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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10. 2022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영원한 우정

난 눈물이 메마른 줄 알았어요  

여태 사랑을 다시 못할 줄 알았어요

오늘 난 자욱한 연기 사이로 

사랑의 짝을 보았어요     

   

난 지금껏 어둔 밤을 헤맸어요

여태 지워야 할 기억이 너무 많았어요

오늘 난 식어버린 마음 구석에 

사랑의 불씨를 당겼어요     


이제 다시 이제 다시 사랑할 수 있어요
이제 진정 이제 진정 웃을 수 있어요     

방금 하신 얘기 그 눈길이 아쉬워 

그대 곁에서 훨훨 떠날 수는 없어요     


누구에게나, 그 노래만 나오면 어떤 사람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곡이 한둘은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이 떠 오르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는 노래를 시키면 항상 그 노래만 불러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노래보다 그 노래를 잘 불러 그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깊이 뇌리에 남아 있는 건 그 노래와 관련된 잊지 못할 사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해바라기의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란 노래만 나오면 그날 흘린 나와 친구의 눈물이 절로 떠오른다.     


1986년 4월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왔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혼을 했다 한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파국을 맞은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서울에서 휴가차 내려온 친척 한 사람을 데리고 부산 구경 좀 시켜달라'는 부탁으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첫눈에 내 친구에게 반해 서울 올라가서도 그를 잊지 못하고 연락을 해 왔고 몸이 아파 반 혼수상태에 빠져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찾을 정도가 되었다.     


이름만 대면 대충 알만한 부잣집 딸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 회사원 친구. 

누가 보아도 짝이 잘 맞지 않는 그림에 다들 그렇게 말렸건만 그 둘은 결혼을 강행했다. 

결국, 몇 년 가지 못해 파국을 맞게 되었고 그는 제 성질답게 모든것 다 집어던지고 알몸으로 그 집을 나왔다.          

옷가지 든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난 그. 

눈물 없인 못 들을 기막힌 사연이 소설 한 권은 족히 될만한 분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제, 친구는 집도 절도 없다. 당장 월세방이라도 하나 구해야 하는데…….     


난 겨우 전문의 3년 차 대학 전임강사. 

그동안 생존비 수준의 인턴 레지던트 봉급으로 결혼해서 아이 낳고 가족부양하고 전문의 시험 준비하고 석사학위 따느라 빚낸 돈 갚아가기 급급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에 우리 병원 바로 밑에 있는 고려병원에 내려가 초음파 알바를 해서 아내 몰래 꼬불쳐 둔 비자금이 좀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일단 그 돈을 다 털어 방 구하는 데 보태라며 주어 보냈다.

그 후로 그는 생활비가 떨어질 때마다 내려왔고, 

그때마다 우리는 병원 아래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조그만 생맥줏집에서 한잔했다. 


나는 그가 화장실을 가면 그가 벗어놓은 상의 안주머니에 한 달 혹은 두 달 치 생활비 정도에 해당하는 돈 봉투를 넣어두었다. 워낙 성격이 깔끔하고 자존심이 강한 친구라 혹여 그 자존심 상할까 봐 그의 손에 돈 봉투를 쥐여줄 순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돈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았다. 

나는 돈 봉투 넣어두었단 말 안 하고, 그는 고맙단 말 안 했다.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어떤 마음인지 아는데 굳이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렇게 일 년 반을 둘이 함께 버텨냈다. 

한 명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면서, 또 한 명은 용돈이 모자라 빌빌대면서.

     

그러던 어느 겨울, 

그가 오면 항상 들렀던 그 생맥줏집에서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그의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석아! 안자, 내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만난 것 같데이.”      

    

그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아홉 살 연하 처녀를 만나 사랑이 무언지 이제야 알 것 같단다. 

그리고 이제 그런 사랑 해 보고 싶단다. 

동정과 사랑과 야망의 회오리 속에서 중심을 잃고 덜렁 결혼했던 친구. 

그 쓰디쓴 열매를 씹으며 결혼 시작부터 이 순간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인자 마~ 모두 다 잊고 마음 편히 살아라.”          


그날 이후로 나는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둘이 함께 눈물 흘리던 그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후, 그는 부단한 노력 끝에 재기에 성공했고 그녀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2022년 5월 31일       

“따르릉”     

받아 보니 귀에 익은 목소리다.     

야, 밥 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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