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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30. 2023

'생긴 거 가지고 너무들 하시네.'

<3화>


잠시 후 그녀의 외투 속에 안긴 체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 대목에서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째서 그렇게 경멸한 인간의 품에 안길 수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내 입장을 생각해 봐라. 온몸이 들들 떨리고, 벗어나고 싶지만 달리 갈 곳이 없는 상황. 덜덜 진동하는 기계 덩어리의 소음과 떨림에 귀를 뒤로 착 붙인 체 외투 안에 옹크리고 있었다. 잠시나마 궁금함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거 있지 않나, 차에 타면 뒷좌석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 여하튼 그녀와 함께 새로운 곳에 왔다. 태어나서 처음 낯선 곳에 온 셈이다. 변화는 미지의 희망을 준다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여정을 마냥 반길만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 변화는 분명 언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법한 건강한 기대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유일하게 알던 세계와 작별을 하고 인간세상에서 나의 자리를 찾아야 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곳에도 인간들이 있었다. 달갑지 않던 멍멍이족이나 배다른 형제라도 기대했었다. 약해질 때로 약해진 거다. 뭐, 세상일이 생각대로 되더냐.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인간은 수염이 난 늙스구레한 남자 인간이었다. 신기한 듯 쳐다보며 다정하듯 야옹거린다. 이것들은 꺼떡 하면 야옹거린다. 이런 부조화는 날이 벌건 대낮에 라라랜드의 'a lovely night'를 듣거나 독실한 크리스천이 과학선생인 거처럼 생뚱맞다. 그는 첫 만남에서 "이이.. 것도 인연인데, 잘.. 잘 지내보자!"라고 했다. 첫 만남이 감격스러웠던지 말을 더듬었다. 수염 난 늙스구레 옆에는 더 늙스구레한 여자가 삐뚜름한 자세에 입꼬리도 삐뚜름했다. 뭔가 못마땅한 거 같다. 어디나 이런 인간은 있기 마련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을 위해, 그들의 관계를 밝히고, 호칭을 통일하겠다. 나를 데리고 온 그녀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할머니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남동생도 있다. 잊을만하면 집구석에 들어온다. 들어오면 온 가족이 그놈 눈치를 살핀다. 합쳐서 정규가족이 세 명에, 비정규가족이 한 명인 셈이다. 호칭은 할머니 집사, 아들 집사, 누나 집사, 형아 집사라고 하겠다. 첫 대면의 순간 숭배자 세 명은 나를 둘러쌌다. 여섯 개의 손이 나를 어루만지고 손에서 손으로 나를 옮겼다. 나는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소리 내어 '야옹!(나를 제발 가만 내버려 두어!)' 거렸다. 야옹이라는 말에 그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반응한다고 좋아라 하더라. 내가 소리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인간의 손길이 부담 가고 다소 멋쩍기는 했으나 이것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내 삶의 경계선 같은 날이다. 


그들이 며칠 동안 고민한 게 있다. 내 이름이다. 그들은 제각기 불러댔다. 할머니 집사는 '야!'나 '고양아!', '야옹아!'라고 부르고, 아들 집사는 '못난아!', '야옹아!'라고, 누나 집사는 '야옹아!'라고 불렀다. 호칭을 통일하자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선천적 결정장애를 겪는 인간들이다. 어느 날 저녁에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두둥, 이제 내 이름을 지으려나 보다'라고 기대를 했다. '인절미, 호박, 못난이, 식빵, 야옹이, 치즈, 모찌, 키위, 노랑이, 가을이, 단풍'등이 거론되었다. 그날 생각만 해도 속에서 천불이 일어난다. 이름을 들으면 짐작하겠지만 거의 색깔, 계절과 관련이 있다. 남들은 '샐리'니 '루비'니 '솜이'니 '따솜이'니 잘 만 짓던데, 이 인간들은 너무 일차원적이다. 이 인간들은 '호박'이라는 것도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의 호박을 연상했을 거다. 너희들이 호박이라고 부를 때 나는 노리개나 비녀로 쓰이는 보석을 생각하고 잠시나마 기분이 좋더라. 나를 귀하게 여긴다고. 그런 즉자적인 이름 말고, 이도 저도 싫으면 남들처럼 하늘을 나는 '나비'라고 부르면 안 되겠니.


너희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아무리 하찮은 동물이라도 허투루 생기는 게 아니다. 내 탄생의 근원은 나중에 다시 말할 거다. 이야기가 조금 본론에서 벗어날 것 같지만 잠시만 내 얘기에 귀 기울여봐라. 내 조상은 북아프리카 이집트에서 살기 시작해서 너희 인간과 7000년 동안 동거했다. 한마디로 애증의 세월이었다. 우리 유전자의 90퍼센트는 호랑이와 같아. 내 자랑을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렇게 함부로 대접받을 동물이 아니란 말이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너희에게 의지한 듯 보이지만 언젠가는 독립적으로 살게 될 거다. 너희들은 우리가 소리나 후각에 민감하다고 대충 알고 있지? 맞긴 한데, 항상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우리는 공기의 진동을 느끼고 공기 속 입자 속에서 암컷의 호르몬을 1.5km 밖에서도 느낄 수 있는 신비스러운 생명체다. 말하다 보니 지금 자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지금은 소리와 진동으로 각 방의 움직임을 상상하고, 아파트 내의 온갖 화학물질에 정신이 혼미하고, 장난감 쥐의 흔적을 찾아 집안 곳곳을 헤매고, 위아래층의 예민한 움직임을 골똘히 분석하기에 바쁘지만 한때는 대자연과 접촉하면서 자연의 정기를 얻고 도약을 위해 침묵할 줄 아는 생명체였다. 그거 알아? 자연에서 하늘과 새를 동경한 놈이 장난감 쥐에 낚시질당하는 기분을. 도약을 위해 침묵하고, 용감하게 도약하면서 어지러움도 느끼지 않는 놈이 식탁 위나 책상 위로 몸을 날리는 기분말이야. 고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하는데 부끄럽긴 하다. 방금 말한 고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동이 내가 생각하는 품위이다.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실존적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품위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야기를 다시 본론으로 돌려서, 그래서 이름은 어떻게 되었냐고? 성급하기는, 내가 이렇게 뜸을 들이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니? 결국은 그 흔한 하늘을 나는 '나비'도 아닌 '살구'가 되었어. 왜 살구가 되었는지 설명 안 할 거다. 누나 집사가 우기는데 장사 없더라고. 이 인간들은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도 모르는 거 같더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는 '꽃'이라는 시 말이다. 내게 걸맞은 이름을 짓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근데 이름이 생기고 나서 좋은 게 있긴 하더라. '글쎄, 야옹이가', '고양이가 말이야'라는 말의 시작이 '글쎄, 살구가', '살구가 말이야'라고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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