 입구와 요도에는 두 개의 괄약근이 있다.
방광에 소변이 차면 방광 입구를 졸라매고 있던 내괄약근은 소변을 내보내기 위해 자동으로 풀린다.
하지만 문명인이라면 아무 데서나 오줌을 눌 수는 없는 법. 화장실에 가서 변기와 대면할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이때 소변이 나오지 않도록 단단히 졸라매는 안전장치가 바로 후방 요도를 둘러싸는 외괄약근이다.
인체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자연의 순리대로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역행하면 인체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를 자동으로 작동시킨다.
소변은 신장에서 만들어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로 내려와 방광이라는 보에 찬 소변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검사를 한답시고 요도 끝에서 조영제를 역방향으로 쏘아대면 이 물줄기가 방광으로 못 들어오도록 내괄약근이 자동으로 수축하여 후방 요도에 조영제가 차자마자 쪽 짜버리는 바람에 보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부위를 못 보게 방해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저녁 시켜 먹고 의국에 남아 다음날 과제 준비하던 나영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이 방법 외에는 없나?'
'어떡하면 후방 요도에 조영제가 찬 순간을 내괄약근이 짜내기 전에 포착해 낼 수 있을까?'
나영은 고심 끝에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래, 한 발 쏘고 한 발 갈아 넣는 단발형 소총 대신, 방아쇠만 당기고 있으면 연속적으로 총알이 나가는 자동 소총을 쓰면 될 것 아닌가?'
다음 환자부터 그는 사진을 한 장 찍고 한 장 갈아 넣는 일반 촬영실 대신 연속 촬영이 가능한 투시 촬영실로 데려가 조영제가 들어가는 과정을 투시기로 보면서 연속 촬영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투시기를 보면서 조영제가 요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통과하는 순간까지 "다 다 다 다" 하고 네 장을 연속적으로 찍으니 마치 활동사진 스팟 필름(spot film)을 보는 듯했고, 그중 어느 한 장에는 순간적으로 조영제가 찬 후방 요도가 멋지게 잡혔다.
그리고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촬영실 바닥 안 버리는 방법까지 고안해 냈다.
역행성 요도조영술을 끝내고 시행하는 배뇨중 방광요도조영술 시에는 촬영실 바닥에 대고 오줌을 갈기는 그런 야만적인 방법 대신, 환자로 하여금 병실용 플라스틱 소변 통을 갖다 대고 누게 하여 바닥에 조영제 한 방울 안 떨어뜨리고 깔끔하게 검사를 끝낸 것이다.
나영이 이 방법을 개발한 것은 전공의 1년차 때인 1980년 후반기였다.
북미방사선의학회 학술지 중 통상 ’North America'란 약자로 불리던 계간 학술지가 있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 한국은 이제 막 개발도상국에 들어선 가난한 나라인지라 의사들은 외국 학술지 원판을 사보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간행 6개월에서 1년 후에 한국 업자들이 찍어낸 불법 복제판으로 공부했다.
어느 날, 나영이 의학서적 업자로부터 산 1979년 8월 판 최신 ‘‘North America'를 보다가 눈이 뒤집힐 뻔했다. 거기에는 ‘Dynamic retrograde urethrography, 다이내믹 역행성 요도조영술’이란 제목의 최신 논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영이 쓴 방법과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그동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요도 수술 및 조영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콜라핀토 & 맥칼룸 그룹, Colapinto V. & McCallum RW’.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그동안 한국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 의사들도 이 부분에서는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Korea란 나라에서는 그로부터 일 년 후인 1980년 후반, 그들과는 별개로 대부대병원 방사선과 레지던트 1년차 그룹이 성공했다는 말이 된다.
"아이고, 아까비! 내가 한 5년만 더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듯, 나영은 전공의 1년차 때부터 그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