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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Sep 30. 2023

 적절한 거리

<4화> 


그래, 내 이름이 '살구'인 거 받아들일게. 뭐, 어쩌겠어, 너희들이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지. 근데 말이다. 너희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실망한 건 어쩔 수 없더라. "얘가 형아야?"라고 아들집사가 고개를 삼십 도 정도 갸우뚱거리며 말하자 누나 집사는 아니라고 했고, 실망한 듯한 아들집사는 "사진에서는 형아가 잘 생겼던데."라고 말하더라. 여기까지는 들을만했어. 근데 그녀가 뭐라고 대꾸했는지 알아? "글쎄, 형아는 왠지 모르지만 꼬리가 잘려서 반밖에 없어"라고. 아니, 그 말은, 얼굴은 형아가 괜찮은데 꼬리가 비정상이라 나를 선택했다는 거잖아. 내 얼굴의 값어치가 꼬리보다 못하다는 거지? 남을 두고 그렇게 말할 처지들이 아닌 거 같던데.. 인간들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에 마음이 끌리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색이 바래도, 갈래갈래 찢어진 누더기 같은 삶 일지라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근데 말이야, 형아가 어떤 사연이 있어 꼬리가 그 모양이 되었는지 너희들은 모를 거다. 나 대신 그렇게 된 거다. 그날도, 형아와 단 둘이 있었다. 어디선가 킁킁거리는 커다란 놈이 근처에 있었지. 처음에는 숨을 죽이고 고민했다. '야옹'이라고 소리를 지를까 말까 하고. 소리를 질러서 어미를 부르는 게 나은건지 아니면 숨을 참고 있으면서 놈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게 나은지를. 그러다가 형은 못 참겠다 싶었는지 입구에서 용감하게 하악질을 했어. 거기까지 했어야 하는데 형은 분을 참지 못해 내처 집밖으로 나갔고, 안타깝게도 꼬리를 물리게 된 거다. 내가 멍멍이족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 형아의 꼬리유실사건에 결부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형아 얘기하니까 또 슬퍼지려고 하네. '형아 보고 싶다, 살아있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하여간 너희 인간들은 생긴 거 가지고 너무 따지더라. 이런 날도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햇살이 마지막 힘을 잃어가는 오후께였을 거야. 잠결에 나를 마구 깎아내리는 소리를 들었지 뭐야.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을 수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반가운 목소리에 잠을 억지로 물리치려고 애썼어. 꿈속에서 따사한 햇빛을 쬐며 오솔길을 거닐고 있었거든. 일어나 등을 둥근 산처럼 말고, '니아음' 하품을 쩍 하고는 앞발을 길게 앞으로 늘어뜨렸어. 발톱은 덜 마른 매니큐어가 서로 붙지 않게 손가락을 최대한 쭉 펴는 모양이었지. 그러다 "그래도 잘 때는 이쁘잖아."라는 말에 앞으로 죽 미끄러질 뻔했다. 마치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가 유리그릇 가에서 가운데로 미끄러지듯 말이야. 그게 할 소리니, 그럼 나보고 잠만 자라는 거니? 내 앞에서는 그런 말을 안 하더니, 없는 틈을 타서 속내를 드러내더라. 그때의 충격은,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투명한 유리문에 부딪힌 거 같기도 하고, 쇠파리가 아무 생각 없이 휘두르는 쇠꼬리에 탁 맞는 기분이랄까, 심하게 말하면 앵앵거리는 제초기 날에 풀의 허리가 날아간 기분 같았다. 내가 너무 열을 올렸나? 그냥, 그때의 충격이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거 같았다는 거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마뜩잖은 표정을 하고 있는 너희들에게 한들한들 다가가서 꼬리를 한껏 세우고 꼬리 끝을 빙돌리며 반갑다고 할 뻔했다. 


숨 한번 깊이 들이쉬고 계속 말할게. 너희는 내가 길가에서 흔히 보는 고양이라 실망한 거지? 그렇지? 게다가 새하얀 흰 색도 아니고 얼룩무늬 갈색이라니. 아니다, 내 모습은 낯선 이가 보내준 사진을 통해 대충 알았을 테고.. 혹시 내가 코의 점과 앞다리의 줄무늬가 비대칭이라 실망한 건 아니지? 너희들 인간은 대칭적인 거 좋아하잖아. 솔직히 너희들 머릿속에는 어딘가에서 본 고양이를 기대한 거 맞을 거다. 몸 빛깔은 회백색에 눈은 사파이어색이며 머리와 귀도 삼각형인 샴고양이나 새하얀 털에 파란 눈동자의 페르시안이나 눈이 파란빛이나 보랏빛으로 보이는 러시안 블루종을 상상했지? 아니면, 귀만 색깔이 다르던지, 꼬리만 다르던지, 눈만 다르던지. 참나, 너희들은 신기한 거 좋아하고, 바라는 것도 많더라. 뭐, 다 지당하신 말씀이라 생각할게. 그런 신기한 거를 볼 때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보는 것도 존중할게. 근데 한번 생각해 봐. 세상에는 훌륭한 나무, 훌륭한 식물, 훌륭한 고래, 훌륭한 고양이는 없다. 그냥 존재자체로 훌륭한 거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잘 생긴 것들이 종족적 우월성이 있다는 증거도 없다. 그것들은 혈통 좋은 집안에다 미인인 거, 그게 자기 공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거 병이다. 내가 그들에 비해 아름답다고는 하지 않을게.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나를 둘러싸고 숭배했던 그 순간을 끄집어내서 너희들의 가벼운 변심도 책망하지 않을게. 뿐만 아니라 동물을 처음 키우는 너희들의 어설픔까지도 감당할 게. 키우다 보면 알겠지만 나는 털이 짧아서 잘 빠지지 않고, 다양한 유전자가 섞여있어 건강한 편이다. 게다가 길고양이 출신이라 사냥꾼의 피가 흘러 언젠가는 살아있는 싱싱한 거 잡아다 줄 수도 있다. 성격적으로는 아들 집사처럼 잡생각이 많고 고집쟁이에다 해야 할 일을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아싸'에다 '찐따'인 '인프피'와는 달라. 나는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야. 외향적이지만 간혹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엔팁'이라고나 할까. 거기에다 긍정적이다.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해주면 안 되겠니? 나도 환대받고 관리받고 질 좋은 교육을 받으면 가문 좋은 그놈들보다 더 나을 거다. 아마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두 발로 걷는 돼지처럼, 너희들과 동화하거나 급기야는 너희와의 오랜 친목을 깨고 너희들을 지배할 수도 있었을 거다. 콧방귀 칠 필요 없다. 그럴 의도는 없다. 다만 계속 눌러앉아 살 수 있을지 생각 중이다. 


근데 말이야, 지금은 너희가 시큰둥하지만 나를 사랑하게 될 거다. 그렇다고 너희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지는 않는다. 전에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품위라고 말했다. 당분간은 버림을 당하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너희와의 감정적 간격을 유지할 거다. 중요한 얘기한 거니 명심해라. 간격을 유지한다는 말. 인간들은 그런 것을 '중용'이라고 말하는 거 같더라. 너희들은 권위자의 말은 맹신하는 경우가 있으니 믿어도 된다. 근데 착각하지는 마라. 동양고전의 '중용'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중용'이다. 그 형님은 인간의 목적이 행복인데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중용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양극단을 피하기 위해서지. 인간들은 감정 컨트롤을 못해서 몇 번이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잖아. 쉽게 말해,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자는 것일 수도 있다. 화를 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갈등이 해소되는 데, 화내지 않는 것은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가능해. 아무리 옳은 것도 화를 내면 전달도 안되고, 상황이 역전되고, 세상이 너를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기왕 이쪽으로 파고든 김에 덧붙이는데, 중용에 이르기 위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건, 에, 뭐랄까, '약간의 재산'과 '우정'이라는 거야. 가난은 인색과 탐욕과 근심의 근원이기에 가난하면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거지. 그리고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한두 명의 벗.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맞는 얘기인 거 같더라고. 다른 철학자들의 가슴에 와닿지 않은 얘기에 비해서는 느껴지는 게 많더라. 정리하자면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성적 생각을 통해 '중용의 길'을 실천하고, '어느 정도의 재산'을 형성하고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소수의 벗이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중요한 거라 다시 말한다. 격한 감정을 마음속 작은 상자에 넣어놓지 않거나 관계에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삶은 우리가 손쓸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 버려. 너희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실수 중에 가장 큰 실수이자 너희를 구렁텅이로 이끄는 가속페달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좀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다. 이 얘기를 한낯 실패자의 세상 탓이라 생각하지 마라. 세상은 늘 그래왔다. 산전수전 겪은 후에 들려주는 얘기니 새겨 들어라.


그건 그렇고,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그럼 어떻게 나를 사랑하게 만들 거냐가 궁금할 거다. 앞서 말했지만 내가 별로 할 거는 없다. 너희가 나를 자세히 관찰만 한다면 나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다. 그렇다고 집 나간 아비처럼 인간의 발치에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지는 않아. 그럴 필요는 없다. 너희들은 나의 하얀 앞발을 보면 하얀 솜사탕이나 하얀 털실이 생각날 거고, 나의 하얀 가슴께를 보면 마음이 몽글거릴 거고, 나의 분홍색 젤리 발바닥을 보면 일렁이는 감정으로 숨이 막힐 거다. 언제 한번 보여줄게. 그거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걸 알려줄까? 그건 너희가 힘들고 쓸쓸하고 죽고 싶을 때 털뭉치 만지듯이 나를 만지게 될 거다. 그럴 때면 내가 옆에 있어줄게. 그저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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