맺는 말

by 김영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경험을 한 적이 많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마음은 없다.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일정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계의 째깍거리는 시간을 말한다. 그 규칙적이고 빈틈없는 시간도, 어느 순간은 기억할 겨를 없이 쏜 화살처럼 지나가고, 어떤 순간은 슬로모션처럼 더디게 지나갈 때도 있다.


시간은 흘러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섰다. 나는 내 삶이 하나로 온전히 남기를 원했다. 원치 않은 환경에 의해 토막 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지속되길 바랬었다. 새로운 일들은, 마치 선로 교체기의 작동으로 달리던 기차가 살짝 비껴서 옆 선로로 스무드하게 옮겨가길 바랐었다. 그러나 꿈이 야무졌다. '되고 싶어 한 나의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나'와는 간극이 생겼다. 내가 가고자 했던 삶의 길 밖으로 내던져진 순간이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로 인해 나를 연결해 주었던 끈은 내 손에서 스르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랬었다.


그러면서 얻게 된 취미가 있다. 전화위복이자 축복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그건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삶도 껍데기의 변화보단 내면의 변화가 많았다. 물론, 타인들은, 그래 봤자, 힘 잃은 자의 자기 위안이자, 자기기만이라고 조롱할 수도 있다. 개의치 않는다.


글쓰기는 내겐 근접하기에는 너무 먼 꿈이었다. 아니, 공포였다. 책을 거의 읽지도 않았고 글을 써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차츰 글을 읽으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익명성 속에 숨어 글을 발행했다. 그리고 익명성 속에 정직할 수 있었다. 나의 부끄러운 글에 비해, 블로그에는 글을 그리도 잘 쓰는 사람은 많은지, 톡톡 튀는 기발한 표현은 왜 그리 많은지, 좌절하기 딱 좋았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는 사람은 알 거다. 물론 글쓰기는 괴로움이기도 하다. 첫 문장의 부담감, 진부한 표현, 소재의 고갈,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답답함, 반복적인 고쳐쓰기,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 등 괴로움의 연속이다.


어째서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일까? 내 생각은 글쓰기의 통쾌함이다. 비록 글 읽기 전과 글쓰기 전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지만 글쓰기의 매력을 알기에 힘들어도 쓰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고 해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외와 허무가 생기는 순간이 있지만, 글쓰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다. '이 책을 다 읽으면 뭐 하지?'가 없다. 현재도 좋고 나중에도 좋고, 나한테도 이롭고 누구한테도 권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의 장점은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이다. 역사와 인간과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다. 지금까지 '밀란 쿤데라'와의 짧은 여행을 통해서 그의 이야기와 뛰어난 문장, 그리고 철학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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