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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30. 2023

 "격한 감정 믿어줄게!"

<2화>


눈치가 빠른 인간들은 짐작했을 거라고 본다. 앞에서도, 삶을 소용돌이치는 강물 속 나뭇가지에 비유했다. 맞다, 결국에는 형아와 헤어지고 말았다. 세상이 내 머리 위로 고스란히 무너져 내렸다. 그때의 숨 막히는 고통을 잠시나마 잊으려, 누를 수 없는 슬픔을 진정시키려,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형아와 헤어진 날은 태어나고 서너 달로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불가항력이었다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한다. 비빌 언덕이나 딛고 도망칠 단 한 치의 땅도 없는 상황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고양이'라는 존재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겠다고, 다시 말해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인간은 그날 우리를 이동배낭에 가두고 어딘가로 데려가면서 연신 힐끔거렸다. 어미와 생이별을 시켰으니 자신도 미안했을 거다. 이것도 나중에야 알았지만 순진한 착각이었음을 밝혀둔다. 그는 우리를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생각해 보면, 형아한테 미안한 게 있긴 하다. 뒤흔들리는 비좁은 배낭 안에서 그만 졸고 말았다. 낯선 배낭안과 새로운 냄새에 당황했지만 형아와 몸을 부대끼며 안정감도 찾았고, 흔들리는 배낭이 요람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그 순간 잠이 오냐고 물어볼 수 있다. 당신들은 그런 적 없나? 극도의 긴장감 후에 노곤노곤 잠이 밀려오는 상황을.


잠에 취해 도착한 병원은 강아지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자기네 안방이듯 정신없이 까불고 난리였다. 꼬리를 치고 인간의 뒤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는 배알도 없는 놈들이다. 그곳에서 형아와 나는 냥이족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다. 다양한 키와 체형의 인간들은, 내 몸을 들어 저울 위에 고깃덩어리처럼 올려놓지를 않나, 입안과 귓속을 까뒤집지를 않나, 가슴과 배에 동그랗고 차가운 것을 휘뚜루마뚜루 더듬거리지를 않나, 그러고는 날카로운 바늘을 찔러댔다. 그럼에도 울음을 꾹 참았다. 비명을 지른다고 상황이 바뀔 거 같지 않았다. 그렇지만 형아는 기회가 올 때마다 등과 꼬리를 있는 힘껏 최대한 부풀리고, 야옹거리며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병원을 나오고 나서 그는 흡족해하며 여기저기 카톡을 해댔다. 정신없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가 하면 형아와 나를 사진 찍고 내처 영상에도 담았다. 그리곤 낯선 여자인간에게 나만을 넘겼다. 그들 사이에는 아마 남모르는 뒷거래가 있을 거다. 진작에 형아와 이별할 거라는 언질도 애당초 없었다. 믿지 못할 인간들이다. 형아와 잘 헤어지고 싶었던 바람은, 미끄러운 손에서 놓쳐버린 풍선처럼 허망하게 날아갔다.


또다시 차에 실려 어딘가로 갔다. 완전 물건 취급을 당했다고 보면 맞다. 누구도 나를 소유할 수는 없다고 인간들을 설득하고 싶었다. 나를 동경한다면 그건 그들의 자유지만 말이다. 차 안에서 그녀의 시선은 계속 내 움직임을 쫓으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의 심장은 파닥거리는 작은 새를 삼킨 듯 뛰었다. 결국은 너희들 생각대로 되었는데 그 당혹감은 뭘까를 애써 생각해 봤다. 최대한 그녀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럴 여유가 있었냐고? 잘 생각해 봐라. 그 순간 내 생각의 대상을 바꾸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처한 현실만을 생각했다면 내 의식은 마치 수챗구멍 속으로 소용돌이치면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잘못된 판단을 거스를 수 없었을 거다. 애써 다른 감정을 찾아내 이전의 감정을 사라지도록 만드는 거, 사라지지 않더라도 빵빵한 풍선이 서서히 쪼그라들듯 감당할 수 없는 생각을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내는 거, 이게 냉정을 찾는 나의 방식이다. 그러니까 의심 말고 들어라. 당신들이 어릴 적 한때, 제 몸을 어미에게 자연스레 맡기듯이 말이다. 내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실화가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라면 놀랍고도 드라마틱한 엔딩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내 짐작에, 사실이 아닌 것이 있다면 사건들의 상세한 시기일 거다. 그 외엔 모두 실화이다. 그러므로 밋밋한 진짜 엔딩이 존재할 뿐이다.


여하튼 그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눈빛은, 앞으로 태어날지도 모르는 그녀의 애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격렬하게 아드레날린이 분비하여 심장의 두근거림을 감당할 수 없는 거라 생각되더라고. 아니면 떨고 있는 핏덩이를 보고 연민의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킨 감정이었다. 요즘은 도무지 그런 격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그녀의 격함을 보고 '어쩔 줄 모를 거면 왜 데려가는 거야, 그럴 거면 형아와 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다줘!'라고 '야옹'거렸다. 나의 반응에, 그녀는 격하게 '야옹아! 야옹아!'라고만 반복적으로 대꾸하더라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 간절한 탄원을 그녀가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알다시피 항상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듯이 그녀는 임시방편으로 나를 '야옹이'라고 불렀던 거다. 어쨌든 처음으로 같잖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 '야옹이'라니. 내 입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성의 없는 족속이다. 이게 뭐 받아쓰기니? 그때의 '야옹!'이라는 외침은, 나를 도대체 어쩌려는 거냐는 물음이고, 형아와 헤어지게 했어야만 했냐는 원망이고,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었다. 다시 갑자기 감정이 격해지려고 하네.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는 거다. 아, 생각해 보니 그녀만이 그렇게 부른 건 아니다. 동물병원에서도 죄다 '야옹이'라고 불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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