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3일 도로 지분 포함 토지 201평에 대한 계약금 10%를 지불하였다. 그리고 10일 만에 K 사장이 요구한 대로 중도금을 60% 지불하였다. 일반적으로 계약금 10%, 중도금 40%, 잔금 50%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K 사장이 원하는 대로 총 70%를 이미 지불하고 잔금 30%를 남긴 것이다. 우리는 이왕 줄 건데, 통장에 들어있는 돈 조금 미리 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토지 이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이 되었지만, 도로 부분의 지도에 '도'자가 찍히는 일이 어찌 그리 오래 걸리는지. 혹시라도 집을 지을 땅의 조건을 갖추지 못하여 건축 허가가 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내비치면 남편은 건축 허가는 틀림없이 날 테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특약사항이라고 기재해 놓은 부분이 있다.
1. 토목공사 완료 후 소유권이전등기를 진행한다.
2. 상. 하수도를 매도인이 토지까지 인입해 주기로 한다.
3. 매도인이 안전 난간을 설치해 준다.
4. 공유 부분(도로 지분)은 도로 준공 후 이전하기로 한다.
5. 거래가액은...
그렇다. 우리는 토목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토지를 산 것이다. 반 정도는 보강토 블럭으로 옹벽을 쌓았고, 땅도 평탄화해 두었으나, 나머지는 야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풀은 1m를 넘고, 북동쪽에는 아주 키가 큰 소나무가 있어서 마무리 평탄화 작업 때 제거해 준다고 구두로 약속을 했다. 문서로 기록한 특약 사항도 그대로 해 줄지 믿음이 안 가는데, 구두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몇 달이 지나도 토목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아지트를 정해놓고, 매주 토요일 산행을 끝내고 들를 때마다 내 키만큼 자라는 풀밭과 키 큰 소나무가 우뚝 서 있는 야산 그대로의 풍경에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되돌아가곤 했다.
때마침 코로나 때문에 인력 충원과 수출입이 원활히 돌아가지 못하면서 인건비와 건축 자재비가 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건축 현장이 거의 스톱되다시피 어려워지고 있다고 연일 뉴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K 사장이 잔금을 빨리 달라고 했다. 토목공사는 곧 해줄 테니까 잔금을 지불해 주면 등기를 넘기겠다고 했다. 자금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K 사장에게 건축을 맡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만 40년을 편안하게 살았으니 주택을 지으려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주택을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로, '한 번 해 보지 뭐.'에서 바로 토지 계약으로 감행해 버린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덤빈 셈이다. 나름 K사장의 1년 전 분양 공고를 분석하고, 이만하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일을 추진했다. 돈만 지불하면 아파트 분양처럼 우리가 원하는 토지에 건축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잔금을 치를 준비를 하고 약속 시간에 맞추어 나갔다. K 사장을 그만큼 믿은 것이다.
현장은 그대로였다. 토목도 진행이 안 되어있었으며, 커다란 소나무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K사장이 들고 나온 또 다른(계약때와는 다른) 분양 계획도를 보았더니, 우리 집 왼쪽에 만들어주기로 한 도로가 없어진 것이다. 따져 물었더니 '만들어 주기로 한 6m 도로가 나는 필요가 없으니까 없애려고 한다. 그 도로가 없어도 이 토지에 건축 허가를 낼 정도의 도로 접면이 2.5m 정도 나온다. 도로 지분은 마을 전체 도로를 n분의 1로 소유하면 되니까 아무 문제가 안된다.' 등의 이야기를 쏟아붓는다.
우리 옆에 있는 택지는 우리 집보다 4m 이상 높은 옹벽을 쌓고 있는 중이었다. 중간에 만들기로 한 6m 간격의 도로를 없애고 옆집 옹벽을 우리 땅에 바짝 붙이자는 것이었다. 그 도로마저 다른 사람에게 토지지분으로 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납득을 하지 않으니까 도로 대신 진입로를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한다. 남편은 양보하지 않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남편이 한 마디 한다.
"계약서 쓸 때 분양 계획도에 도장 찍었잖아요!"
그 말에 K사장은 더 이상 설득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약하시려면 하세요. 우리는 그 도로가 필요 없어요!"
쉽게 해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계약금만 간 상태면 계약금을 포기하면되지만, 중도금까지 지불한 이상, 매수자나 매도자 어느 한쪽에서 파기할 수 없는 강제 진행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도 K 사장은 합의하면 된다고 해약해 주겠다고 한다. 이제껏 기다려왔는데, 이번에 일이 그르치면 언제 다시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 있을지 안갯속이 될 일이 뻔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해약하기로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관련 서류 양식을 꺼내어 작성을 하고 해약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각서를 쓰라고 한다. 어떤 불이익을... 운운하는 내용을 보자 멈칫해진다. 게다가 처음 말과는 달리 땅이 다시 팔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자기네 사업체에 돈이 많으니까 해약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환불해 주겠다던 사람이 말을 바꾼 것이다. 사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서, 계약을 하면 계약금만, 중도금이 나오면 그때 중도금을 되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기가 찼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대로 해 주세요. 잔금은 특약 사항이 모두 완료되면 그때 지불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더 이상 K사장에게 집 건축까지 맡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 뒤 잔금을 빨리 받으려는 계산인지, 그때까지 미루던 보강토 블럭 공사와 토지 평탄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소나무 제거는 좀 더 시간이 걸렸다.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분양 계획도는 평면이라서 도로의 높이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도로를 만드는데 보니까 15도가량의 경사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집 동쪽이 도로 밑에 위치한 꼴이다. 구조상 도로가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단다. 이것은 우리의 불찰이었다. 우리 땅 옆 도로를 지나서 가는 다른 택지가 높은 곳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었다. 어찌 알았겠는가. 토지를 사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처음인데.
어쨌든 토목공사가 완료되고 안전펜스도 치고, 도로를 완성하고, 소나무도 제거한 것을 확인한 다음 잔금을 치뤘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유권등기가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