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
<학원 강사 김 모 씨는 2018년 10월 23일 오전 4시 28분 연수구의 한 PC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손님에게 발견되었다. 그는 동일 오전 6시 12분에 숨졌다. 42세. >
π(3.14...)는 원주율이다. 원의 크기와 관계없이 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길이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도형으로 원을 생각하고, 원에 관한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다. 기원전의 아르키메데스부터 원주율을 구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소수점 5조 자리까지 계산이 되었다. 3월 14일은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라고 알고 있지만 수학자에게는 원주율을 기념하는 '파이(π) 데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수학자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이처럼 수학에서 π는 중요한 수이다. 뿐만 아니라 π이외에도 중요한 숫자가 있다. 0은 없음을 나타내는 수이고, 1은 자연수가 시작이 되는 수이고, i는 허수 단위로 제곱해서 -1이 되는 수이다. 그리고, 자연상수 e는 자연현상에서 자주 나타나는 상수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다. 수학에서 중요한 숫자 0과 1은 물론 수학 분야인 대수학(i), 해석학(e), 기하학(π)에서 각각 기본으로 여기는 상수가 하나의 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의 존재의 본질을 아름다운 소네트처럼 보여준다.
(오일러 등식)
k의 수강 기호는 파이(π)이다. 그에게 있어서 말은 마음을 전달해주는 주요 수단이 아니라 마지못해 내뱉는 보조수단이다. 표현하기 싫든, 표현력이 약하든, 그의 말을 길게 들은 적은 없다. 그저 상투적인 표현에 어정쩡한 몸짓만이 생각난다. 그리고 한자리에 오래 있지를 못하고 좀이 쑤셔했다.
그는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다. 확실한 것은 세상사에 시들해진 남자라는 것과 술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다. 듣기 싫어하는 말은 술을 줄이라는 말이다. 그는 매번 '오늘 한번 제대로 취해보자'라는 듯이 마셔댄다. 술을 마시다 죽는 게 꿈인 거 같다. 그도 안다. 술 마시면 행복하지만 그건 불안한 행복이란 걸. 술이 깨면 치열했던 전투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처럼 고독감과 우울감과 패배감과 무기력이 들러붙는다. 어제의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한다.
그가 지나친 음주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 때 셀렘과 열정의 대상이었던 그녀가 경멸의 대상으로 바뀌어서 일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킬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경멸해서일까? 아니면, 미래의 불안감을 잊기 위함일까? 아니면, 이 세상 둘만의 경험인 섹스에도 관심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인생의 실낱같은 반전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서 일까? 아니면, 과거의 위대함을 돌이켜야지 현재의 구렁텅이에서 숨통이라도 튀일수 있어서일까?
돌아보면 누구나 한 번은 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도 그랬을 거다. 외모는 보통이지만 나름 명문대학에 다녔고, 온갖 잡기에 능했으니 주변에 친구들이 있었을게다. 수학강사로서의 실력도 훌륭하다. 여기까지 말하면 부러울 만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를 거들떠보는 사람이 드물다. 그 이유는 술 때문이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면서 위대했던 순간으로 그를 데려다준다. 거기에는 잔소리하는 와이프도 없고, 애잔한 아이들도 없고, 채찍질하며 불타는 링을 통과하라고 부추기는 직장상사도 없다. 현재의 절망이 깊어질수록 술이 이끄는 과거 영광의 길로 쉽게 빠져든다. 알코올이 모세혈관의 구석구석을 지날 때면 그를 짓이기던 시간의 짐은 무뎌지고, 거칠기만 했던 외부세계는 불안한 내부 세계에 화해를 청하며 균형을 타진한다. 물론 술이 취해 있을 때나 가능한 평화이다. 그 평화를 유지하려면 계속 술에 절어 있어야 한다. 계속 절어 있지 않으면 비참한 자신을 또다시 발견하게 된다. 고독 속에 홀로 깨어 자신에게 물어본다. 지금 무엇을 해야 되냐고, 그러면 남아있던 취기는 술에 다시 취하라고 말한다. 세상에 짓눌리기 싫으면 쉬지 말고 취하라고 한다. 다시 취한 세계는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하지 않아도 되고, 불쾌한 삶을 응시하지 않아도 되고, 남루하고 궁핍한 삶을 잊을 수 있다. 여기에서 깨어나면 우울감과 패배감과 무기력이 다시 들러붙는다. 술 마시다 죽는 게 꿈인 그는, 10월의 허리춤에 결국,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